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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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연구실은 언뜻 지적 허영에 가득 찬, 고학력 현실 부적응자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학교 교수)도 이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이곳에서 푸코나 들뢰즈를 비롯한 프랑스의 탈 근대철학을 강의한다. 강의 주제를 모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나 ‘노마디즘’ 같은 책도 썼다. 그에게 왜 이제 현실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묻는 건 당연하다. 수유연구실은 그만큼 현실에서 동떨어진 매우 이질적인 공간이다.

그는 조금 민감하게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현실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 있는 이곳이 내게는 현실이다. 현실에 참여하는 방법이 다른 것뿐이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체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정작 그 안의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은 분명히 의미있는 변화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노무현이 되든 박근혜가 되든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도 사회주의 인민을 만들지 못하면 그 사회주의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에 개입하는 것이 현실 참여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하면 된다. 수유연구실은 자본의 논리를 넘어 자본주의의 외부를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자본주의는 전복되고 새로운 대안이 모색된다.” 그게 이진경이 생각하는 현실 참여다.

그는 요즘 신문 조차도 제대로 읽지 않지만 그건 공부하고 강연하는데 쓸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꿈꾸는 이 학습 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그는 ‘노마디즘’ 안에 현실의 웬만한 모든 문제가 담겨 있다고도 말한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진경이 말하는 코뮌주의가 반드시 수유연구실 같은 학습 공동체일 이유는 없다. 윤구병의 변산공동체나 천규석의 한살림운동, 양희규의 간디학교 등도 모두 대안을 꿈꾸는 코뮌주의라고 볼 수 있다.

코뮌주의의 핵심은 혁명이 아니라 실천이다. 수유연구실이 언뜻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참고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다. (이정환닷컴)
참고 : 김규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정환닷컴)
참고 :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규항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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