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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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는 약속이 무더기로 잡혔다. 고등학교 동문회에, 전 직장 동료들 모임, 술 사준다는 친구, 모처럼 일찍 끝날 것 같다고 영화나 보자는 여자 후배, 그리고 야학의 교무 선거.

다른 건 대충 빠지거나 미룰 수 있는 약속이었지만 교무 선거는 일년에 딱 한번이고 다른 어떤 약속보다도 중요했고 게다가 내가 사회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전철이 이수역을 지날 무렵, 안내 방송에서 장애인들 시위 때문에 7호선이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뭔가 기사거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빠듯했지만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7호선 장암 방면 타는 곳은 경찰이 가로막고 있었다. 기자라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나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장애인 50명 정도가 타는 곳 아래, 전철 선로에 내려가 줄줄이 앉아 있었고 경찰들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바로 어제, 시각장애인 한명이 선로에 떨어져 전철에 치어 숨졌다고 했다. 이들은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전철을 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안전요원이 있거나 적어도 안전펜스 정도만 설치돼 있어도 그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마음 편히 지하철을 타지만 그들은 한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

참담한 광경이었다. 이들은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야 겨우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전철을 타지 못한 퇴근 길의 사람들은 맞은 편에 서서 이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숱하게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전철에 치어죽지만 신문에 뉴스 몇줄이 끝이다.

이날 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묵묵하게 버텼다. 그렇게 1시간 40분 가량 경찰과 대치하다가 자진 해산했다.


교무 선거는 기대 이상으로 잘 치렀다. 재문이가 교무가 됐고 그보다 중요한 건 서진이나 은혜, 령나, 해빈이 같은 후배들이 이제 교무 못지 않게 큰 역할을 할 거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자라는만큼 야학의 지평은 더욱 넓어지고 방향은 좀 더 명확해질 거라고 믿는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어울려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새로운 대안을 낳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한 사람의 교무를 뽑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얻었고 다시 발견했고 그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게 가장 큰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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