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핑계로 재벌 싸고도는 조선일보의 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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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재벌 대기업의 지배권 강화에 발벗고 나섰다.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아야 한다는게 그 명분이다.

조선일보는 29일 1면과 3면, “M&A, 국내기업 손발 묶고 해외자본 펄펄 날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내 기업들이 출자총액 제한 등 역차별 규제에 묶여 외국자본과 경쟁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재벌 대기업들의 논리를 대변했다.

먼저 이 기사는 몇가지 오류가 있다.

3면 기사의 제목으로도 뽑은 “미·일에도 없는 출자·의결권 제한이 기업 경영권 흔든다”는 주장은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이라는 기업 형태가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형태라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또 이 기사는 재벌 총수의 지배권과 기업의 경영권 위기를 혼동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지배권 위기가 곧 SK주식회사의 위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SK주식회사의 경영권을 꼭 최태원 회장이 소유할 필요는 없고 그걸 정부 차원에서 보장해줄 필요는 더욱 없다. 이런 논의는 자칫 재벌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영구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문제 되는 건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과 국부유출 논란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경계해야할 것은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 재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단순논리다. 투기자본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이 얼마든지 있고 굳이 그 해법이 재벌 총수의 지배권 강화일 이유는 없다. 국부 유출은 막아야겠지만 그렇다고 그 국부를 재벌에게 넘겨주자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도 꽤나 과장돼 있다. 소버린자산운용에게 휘둘리고 있는 SK주식회사의 경우는 오히려 특별한 경우다.

SK주식회사는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지배권의 핵심축 역할을 해왔다. 최 회장이 SK주식회사를 소유하고 SK주식회사는 SK텔레콤 등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을 소유하는 순환지배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 결과 SK주식회사의 지분은 SK주식회사 이상의 훨씬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 소버린처럼 일정 지분 이상을 확보하면 그룹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SK를 비롯한 우리나라 재벌 기업집단이 이런 적대적 인수합병에 특히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소액의 자본으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 총수의 지배구조는 투기자본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결국 재벌 구조가 존재하는 이상 투기자본의 지배권 위협 또한 벗어날 수 없다. SK주식회사의 경우 이런 지분 피라미드가 특히 취약했고 게다가 분식회계 문제 등으로 주가까지 한참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투기자본의 지배권 위협을 막기 위해 재벌 구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그 주장의 바탕에는 재벌 총수들의 지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맹목적인 논리가 깔려 있다. 그동안 줄기차게 시장주의를 외쳐왔던 조선일보가 시장의 예외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부분은 투기자본 문제를 보는 조선일보의 관점이다. 조선일보는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보호해주자고 주장하지만 그건 몇몇 재벌 기업에 한정된 이야기고 투기자본에 노출된 수많은 다른 기업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조선일보의 관심이 투기자본 문제 보다는 재벌의 지배권 강화에 있거나 재벌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뿐 아직까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분명한 것은 출자총액과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공정거래법 조항을 풀어주는 것만으로 투기자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브릿지증권이나 외환은행, OB맥주, 만도 등 최근 몇년 동안 투기자본의 공세로 무너져 가고 있는 기업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기업들은 재벌 총수의 지배권 강화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끌어들여 재벌 개혁을 반대하는 논리로 전용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SK주식회사를 비롯한 재벌 대기업과 일반 기업의 경영권 위기는 상황이 다르다. SK주식회사의 위기는 최태원 회장 일가의 지배권 위기지 SK주식회사의 위기는 아니다. 게다가 SK그룹 이외의 재벌 기업집단에 경영권 위기는 거의 사실 무근이고 엄살이다.

투기자본 문제의 본질은 주주 자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주주 자본주의는 다분히 기형적인 재벌 구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재벌에 의지해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무시해왔고 그 결과 투기자본과 같은 극단적인 주주 자본주의를 방어할 수단이 사라진 상황이다. 근본 해법은 결국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뿌리내려 주주 자본주의와 자본의 투기적 속성을 견제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투기자본을 막고 재벌 총수를 보호할 게 아니라 투기자본과 재벌 총수 모두에게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월간 말은 지난 5월호, “삼성전자만 잡으면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투자와 고용 부진에서 비롯한 최근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주주 자본주의로 보고 재벌 대기업에 사회적 타협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테면 외국 투기자본과 주주 자본주의를 공동의 적으로 놓고 보면 재벌 대기업과 사회, 서로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월간 말은 재벌 대기업에게 국적 자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고 재벌 대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해법을 찾자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게 자본의 투기적 속성을 견제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 말의 주장은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 재벌을 마냥 풀어주자는 조선일보의 논리와 전혀 다르다. 투기자본의 문제를 재벌 개혁의 발목을 잡는 논리로 환원하는 수구 언론의 무지와 억지를 단호히 경계해야 한다. 이제야 말로 사회적 타협의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조선일보의 재벌 싸고 돌기는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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