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성 한계 맞은 포항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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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쓸 때까지만 해도 포항제철이 공식 명칭이었다. 포스코로 이름이 바뀐 것은 2002년부터다.)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포항제철 TV 광고 가운데 ‘소리없이’라는 말이 유독 눈에 띈다. 세상을 움직여 왔다는 자부심과 함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굴뚝 기업의 소외감이 묻어난다. 세상을 움직여 왔는데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불만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포항제철은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어왔다. 포항제 철이 없었으면 자동차 회사나 조선 회사나 외국에서 값비싼 철강 재료들을 수입해다 써야 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펄펄 끓는 용광로 앞에서 만난 직원들도 이렇게 ‘세상을 움직이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한때 포항에서 포항제철에 다닌다는 건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작업복 차림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작업복을 맡겨 놓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직원들 사이에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주역,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포항제철 직원들은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혔다. 그러나 지금 포항제철의 위상은 옛날과 크게 다르다. 한수 접고 내려보던 인천제철이 지금은 더 많은 월급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힘들고 위험한 굴뚝산업이라는 인식까지 겹치면서 포항제철에 다닌다는 게 더이상 큰 자랑거리가 아니게 됐다. 이제 거리에서는 포항제철의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소리없이’ 묵묵히 일할 뿐이다.

회사 밖을 보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크고 작은 철강회사들과 아웅다웅 밥그릇 다툼을 하는 처지다. 지난 몇년 동안 이어왔던 성장세가 올해 들어 크게 꺾이고 있다. 4조 3교대로 모든 설비를 100% 가까이 돌리고 있지만 매출액과 순이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쟁쟁한 철강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까운 일본만해도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는 철강회사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싸구려 철강재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포항제철의 몫까지 넘보고 있다. 이래 저래 포항제철은 지금 성장성의 한계를 맞고 있다.

포항제철의 상반기 실적은 이러한 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생산량은 1400만톤으로 지난해보다 30톤 가량 늘어났지만 매출액은 5조5790억원으로 2840억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영업이익도 7350억원으로 3200억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지난 7월25일 상반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상부 회장은 “철강업계 사상 초유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탓에 전망이 빗나갔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포항제철은 지난 4월에 이어 또 한차례 올해 실적 전망을 크게 낮춰 잡았다. 포항제철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1조2천억원과 1조576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각각 4.2%와 24.9%가 줄어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지만 지금 같아서는 이런 전망도 불확실하기만 하다. 포항제철의 위기는 자못 심각해 보인다.

철강 산업은 이미 지난 1990년부터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지난해 전세계 철강회사에서 만들어낸 철강제품은 모두 8억4400만톤. 수요가 주춤한 가운데 공급이 넘쳐나면서 1억8500만톤 가량의 설비가 남아돌고 있다. 공장 열개 가운데 두개가 놀고 있다는 이야기다. 포항제 철의 주력상품인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의 수출 가격은 지난 2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990년만 해도 1톤에 405달러를 받았던 열연강판은 올해들어 절반에도 못미치는 193달러까지 떨어졌다. 냉연강판 가격도 565달러에서 296달러까지 내려갔다. 유 회장은 “제조원가는 밝힐 수 없지만 포항제철은 아직 이윤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철강산업 전문 연구기관인 WS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항제철의 냉연강판 제조 원가는 톤당 315달러로 추산된다.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보다 100달러 이상 낮다고는 하지만 역시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좀처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 회복도 불투명하고 무엇보다도 공급 과잉 문제가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6개 철강회사가 문을 닫았다. 베들레헴스틸 같이 한때 이름을 날렸던 철강회사도 1억달러 가까이 적자를 내고 주가가 반토막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원료 가격까지 크게 뛰어올라 가뜩이나 어려운 철강업체들 목을 죄고 있다. 올해 들어 철광석은 4%, 석탄은 10% 이상 뛰어올랐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지난 1996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내는 냉연강판은 820만톤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비투자가 부쩍 늘어나면서 지난해 1475만톤에 이르렀다. 포항제 철은 물론이고 현대하이스코나 동부제강 등이 잇따라 냉연강판을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수요가 크게 따라주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냉연강판은 다해서 789만톤 밖에 안됐다. 나머지 686만톤을 외국에 팔아야 했다는 이야기인데 수출도 결코 쉽지 않았다. 손익분기점이라는 톤당 300달러는 이미 무너진지 오래고 미국은 한국 철강제품을 덤핑이라고 제소한데 이어 여차하면 긴급 수입 제한 조치까지 발동할 계획이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냉연강판의 재료가 되는 열연강판은 공급이 달려서 걱정이다. 냉연강판 공장만 서둘러 지었지 열연강판 공장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업체들이 일본에서 열연강판을 수입해다 쓰는데 가격이 워낙 비싼 탓에 요즘 같으면 기껏 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현대하이스코가 포항제철에게 열연강판을 공급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보조기사 참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철강업체들 사이에 전략적 제휴와 합병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규모를 키워서 수익성을 높이고 대외 협상력을 갖추자는 전략인 셈이다. 유럽의 유시노스틸과 아베드스틸, 일본의 NKK제철과 가와자키제철이 서로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생산량이 각각 4400만톤과 3400만톤으로 세계 1, 2위 규모가 된다. 합병은 철강업체 뿐만 아니라 철강 원료 업체나 수요 업체도 마찬가지다. 철광석 업계에서는 이미 상위 3개 업체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자동차 업계에서도 상위 6개 업체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시장지배력이 없는 영세한 업체들은 명함도 내밀기 어렵게 됐다. 포항제철도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제휴를 모색하는 등 대안을 찾고 있지만 이래저래 힘겨운 도전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강업체들 사이에서는 감산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조금씩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하락을 막아보자는 논리다. 그러나 다들 앞으로는 감산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뒤로는 생산량을 늘리는데 바쁘다. 많은 제조업이 그렇듯이 철강산업도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제조원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감산을 통해 당장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할만한 업체는 없다. 뾰족한 대책 없이 철강산업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유 회장은 “철강산업은 이제 성장기에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옛날처럼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어려운 계절을 지내고 나면 수많은 철강업체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릴지도 모른다. 포항제철의 딜레마는 생산량을 늘려도 오히려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나마 이제는 생산량도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머지 않아 만들어도 팔 데가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포항제철의 고민은 깊고도 깊다.

많은 굴뚝기업들처럼 포항제철은 지금 성장성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다. 성장성의 한계를 넘는 해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업 다각화로 매출 기반을 확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업무 혁신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유 회장이 여러차례 밝혔듯이 포항제 철이 잡고 있는 사업 다각화의 두 방향은 에너지와 정보통신이다. 그러나 에너지 사업을 추진해왔던 자회사 포스에너지는 제대로 일을 벌여보지도 못한채 최근 문을 닫았고 통신 쪽으로는 SK텔레콤과 IMT-2000 사업 말고는 더이상 신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쪽이나 환경 쪽으로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이다. 무분별하게 신규 사업을 벌였다가 낭패를 본 외국의 철강업체들 짝이 나지 않을까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유 회장은 무엇보다도 업무 혁신 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업무 구조를 뜯어 고쳐 제조원가를 낮추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빠르고 정확한 생산 체계를 갖춰 다른 철강업체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신규 사업은 신규 사업대로 가져가지만 승부는 주력사업인 철강 쪽에서 보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마침 지난 2년반 동안 1950억원을 쏟아 부어 만든 업무 혁신 프로젝트가 지난 7월2일 첫선을 보였다. 4조7천억원 이상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결국 포항제철의 미래는 신규 사업과 업무 혁신, 이 두가지 축에 달려 있다.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여왔던 굴뚝기업 포항제철이 다시 한번 성장성에 날개를 달 수 있을까 주목된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보조박스

제목 : “25년 노하우 그냥 넘겨줄수 없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유상부 회장의 단호한 목소리로 보아 포항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분쟁은 더이상 절충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분쟁은 지난 1월 현대자동차가 자동차용 냉연 강판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불거졌다. 그동안 포항제철에서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구입해왔던 현대자동차가 포항제철과 거래를 끊고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와 손을 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드는데 필요한 열연코일을 만드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는 포항제철 밖에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현대하이스코가 열연코일을 팔라고 했을 때 포항제철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한해 100만톤 가까이 냉연강판을 사갔던 현대자동차가 갑자기 등을 돌린데다 직접 냉연강판을 만들테니 원료만 팔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코카콜라를 직접 만들테니 원액을 팔라고 하는 것과 같다. 25년 동안 개발해온 노하우를 어떻게 송두리째 넘겨줄 수 있겠는가.” 포항제철 최광웅 전무의 이야기다. 포항제철 사람들은 분쟁이란 말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투다. 한해 2840만톤을 만드는 포항제철과 180만톤을 만드는 현대하이스코가 경쟁이나 되겠느냐는 이야기다.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포항제철 밖에 없다는 자부심도 깔려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판결이 불리하게 나온다면 포항제철은 울며 겨자먹기로 현대하이스코에 열연코일을 팔아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포항제철은 그동안 현대하이스코가 사주었던 냉연코일을 팔 다른 수요처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포항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문제는 설비 과잉에서 비롯한다. 원료가 되는 열연코일 설비도 갖추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냉연강판 공장만 늘려지은 탓이다. 1995년만해도 우리나라 냉연강판 공장은 944만톤 정도 생산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까지 1372만톤으로 45% 가량 부쩍 늘어났다. 냉연공장이 늘어나면서 값비싼 열연코일 수입은 1998년 80만톤에서 2000년에는 440만톤까지 늘어났다. 그 결과 이제는 기껏 만들어놓고도 팔 데가 없는 상황이 됐다. 한해 200만톤 이상이 남아돈다. 규모는 부쩍 늘어났지만 별반 이익은 없는 답답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냉연강판 공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포항제철의 아슬아슬한 사업다각화.

“당사의 대우자동차 인수설은 사실무근임을 알려드립니다.” 지난달 25일 증권거래소의 공시요구가 나오자 마자 포항제철이 서둘러 내보낸 공시다. 이미 여러차례 나왔던 이야기가 다시 흘러나온 것은 이틀 전인 23일,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가 포항제철의 대우자동차 인수가 유력하다는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기사의 요지는 GM의 대우자동차 인수에 포항제철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박태준 명예회장이 깊이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포항제철은 이 모든 가능성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왜 가만있는 회사를 건드리느냐는듯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포항제철의 사업 다각화는 이처럼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여기 저기 찔러보는 가운데 근거 없는 소문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속시원한 밑그림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유상부 회장도 지난달 25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너지와 정보통신 쪽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을뿐 구체적인 전략을 밝히지는 않았다. 말꼬리를 흐리는 모양으로 보아 아직은 가능성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단계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엄청난 돈을 싸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쓸 데가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쓴맛을 보고 물러난 외국 철강업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신중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에너지 사업 쪽 가능성을 타진해왔던 포스에너지는 지난달 결국 문을 닫았다. 포스에너지는 원래 광양지역에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환경 오염을 우려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접어야 했다. 석탄발전소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전력과 맺은 전력 수급계약도 해지됐다. 대안으로 내세웠던 액화천연가스 발전소도 200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포스에너지는 사업역량을 완전히 잃게 된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포항제철은 포스에너지의 자본금을 450억원으로 늘리고 한국전력의 자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밝히는 등 본격적으로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계획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포항제철 최광웅 전무는 포스에너지는 접었지만 에너지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미 포항제 철은 2396MW에 이르는 18기의 발전설비를 자체 보유하고 있다. 양쪽 제철소에서 필요한 전기 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정보통신 쪽도 아직 뚜렷한 밑그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유 회장은 통신 쪽에는 더이상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SK텔레콤에 6.5%, SK-IMT 2000에 12% 지분 참여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경영권을 장악하거나 주도권을 행사할 계획은 없다.” 파워콤을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과열 경쟁으로 치닫고 있어 조금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동기식 IMT-2000 컨소시엄이나 한국통신 인수에도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쪽으로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포항제철은 포항공대 안에 자리잡은 생명공학연구센터에 모두 1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연구센터에는 450명의 연구인력이 모여 감염 유전자 백신이나 유전자 칩을 개발하는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포항제철은 생명공학연구센터를 지원하기 위해 따로 신사업추진팀을 만들었다. 생명공학연구센터의 기술력과 포항제철의 사업추진능력을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낳자는 전략인 셈이다. 연구 성과물이 사업화에 성공하면 포항제철과 생명공학연구센터, 개발자가 각각 일정비율로 수익을 나누어 갖게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포항공대 환경공학부와도 업무제휴를 맺고 있다. 포항제철은 환경부문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앞으로 5년 동안 3조원 이상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과 손잡고 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철강 제조 기법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파이넥스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값이 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산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설비 투자비도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파이넥스 기법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경우 전세계 철강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 및 설비 수출로 새로운 수익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대기업 출자제한 조치다. 2002년 3월까지 포항제 철은 8천억원 규모의 투자자산을 줄여야 한다. 자회사 지분을 줄이거나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다. 이 문제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이상 신규사업 진출은 크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6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포항제철의 사업 다각화를 곱지 않는 눈길로 바라본다. 이들은 무리하게 사업 다각화를 벌이기 보다는 철강 쪽에 사업역량을 집중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철강산업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성장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유 회장은 “성장성이 유망한 신규사업을 발굴해 중점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움직임은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기만 하다. 철강산업에서 쌓아올린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을 풀어놓을 데가 생각만큼 찾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일본 철강업체들의 교훈.

일본의 철강업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업 다각화에 발벗고 나섰다. 에너지나 환경, 엔지니어링 등 관련 사업은 물론이고 반도체나 PC, SI(시스템 통합) 등 새로운 사업도 이것 저것 벌렸다. 이제와서 결과를 놓고 보면 수직적 사업 다각화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수평적 다각화는 거의 실패했다. 포항제철이 참고할만한 몇가지 교훈이 있다.

첫째, 그동안 쌓아왔던 기술을 충분히 활용해라. 신일본제철과 가와사키제철의 SI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생산관리에서 축적된 운영체제 기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신일본제철정보통신은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회사가 됐다. 한해 매출만 1200억엔에 이른다. 내년에 동경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이다.

둘째, 첨단기술에 도전하지 마라. 상대적으로 의사결정이 느리고 기술발전 속도가 느린 철강산업의 특성상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신일본제철의 반도체 사업이나 PC 사업의 실패가 그 사례다.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다가 98년과 94년에 사업을 접었다.

셋째, 가망없는 경쟁을 피해라. 가와사키제철은 1985년 대만의 UMC그룹과 손을 잡고 주문형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생산을 모두 UMC그룹에 위탁해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자금 부담을 벗고 가망 없는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독자적인 시장을 개척해 지금은 일본의 10대 주문형반도체 회사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포항제철이 파워콤 인수를 포기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과당경쟁을 이겨낼 뾰족한 묘안이 없는 이상 통신사업자로서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를 벌였다가는 일본 철강업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참고 : 포항제철, 4조7천억원의 실험.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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