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이진경을 만나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4, 2004

수유연구실은 언뜻 지적 허영에 가득 찬, 고학력 현실 부적응자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학교 교수)도 이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이곳에서 푸코나 들뢰즈를 비롯한 프랑스의 탈 근대철학을 강의한다. 강의 주제를 모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나 ‘노마디즘’ 같은 책도 썼다. 그에게 왜 이제 현실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묻는 건 당연하다. 수유연구실은 그만큼 현실에서 동떨어진 매우 이질적인 공간이다.

그는 조금 민감하게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현실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 있는 이곳이 내게는 현실이다. 현실에 참여하는 방법이 다른 것뿐이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체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정작 그 안의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은 분명히 의미있는 변화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노무현이 되든 박근혜가 되든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도 사회주의 인민을 만들지 못하면 그 사회주의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에 개입하는 것이 현실 참여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하면 된다. 수유연구실은 자본의 논리를 넘어 자본주의의 외부를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자본주의는 전복되고 새로운 대안이 모색된다.” 그게 이진경이 생각하는 현실 참여다.

그는 요즘 신문 조차도 제대로 읽지 않지만 그건 공부하고 강연하는데 쓸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는 이 학습 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그는 ‘노마디즘’ 안에 현실의 웬만한 모든 문제가 담겨 있다고도 말한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진경이 말하는 코뮌주의가 반드시 수유연구실 같은 학습 공동체일 이유는 없다. 윤구병의 변산공동체나 천규석의 한살림운동, 양희규의 간디학교 등도 모두 대안을 꿈꾸는 코뮌주의라고 볼 수 있다.

코뮌주의의 핵심은 혁명이 아니라 실천이다. 수유연구실이 언뜻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고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다. (이정환닷컴)
참고 : 김규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정환닷컴)
참고 :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규항의 블로그)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