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스노우캣,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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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나마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 도오루는 현실에서 한발 벗어나 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도 구석에 따로 앉고 출석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학생 운동하는 친구들을 조소한다. 대학이 동맹 휴학에 들어가고 기동대가 출동하고 친구들이 경찰에 끌려가는데도 그는 무관심하다. 여자친구를 그리워하거나 도서관에서 소설 책을 읽거나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따위를 먹으면서 시간을 마냥 흘려 보낸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현실에 깊이 개입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물러서서 즐길 뿐이다. 언뜻 자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하거나 음울하지는 않다. 그게 하루키가 갖는 힘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여성은 구원 또는 현실 도피를 의미한다. 사랑은 저주도 넘고 운명도 넘는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적당히 물러서서 현실을 즐길 수도 있다. 문제는 이 모든게 한갖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루키를 읽었건 읽지 않았건 우리 세대는 모두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고 받고 있다. 1990년대는 아무런 지향도 없는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였다. 모든 진보 담론이 무너져 내렸고 그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어디에나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하루키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런 시대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연애에 빠지거나 상실에 젖거나 하면서 숱한 시간을 겨우겨우 견뎌냈다.

하루키가 1990년대의 한 전형이라면 스노우캣은 2000년대의 한 전형이다. 스노우캣은 팻 매쓰니를 들으며 빈둥거리거나 영화를 보고 고양이 사진을 찍고 프랑스 여행을 떠나거나 하면서 시간을 흘려 보낸다. 김규항은 언젠가 스노우캣을 보고 좌파 이상으로 급진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스노우캣은 하루키만큼이나 무력하고 비현실적이다. 스노우캣은 심지어 연애조차도 하지 않는다. 스노우캣은 환상이고 허구다.

우리는 왜 허구에 빠져들고 허구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왜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것일까.

2004년 우리나라 경제는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른 위기다. 기업은 돈을 벌어서 마냥 쌓아두고 있고 당연히 새로운 공장도 짓지 않는다. 공장이 없으니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일자리가 없으니 다들 가난해지고 기껏 만들어 봐야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 이제는 그나마 있던 공장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기업이 돈을 못벌어서가 아니라 번 돈을 쌓아두고 있는게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빈부격차 역시 사상 최대다.

위기의 진단은 여러가지로 가능하다. 먼저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외국 투기자본이다. IMF 외환 위기 이후 7년, 웬만한 우리나라 기업의 지분은 이미 절반 이상 투기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이들은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돈을 집어넣었다가 얼마로 부풀릴 수 있느냐에 관심이 있을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공장을 짓기 보다는 사들인다. 그게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장을 사들여서 값을 부풀려서 팔고 떠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잘려 나가고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는다.

물론 모든 자본은 투기적 속성이 있고 그것은 외국이나 국내나 마찬가지다. 이제 자본은 과거처럼 공장을 짓지 않는다. 공장을 짓지 않아도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야말로 돈이 돈을 번다.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그 돈은 결국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 거대 자본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 속도는 인류 역사 이래 지금 가장 빠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더 근본적인 요인은 주주 자본주의다. 우리 시대의 경제 시스템은 철저하게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라면 이 회사가 만들어 내는 이익은 모두 주주의 몫이 된다. 주주들은 이익이 날 때마다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줄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새로운 공장을 짓는데는 반대한다. 이들은 회사의 10년 뒤 미래 보다는 당장 받게 될 배당과 한달 뒤 주가를 더 걱정한다. 배당이 신통치 않거나 주가가 떨어질 것 같으면 그때는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특화된 문제들도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와 일본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면서 유럽의 잘 나가던 자동차 회사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공장을 더 빨리 돌리고 노동자들 임금을 깎고 더 많은 노동을 강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갈데까지 가다가 그래도 가격을 못맞추면 결국 공장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30년 뒤 이제 우리나라가 그런 위기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인도가 빠른 속도로 뒤쫓아 오고 이제 더이상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됐다. 반도체를 비롯해 몇몇 첨단 산업은 살아남겠지만 상당부분 산업은 이제 근본적인 한계를 맞게 된다. 새로운 성장 산업을 찾아야 하는데 정작 기업은 더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거나 있어도 하지 않고 있다. 2004년 경제 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내수 시장인데 그마저도 아주 불투명하다. 상당수 사람들은 이제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살 여유가 없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밀려났고 경제활동인구 6명 가운데 1명이 신용불량자로 내몰려 있다. 이들은 시장에서 소외돼 있다. 내수 기반을 잃은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전적으로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그릇은 너무 작다.

분명하고 당연한 것은 이 모든 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장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졸업할 무렵,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 세대가 취업할 무렵에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날마다 떠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바로 우리의 문제다. 공장을 짓고 노동력에 의존해 재화를 만들어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자본이 자본을 벌어들이는 시대가 왔다. 노동자들은 이제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노동조건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제한된 성장의 이면, 절대다수의 희생을 이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하루키나 스노우캣은 이런 현실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이들은 적당히 현실을 즐기면서 그들이 한번도 소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리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낸 허구를 기꺼이 즐긴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가 딛고 서있는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 보고 맞서야 한다. 비판하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제 우리 모두의 생존의 과제가 됐다. 우리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현실을 외면할 때 아무도 우리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광범위하게 조작된 환상과 허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맑게 깨어있어야 한다. 맑게 깨어서 싸워야 한다.

(서울여자대학교 교지 ‘바롬’ 청탁으로 쓴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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