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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화섬 사람들을 만나다.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8, 2005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서울에 올라왔다. 2월 2일, 체감온도 영하 10도, 귀가 떨어질 것처럼 추운 날이었다.

경북 구미에 있는 금강화섬은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다. 원재료 가격이 오른데다 제품 가격이 떨어졌고 마침내 원료 공급이 중단되면서 공장을 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그 공장을 1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섬유산업의 몰락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금강화섬의 폐업은 단순히 사양산업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금강화섬은 원사를 만드는 회사다. 여기서 만든 원사는 섬유회사들에 팔린다. 위기는 섬유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원사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비롯했다. 한 산업의 몰락이 다른 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업 공동화가 시작되고 있다.

금강화섬의 폐업은 이 회사의 경쟁력 약화나 경영 부실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봐야 한다. 한 회사의 폐업은 다른 회사의 폐업을 낳고 결국 한 산업의 몰락을 불러온다. 시장 경쟁의 원리로는 이런 변화를 멈추지 못한다. 숱하게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금강화섬 사람들은 여의도공원 앞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구미에 내려가서 만났던 낯익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과 함께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집회 신고가 되지 않아 한 시간 정도 겨우 양해를 얻었다고 했다. 국회 앞 집회라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지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1년 가까이 텅빈 공장을 지켜온 사람들치고는 함성이 우렁찼다. 이들을 응원하러 찾아온 사람들이 가세하면서 집회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 노조, 통신산업 비정규직 노조, 새마을호 여승무원 공동대책위원회, 동병상련일까. 마이크를 잡은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에 물기가 흠뻑 젖어있었다.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줘야 합니다. 여러분,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금강화섬의 상경집회는 단순히 노동자들을 결집하고 투쟁의지를 다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상경집회는 이들의 투쟁이 공장을 살리려는 생존 투쟁일뿐만 아니라 제조업 공동화에 맞서는 투쟁이고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최전선이라는 대의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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