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미디어라고? 말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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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18년 9월호에 썼던 서평인데 기록 보관 차원에서 올려봅니다. 좋은 책이고 흥미롭게 읽었는데 녹색평론에서 조금 비판적으로 접근해 달라고 해서 좀 삐딱하게 써봤습니다.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길.)

2015년 10월15일 오후 12시8분,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 상공 39km 상공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스카이 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 헬륨 기구에 매달린 캡슐을 타고 성층권을 뚫고 올라가는 데 2시간30분이 걸렸는데 낙하산 하나 들춰 매고 뛰어내려 지구 표면에 발을 딛기까지 걸린 시간은 9분 남짓이었다. 4분36초, 낙하산을 펴기 직전 최고 속도는 시속 1357km. 인간이 맨몸으로 음속을 돌파한 최초의 기록이었다.

이런 무모한 모험을 왜 벌인 걸까. 자그마치 항공기 운항 고도의 세 배, 지구가 동그랗게 보일 정도의 무시무시한 높이다. 엄청난 기압을 견뎌야 하고 압력 조절에 실패하면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수도 있다. 낙하하는 동안 피가 굳어 심장이 멈추거나 머리에 피가 쏠려 뇌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정신을 잃기라도 해서 낙하산을 펼 타이밍을 놓치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해 흔적도 없이 박살날 것이다.

미디어가 메시지를 지배한다는 50년 전의 분석.

유튜브 생중계로 800만 명이 동시 접속하는 기록을 세웠던 이 떠들썩한 이벤트는 사실 ‘레드불 스트라토스(Red Bull Stratos)’라고 하는 레드불의 브랜드 마케팅 프로젝트였다.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입었던 슈트에는 레드불 로고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그가 입은 슈트만 1만2422유로(당시 환율로 1800만원), 준비 기간 5년 동안 연구와 테스트에 들어간 비용이 6500만 달러(73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언어학자 마샬 매클루언은 1964년에 펴낸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선언했다. 미디어는 형식일 뿐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미디어라는 형식에 이미 메시지가 내재돼 있고 미디어가 메시지를 인식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파격적인 문제의식이었다. 같은 뉴스를 TV로 보는 사람과 신문으로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다르다는 의미다. 포털 뉴스도 다르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포스트는 각각의 맥락이 또 다르다는 이야기다.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인간과 사회, 문화와 맺고 있는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람의 시각과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감각과 사고와 행동을 바꾼다. 굳이 이 대목을 번역할 때 “미디어는 메시지다”가 아니라 “(다름 아닌)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쓰는 건 미디어가 메시지를 지배하거나 규정하고 메시지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레드불은 우리가 얼마나 멋진 음료수를 만들고 있는지 왜 이 음료수를 사 먹어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레드불의 ‘우주 점프’ 실험이 TV 광고로 나갔다면 전혀 다른 메시지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목숨이 걸린 사상 초유의 실험을 유튜브 라이브로 지켜봤던 800만 명의 사람들의 경험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주 점프’라는 메시지는 레드불이라는 미디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레드불 최고경영자 디트리히 마테시츠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음료수 회사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음료수도 팔게 된 미디어 회사다.” 실제로 레드불은 마케팅 예산이 매출의 3분의 1이고 그 3분의 2 이상을 콘텐츠 제작과 관리에 투자하고 있다. 2007년 레드불미디어하우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11개 국가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레드불레틴은 발행부수가 480만 부가 넘는다.

레드불은 익스트림 스포츠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구나 농구는 물론이고 모터바이크와 요트, 클리프다이빙, 웨이크보드 등 여러 스포츠 행사와 선수들을 후원하고 레드불TV를 통해 고퀄리티의 영상을 만들고 있다. 도전과 열정이 레드불의 콘텐츠 키워드다. 직접적으로 음료수 광고를 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레드불이 만드는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에너지 음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각인시킨다는 전략이다.

누구나 미디어를 조직할 수 있는 시대.

레드불의 미디어 전략은 실제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레드불은 지난해 기준으로 63억 캔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74억 달러, 압도적인 업계 1위 회사다. 레드불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는 2018년 8월 기준으로 4896만 명, 유튜브는 메인 채널만 구독자가 753만 명에 이르고 여러 스포츠 종목마다 별도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웬만한 언론사 페이지보다 강력한 도달률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레드불 스트라토스 프로젝트가 400억 달러(47조 원) 이상의 브랜드 효과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었다. 2015년 레드불 판매량이 전년 대비 16% 이상 늘어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레드불은 직접 미디어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전략을 썼다.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편의점 매대에서 굳이 레드불을 집어들게 만드는 힘, 레드불이 열정과 도전이라는 가치를 브랜드 이미지와 뒤섞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2016년 9월 ‘업스탠더스’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하면서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긍정과 낙관, 리더쉽이 필요하다. 이 영상이 공공 기업과 개인에게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스타벅스는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와 영상, 팟캐스트로 만들어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출신의 라지프 찬드레이스카란이 스타벅스 뉴스룸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홍보나 마케팅과는 상관없는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시민의식, 예의 등을 공유하고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스타벅스가 도널드 트럼프 시대 미국 국민들에게 어떤 종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워드 슐츠는 정치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차기 대권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곤 한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기준으로 224억 달러 매출에 29억 달러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미디어를 조직할 수 있는 시대, 월스트리트저널리든 워싱턴포스트든 뛰어난 저널리스트들을 끌어들여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타벅스라는 미디어에 담기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50여년 전 매클루언의 말이 새삼 큰 무게를 갖는 이유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로비에 설치된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2018년 4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1000대가 넘는 아날로그 모니터를 2003년에 한 차례 전면 교체했지만 이제는 수리는커녕 부품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LCD 모니터로 교체해서 같은 영상을 내보자는 의견과 같은 영상을 내보내더라도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거라는 의견이 충돌하고 이미 수명을 다 한 만큼 철거하고 다른 오마주 작품을 설치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백남준아트센터의 학예연구사 구정화는 문화예술 전문 미디어 ‘널 위한 문화예술’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말이 글의 내용이 됐고 글은 말의 형식이 됐다. 그런데 책이라는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과거의 형식이었던 글이 새로운 매체의 내용이 되는 그런 과정을 겪어왔다. 백남준의 야심은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식을 비디오라는 매체 안에서 새로운 내용으로 다시 창조하려는 것이었다.”

아날로그 모니터라는 형식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백남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오히려 수명을 다하고 죽은 모니터를 그대로 남겨 두는 게 백남준의 메시지를 제대로 담는 방법일 수도 있다. LCD 모니터에 백남준의 영상을 담는다면 그건 아마도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라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이 기존의 메시지를 해체하고 다시 조직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콘텐츠 패키지의 해체와 미디어 브랜드의 실종.

유승찬이 쓴 ‘메시지가 미디어다’는 마샬 매클루언을 전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클루언과 별 관계가 없는 책이다. 서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정의는 여전히 위대하다. ‘반응이 메시지다’라는 피터 힌센의 정의는 현재 아주 강력하다. 하지만 둘 다 충분하지는 않다. 메시지만 있으면 메신저는 순식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가 되고 반응도 이끌어낸다. 스마트폰 시대 메시지가 주어가 됐다.”

어릴 적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하시면서 신문 48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넘겨 보셨다. 아버지는 어제 이 신문에 어떤 기사가 났고 일주일 전에 이 신문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으며 그 사건이 지금 어떻게 진행됐는지 사건의 흐름과 맥락을 꿰고 계셨다. 방송 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9시에 시작해서 적어도 40분은 채널을 고정했고 그게 습관이고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뉴스를 읽거나 보는 독자들이 거의 없다.

과거에는 발행부수와 시청률이 미디어의 권력이었지만 콘텐츠의 패키지가 해체되고 브랜드가 사라진 지금은 메시지가 없이는 권력을 잡을 수 없게 됐다. 분명히 미디어가 메시지인 시대가 있었지만 미디어 권력이 해체된 지금은 미디어와 메시지의 관계도 확연히 달라졌다. 파편화된 맥락과 해체된 브랜드, 인내심 없는 독자들, 여기에서 새로운 문법이 등장하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폭발한다.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를 인용한 이런 대목이 있다. “온라인에 가면, 우리는 스스로 에디터가 되고, 게이트키퍼가 된다. 우리 마음에 드는 뉴스와 오피니언을 선택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좋은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의 편견을 더 굳건하게 해주는 정보를 선호한다. 우리는 지성적으로는 의견의 충돌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방음시설이 된 방에 우리를 가두고 있다.”

유승찬은 기술 혁명 시대의 뉴스의 변화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놀라운 전파 속도, 둘째, 사라지는 미디어 브랜드, 셋째, 소셜 미디어 이니셔티브, 넷째, 집단 극화의 일상화. 모두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겪어보지 못한 변화다. 텍스트를 읽지 않고 스캔하는 시대, 네이버와 구글이 모든 걸 알려주는 시대, 미디어의 형식도 달라졌지만 독자들의 미디어 소비 습관이 달라졌고 미디어가 메시지를 지배하고 규정한다고 단정짓기 어렵게 됐다.

직접 커뮤니케이션 시대, 청와대 기자단의 분노.

미디어가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메시지가 미디어라는 게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다. 매클루언의 이론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지만 2018년 한국의 상황은 또 다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뉴스를 읽는 독자의 비율이 한국은 4%로 36개 국가 가운데 꼴찌였다. 꼴찌에서 두 번째인 일본은 16%였다. 뉴스를 신뢰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23%만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리스와 함께 역시 꼴찌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가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를 시작하고 카드뉴스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으로 B컷 사진을 쏟아내자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공식 항의를 한 적 있었다. “브리핑을 하지 않고 직접 내보내면 어떻게 하냐.” “기자들이 청와대 내부 매체와 경쟁이라도 하란 말이냐.” 청와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부 매체란 건 없다”면서 “미디어 환경이 달라졌고 언론도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박근혜가 기자회견에서 각본을 써놓고 질문을 받는다고 개탄하던 때가 얼마 전 일인데 이제는 청와대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내놓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페이스북을 켜고 받아치는 신세가 됐다. 다음날 아침 신문은 이미 구문이지만 온라인에서도 뉴스가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모든 정부 부처가 청와대의 디지털 소통을 벤치마킹하느라 난리법석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언론을 통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춘추관 관장을 지냈던 유민영은 경향신문 기고에서 “언론의 경쟁 상대는 문 대통령이라는 미디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유민영은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16일 아침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에 내정됐다). “대통령은 스스로 미디어가 되었다. 그리고 국민을 대상화된 소극적 관람자가 아니라 적극적 마케터 혹은 영향력자로 전환시켰다.” 유승찬은 이 칼럼에서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수백만 독자를 만드는 시대.

유승찬은 독립영화 감독 장혜영의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사례로 든다. 중증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을 18년 동안 격리돼 있던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5000만 원의 제작비를 모금하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유승찬은 “개인의 경험과 공적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메시지가 폭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밀레니얼 미디어로 꼽히는 닷페이스가 2017년 7월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프리허그를 다룬 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55만 명이 봤다. 지금은 닷페이스도 좀 더 좋은 카메라를 쓰지만 누구나 스마트폰과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방금 찍은 영상을 편집해서 자막을 달고 유튜브에 올리고 공유하는 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세상이다. “슬라임으로 개헌을 이해해 보자”는 동영상은 페이스북에서 240만 명이 봤다.

날마다 오후 4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유튜브 라이브로 내보내는 ‘봇노잼’은 구독자가 34만명을 넘어섰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부 유튜버인데 100만 뷰가 넘는 동영상도 있다. 웬만한 언론사도 요즘은 하루 10만 뷰 넘는 기사가 몇 건 안 되는데 소셜 미디어에서 이른바 바이럴을 좀 탔다는 콘텐츠는 100만, 200만을 넘고 500만 뷰를 넘어서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개인의 경험이나 공적 가치와 무관한 경우도 많다. 디지털 방문판매를 표방한 ‘블랭크TV’ 같은 곳은 이름으로 엄청난 물량의 광고 공세를 퍼부어가면서 ‘마약 베개’나 ‘악어발 팩’ 같은 제품을 연간 1000억 원 이상 팔아치운다. 유명 걸 그룹 멤버의 인스타그램은 수백만 명의 팬을 몰고 다니는데 특정 화장품 브랜드를 노출해주는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 권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메시지를 지배하는가.

유승찬은 내일신문 기자 출신으로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통합당의 소설 미디어 모니터링을 담당했고 2017년 대통령 선거 때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메시지 기획과 온라인 캠페인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이 책은 “스마트폰 시대의 사회 변동과 메시지 전략”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절반 이상이 정치 캠페인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메시지가 미디어다’라는 선언은 정치 캠페인이나 콘텐츠 마케팅 전략으로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비약이거나 왜곡이다. 레드불의 ‘우주 점프’ 실험은 철저하게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계산된 이벤트였다. 이런 메시지는 미디어와 별개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돈이 되니까 만드는 것이고 결국 미디어가 메시지를 지배한다. 스타벅스의 ‘업스탠더스’ 역시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 그게 스타벅스니까 통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좋은 메시지는 그것 자체로 권력을 갖는다”는 선언은 사실 하나마나한 소리다. 메시지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어떻게 포장하느냐 또는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파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의 시대와 비교하면 미디어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고 누구나 직접 메시지를 생산하고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달리 말하면 미디어 플랫폼이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이해관계에 더욱 취약하게 됐다는 의미도 된다.

메시지가 미디어가 된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카카오톡 찌라시와 가짜 뉴스까지 미디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류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이 진짜 뉴스는 따로 있다는 믿음을 만들고 그들만의 정보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지만 카카오톡 찌라시는 여전히 카카오톡이라는 미디어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카톡 찌라시를 포털 뉴스보다 더 믿고 누군가는 같은 메시지를 찌라시 취급하는 것이다.

청와대 페이스북 역시 같은 메시지라도 그게 청와대가 발행하는 콘텐츠라는 미디어의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 청와대 페이스북은 자칫 정치 팬덤으로 흐르거나 프로파간다로 변질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노인 치매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감동적인 3분짜리 홍보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띄우는 것과 실제로 제도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만으로도 자칫 문제가 해결되거나 정리된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기업의 브랜드 스토리텔링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브랜드 저널리즘이라고도 부르지만 여기에는 특별히 공익적 가치 판단이나 저널리즘 윤리가 없다. 철저하게 기업의 이해관계와 마케팅 전략에 따라 메시지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 뿐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서는 개별 콘텐츠 단위로 유통되는 메시지를 대부분 독자들은 그 메시지가 담긴 미디어의 맥락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유승찬은 이 책을 “99%의 소음을 뚫고 도달하는 1%의 신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진실한 삶의 이야기는 메시지가 된다”거나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낯선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등의 조언은 실제로 현장에서 메시지 전략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인사이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승찬이 도구로서의 미디어의 밝은 면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전히 미디어가 메시지다.

도구로서의 미디어를 가장 반기는 건 기업들일 것이다. 직접 수백만 명에게 메시지를 노출할 수 있다면 굳이 다른 미디어 기업에 돈을 들여 광고를 낼 이유가 없다. 메시지가 미디어가 되기도 하지만 돈만 있으면 누구나 채널을 확보하고 미디어를 조직하고 도달률을 높일 수 있는 시대다. 메시지가 좋아서 팔리는 게 아니라 여전히 미디어가 메시지를 규정하고 미디어의 힘이 권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음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메시지는 메신저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정치든 시민운동이든 노조든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의 가치와도 분리되지 않는다. 메시지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 진실한 경험과 보편적 가치가 만나야 영향력을 갖는다. 메시지만 있으면 메신저는 순식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가 되고 반응도 이끌어낸다. 메시지가 주어가 됐다.”

강력한 메시지가 강력한 영향력을 만든다는 전제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메시지가 단독으로 존재할 수는 없고 메신저의 삶과 메신저의 의도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진실한 경험과 보편적 가치가 만나야 영향력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 메시지가 미디어라는 문제의식은 단순히 비약을 넘어 왜곡된 인식을 유도할 수도 있다.

분산 플랫폼의 시대, 콘텐츠 패키지가 해체되고 메시지가 파편화된 시대에도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매클루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메시지의 공급자 입장에서 쓴 책이지만 독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메시지에 숨은 권력 관계를 읽고 의도를 읽어내는 전략이 오히려 더 절실한 시점이다. 메시지의 원본을 확인하고 출처를 검증하고 메시지가 전달되는 맥락과 미디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비로소 진실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다.

메시지가 미디어다 / 유승찬 지음 / 나무바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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