‘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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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평가가 좋아서 기대보다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소재만으로 먹고 들어가는 영화. 다만 영화적 충격으로는 2005년 ‘그때 그 사람들’이 더 강렬했던 것 같다. ’남산의 부장들’이 다큐 스타일의 정치 스릴러라면 ‘그때 그 사람들’은 다큐를 소재로 한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다. 2005년만 해도 박정희를 다루는 게 상당한 모험이었던 때라 가처분 신청까지 가고 실제로 영화 일부분이 잘린 채로 상영됐다. 지금은 지나간 역사로 박정희를 다룰 수 있게 됐다는 게 차이겠지만 2005년이면 박근혜가 유력 대권 주자로 영향력을 떨치고 있던 때다. 그래서 2020년에 다시 박정희를 다루는 방식으로 과연 이 정도가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영화는 영화고 실제로 이 영화는 김재규의 감정선을 비교적 잘 살렸다. 김재규에게 몰입하지 않으면서도 김재규의 눈으로 사건을 구성하는 영화다. 다만 어떻게든 이런 종류의 영화는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작용하게 되고 영화가 만드는 인상이 실제 사실의 디테일을 대체하게 될 위험도 있다.

박정희를 정면으로 다룰 정도로 박정희에서 멀리 떠나왔지만 여전히 박근혜와 추종 세력을 의식하고 논란를 피해가는 느낌이랄까. 캐릭터의 해석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박근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짚어보면,

– 전두환이 턴 것은 집무실 금고가 아니라 비서실 금고였다.

– 집무실 금고는 일찌감치 박근혜가 털어간 뒤였다.

– 전두환은 청와대 금고에서 9억5000만 원을 꺼내서 6억 원을 박근혜에게 줬다. (박근혜가 이미 집무실 금고를 턴 뒤란 걸 몰랐던 듯) (당시 6억을 물가 감안하면 수백 억 규모.)

– 조갑제의 기록에 따르면 10·26 직후 조사단이 청와대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 금고는 이미 비어있었다. 11월14일 조사단이 금고를 열었을 때 금고엔 단 한 푼도 없었다. 조갑제는 이렇게 적고 있다. “10·26 이후에는 집무실을 봉인해버렸고 공식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이 방에 들어간 것은 박근혜가 처음이다. 문제는 박근혜가 가져간 대통령의 용돈이 어느 정도이냐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용돈을 서민의 용돈과 같은 수치감각으로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김계원의 증언은 이렇다. “10월27일 새벽 대통령 집무실이 어떻게 돼 있는지 가봤더니 잠겨 있었고 열쇠를 박근혜가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학봉의 증언도 같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희들은 집무실 열쇠와 금고 열쇠를 본관 경호원에게 맡겼습니다. 박 대통령은 별도로 금고와 서랍 열쇠를 갖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10월26일 이후 근혜씨만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1991년 5월31일 중앙일보 보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0월26일 밤 숨진 박 대통령 양복주머니에서 집무실 금고 열쇠는 근혜양에게 전달됐으며 근혜양은 ‘금고1’의 내용물을 챙겼다한다. 근혜씨는 그 부분에 대해 여지껏 확실한 언급을 않고 있어 돈의 액수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이 ‘금고1’에서 돈을 꺼내 ‘금고2’에 넣곤 했다는 증언에 비추어볼 때 적지않은 비자금이 남아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돈이 흘러흘러서 최서원의 가족 자산이 됐을 거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게 결국 박근혜 탄핵을 불러온 국정 농단의 배경이었을 거고.)

– 계엄령 선포를 두고 박정희와 김재규가 맞선 것은 사실이지만 최태민 문제도 중요한 갈등 요인이었다.

– 김재규의 항소 이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손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하게 해야 합니다’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김재규의 변호인이 법원에 낸 항소이유 보충서에는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는 대목이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친국까지 시행했고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 김재규와 함께 사형 당한 박선호는 박정희의 여자를 조달했던 채홍사였다. 영화에서는 그냥 김재규의 수행 비서 정도로 나온다. 박정희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날의 술자리를 이야기하면서 박정희의 성 편력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소행사는 한 달에 평균 8번, 대행사는 2번 정도였다고 한다. 소행사는 여성과 단 둘이, 대행사는 측근들과 여성 두어 명 정도가 함께 했다. 사흘에 한 번꼴. 박선호는 여성의 리스트가 200명 정도 됐다고 증언했다. 잠자리는 하되 정이 들지 않도록 두 번 이상 부르지 않았다고.

(참고로 박선호의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김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저로 하여금 항상 인간으로 일깨워 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라 창공을 나는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될 수 있도록 길러 주신 데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 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 영화에서는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몇 백만 명을 죽였는데, 까짓것 10만이고, 20만이고 우리가 탱크로 깔아뭉개면 됩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차지철의 발언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만∼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였다.

– 이 영화의 매력은 김재규가 방을 걸어나오다 미끄러지는 장면, 차에 올라타서야 뒤늦게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 남산으로 갈까 육본으로 갈까 망설이던 마지막 순간, 동석한 정승화가 상황을 인식하면서 겁에 질리는 표정 등을 비교적 잘 재현한 데 있다. 혁명의 반역자를 처단한 구국의 결단이었을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저지른 우발적인 사고에 가깝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 남산으로 갔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는 가정도 의미 없긴 마찬가지다.

– 박정희와 차지철이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것도 아쉽고.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라는 대사가 세 번 나오는데, 영화적 상상력이겠지만 실제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썼던 아래 글에서 상당 부분 다시 인용한 글입니다.)

청와대 집무실 금고, 박근혜가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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