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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6, 2005

여럿이 모여서 밥을 먹는데 사람 수대로 밥값을 나눠서 내기로 했다. 이럴 때는 당연히 가장 비싸고 맛있는 걸 시켜먹는 게 이익이다. 어차피 똑같이 나눠서 낼 거라면 굳이 싼 걸 먹을 이유가 없다. 싼 걸 먹는 사람만 손해다. 이걸 이른바 저녁식사 모임의 딜레마라고 한다. 결국 이런 모임에서는 모두가 마음껏 비싼 걸 시켜서 먹고 터무니없이 비싼 밥값을 물게 된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이를테면 마을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모두가 돈을 나눠서 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가로등이 필요없다고 고집을 피우면 돈을 내는데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내지 않았다고 가로등 밑을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까 손해볼 것도 없다. 이를테면 무임승차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당신처럼 생각한다는데 있다. 결국 회의자리에서 다들 가로등이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가로등은 설치되지 않는다.

들판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을사람이 모두 소를 풀어내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풀이 모두 사라지고 언젠가 더이상 소를 뜯길 수 없게 된다. 풀이 새로 자랄 수 있을만큼 적당히 뜯기고 부족한만큼 사료를 먹여야 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사람들이 나하나쯤 괜찮겠지 하고 소를 마냥 풀어둔다는데 있다. 나하나쯤이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확산되고 결국 풀은 바닥난다. 이걸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는 사람들이 이처럼 이기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해준다. 이를테면 두 사람의 범죄 용의자가 있다. 한 사람만 자백을 하고 다른 사람이 자백을 하지 않으면 자백한 사람은 죄가 가벼워지고 자백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둘다 자백을 하지 않으면 일찍 풀려날 수 있지만 둘다 자백을 하면 둘다 죄값을 제대로 치러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당신의 동료가 자백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없다는데 있다. 만약 동료가 자백을 했다면 당신도 얼른 자백을 하는 게 좋다. 그래야 괘씸죄를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다. 동료가 자백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당신은 자백을 하는 게 좋다. 그래야 당신이라도 일찍 풀려날 수 있다. 자백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는 자칫 혼자 덤터기를 쓰는 수가 생긴다.

결국 동료가 자백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당신은 무조건 자백을 하는 게 유리하다. 물론 당신 동료도 그렇게 생각한다. 둘다 자백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게 가장 좋겠지만 동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자백을 하게 된다. 이게 죄수의 딜레마다. 핵심은 눈앞의 자기 이익만 챙기다가 이익은커녕 많은 것을 오히려 잃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연민이나 동정일 수도 있고 그냥 선심이나 자기과시, 또는 자기만족일수도 있다. 좀더 나가면 다른 사람을 돕는 게 결국 내게도 이익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 또는 어떻게 풀고 있는가에 대한 몇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번째 해법은 이른바 이기적 유전자로 설명된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 또는 형제 사이에는 공통된 유전자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돕는 것은 자식 안에 있는 부모의 유전자를 돕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유전자 입장에서 볼 때 자식은 또 다른 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결국 유전자를 담는 그릇이고 우리의 이타적 행동은 유전자의 생존 본능 또는 번식 욕구에서 비롯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이른바 혈연선택 가설이다.

그러나 혈연선택가설은 부모 자식 같은 혈연관계에만 적용할 수 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이타적 행동은 설명하지 못한다. 두번째 해법은 네가 나를 도우면 나도 너를 돕고 네가 나를 돕지 않으면 나도 돕지 않겠다는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설명된다. 이를 반복호혜성 가설이라고도 한다.

반복호혜성 가설의 핵심은 지금 네 행동이 다음에 내 행동으로 보답 또는 보복될 수 있다는데 있다. 여기에는 다음이라는 반복 상황이 존재한다. 한번 무임승차는 가능하겠지만 반드시 그 보복이 따르고 다음에는 그마저도 안된다. 이 경우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상대방이 내게 줄 이타적 행동에 대한 기대 못지 않게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받게 될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물론 반복호혜성 가설에도 한계는 있다. 대규모 집단에서 보답이나 보복은 명확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무임승차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유유상종 가설이다. 이타적인 사람들은 이타적인 사람들끼리 이기적인 사람들은 이기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이타적인 사람들끼리는 반복호혜성 가설이 성립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밖에도 이타적 행동이 능력을 과시해 유리한 지위를 얻으려는 목적에서 비롯한다는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이나 구성원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이타적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사소통 가설도 눈여겨 볼만하다.

또 하나 설득력 있는 해법은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 경쟁력이 높다는 이른바 집단선택 가설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집단이 변화하는 속도가 개인이 변화하는 속도보다 빠를 수 있다는 모순에 부딪힌다. 이 책은 이 모순의 해법을 제도에서 찾는다.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으면 그 집단의 제도는 이타적 행동을 확산하는 쪽으로 잡히게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유유상종 가설과 집단선택 가설은 공간구조효과 이론에서 더욱 정교해진다. 이 이론은 상호작용과 지식습득 과정이 전역적이라기 보다는 국지적이라는데 주목한다.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타적인 사람은 버텨낼 수 없지만 이타적인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이타적인 사람들의 집단은 이기적인 사람들까지 하나둘 변화시켜 끌어들이게 되고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된다.

이를 증명하는 몇가지 실험 결과들이 있다. 이를테면 거저 받은 돈 1만원을 두 사람이 나누는 실험이 있다. 한 사람이 1만원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다른 사람은 그걸 받거나 거부할 수 있다.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단돈 100원이라도 받는 게 이익이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굳이 많이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이 4천~5천원을 나눠줬고 2천원 미만을 나눠주는 경우에는 거부당하기도 했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제적 논리 못지않게 공평성이나 사회정의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호혜적 가치 판단은 어린아이보다 어른에게서 많이 나타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나타났다.

시장은 완벽하지 않고 사람들은 완벽하게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호혜성은 오히려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공평성과 사회정의를 시장의 논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규범이나 관습, 제도, 이를 모두 아우르는 사회의 문화가 이런 이타적 인간들을 만들어 낸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 / 최정규 지음 / 뿌리와 이파리 펴냄 / 1만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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