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야학의 지역화폐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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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성광야학의 교무를 맡고 있었던 무렵, 지역화폐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때 성광야학이 겪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참여의 부족이었다. 과제는 막연했고 학강과 강학들은 수동적이고 무력했다. 지역화폐가 그런 한계를 넘어설 적극적인 동인을 제공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때 나는 믿었다.

지역화폐는 모아서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 들어오는 대로 쓰고 나눠주는 돈이다. 지역화폐 운동은 단순히 새로운 돈을 만들어 쓰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새로운 돈을 매개로 재화와 용역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서로 교환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더욱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영만이가 우리집에 와서 잔디를 깎아주면 나는 지역화폐로 +5만원을 준다. 영만이는 +5만원이 되고 나는 -5만원이 된다. 영만이는 옆집에 사는 은정이에게 갓 따낸 포도 한 상자를 받고 그 +5만원을 줄 수 있다. 나는 -5만원을 메꾸려면 은혜네 집에 가서 유리창을 닦아주거나 이사짐을 날라주거나 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5만원에 이르는 뭔가를 해줘야 한다.

지역화폐는 우리가 쓰는 그냥 돈과는 다르다. 많이 모아봐야 은행에 저축을 할 수도 없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도 없다. 시장이 좁고 거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나 집 같은 비싼 걸 살 수도 없다. 버는 대로 쓸 뿐, 굳이 악착같이 모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빈익빈 부익부도 없다. 재화나 용역은 쌓여 있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흘러들어간다.

지역화폐는 그냥 종이조각이거나 장부에 기록된 계좌잔고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화폐 운동의 핵심 개념은 재화나 용역을 서로 거저 건네고 받는다는 데 있다. 거저 받는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그만큼 거저 베풀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이 약속은 지켜질 수도 있고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계속 거저 받기만 할 수도 있고 계속 거저 주기만 할 수도 있다. 서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역화폐로 계산된 노동의 가치는 흔히 노동에 들어간 시간으로 환산되고 사람에 따라 다를 이유가 없다. 지역화폐는 공동체 안에 수많은 거래를 만들어 낸다. 심지어 그냥 돈으로 사고 팔 수 없었던 재화나 용역의 거래도 전혀 다른 가치로 서로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주목한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지역화폐는 행동을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계정이 마이너스라면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여기서 돈은 물론 지역화폐를 말한다. 내가 플러스가 되면 누군가는 그만큼 마이너스가 된다. 결국 거래는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속도는 갈수록 더욱 빨라진다.

이를테면 세미나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세미나를 듣는 사람들이 지역화폐로 수업료를 지불할 수 있다. 그는 그 돈으로 다른 세미나를 들을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인가를 살 수도 있다. 자발적인 참여를 상품화하는 셈이다. 그동안 아무런 대가없이 쏟아부었던 노력 또는 희생이 이제 시장에서 정당하게 거래된다. 세미나를 준비하지 않고 늘 듣기만 하는 사람은 당연히 마이너스가 잔뜩 쌓인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또는 마이너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직접 세미나를 준비해야 한다.

굳이 세미나가 아니라도 뭐든 팔 수 있는 게 있다면 팔면 된다. 그게 어떤 종류의 물건이라도 좋고 청소나 자료복사, 컴퓨터 수리 등의 노동일 수도 있다. 마이너스를 잔뜩 쌓아두지 않으려면 다들 나서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이제 그동안 거래되지 않았던 것들이 거래된다. 정당한 가치를 부여받지 못했던 것들이 제대로 가치를 부여받는다.

지역화폐는 자발적인 참여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좀더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낸다. 새로운 세미나가 시작될 수도 있고 벽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할 수도 있고 고장난 전등을 고칠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강제하는 게 바로 돈, 지역화폐의 힘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그해 지역화폐 실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도 야학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재화나 용역이 아주 한정돼 있었다. 수업이나 세미나, 소식지 편집, 청소, 자료 복사, 그리고 어쩌다가 페인트칠 정도가 전부다. 게다가 수업에 들어가면 수업을 하는 사람과 수업을 듣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 세미나는 동기 부여에 실패했다. 어디에나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있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야학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곳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과 습득에 머물러 있었다는데 있다. 학강이나 강학이나 검정고시 학습의 한계를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강학들은 얄팍한 지식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지만 학강들은 아무 것도 팔 것이 없거나 몸으로 떼워 마이너스를 메꿔야 했다.

결국 시장은 양극화하고 한쪽에는 플러스가 한쪽에는 마이너스가 잔뜩 쌓이게 된다. 돈이 있어도 쓸데가 없고 막상 뭔가 하려고 해도 돈을 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새로운 거래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지역화폐는 환금성을 보장받지 못했고 시장은 무너졌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는 “소유와 축적 중심의 생활방식을 관계와 나눔 중심의 생활방식으로 바꾸는 운동”이라고 지역화폐 운동을 설명한다. 지역화폐 운동은 노동력을 강제로 팔지도 않고 억압적인 명령 체계 속에 일하지도 않으며 화폐의 수량이나 가시적 성과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경제 방식, 즉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경남 함양의 녹색대학을 찾아간 것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지역화폐가 과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가. 더 정확히는 지역화폐가 과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지난해 3월 국내 첫 대안대학을 표방하면서 개교한 녹색대학은 녹색화폐라는 새로운 실험으로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조폐공사에 의뢰해 돈을 찍어내기도 했다. 단위는 사랑. 이를테면 교수의 노동 1시간과 학생의 노동 1시간이 동일하게 5천사랑에 거래된다. 녹색대학은 등록금의 25%, 직원 급여의 75%까지 이 사랑화로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 구내매점이나 학교 앞 서점이나 구멍가게, 음식점 등에서 이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녹색대학의 경우도 문제는 거래의 부진과 환금성이었다. 녹색화폐를 받고 물건을 팔던 가게들은 곧 아무데도 녹색화폐를 쓸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녹색대학을 찾아가 현금으로 교환하는 수밖에 없다. 녹색화폐는 유가증권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데도 실패했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데도 실패했다.

오히려 녹색대학의 실험은 엄청난 비용 부담과 부작용을 남기고 끝났다. 먼저 문제가 되는 건 6천만원에 이르는 발권 비용이었다. 그 비용은 그린네트워크라는 회사가 댔다. 이 회사는 6천만원을 들여 30억사랑을 만들어 냈다. 1사랑이 1원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면 이 회사는 이 사업으로 무려 29억4천만원에 이르는 자산을 만들어 낸 셈이다. 녹색화폐의 한계는 여기서 비롯했다.

“만약 우리가 녹색화폐 사업을 직접 운영했다면 그 29억4천만원은 우리 공동의 자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녹색대학은 녹색화폐를 받아들여 통용하기만 했을뿐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피하고 싶었다. 결국 녹색화폐는 반년도 안돼서 사라지게 됐다.”

이무성 녹색대학 운영위원장의 이야기다. 녹색대학은 이런 문제들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녹색화폐를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고 녹색대학은 그 돈을 지급할 여력이 없었다. 녹색대학이 사업의 주체가 아닌 이상 그럴 의무도 물론 없었다. 이 위원장은 그때 “이대로 가다가는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급할 여력이 없는, 이를테면 부도수표를 마구 남발한 셈이었다.

처음에 1사랑은 1원과 통용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1원을 1사랑으로 바꾸기는 어려워졌다. 유통량이 떨어지고 환금성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화폐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나중에는 누구도 녹색화폐를 받으려 하지 않게 됐다. 결국 지난해 9월 녹색대학은 녹색화폐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녹색화폐는 유기농 농산물 상점 신시나 서울 인사동의 찻집 시천주 등에서 일부 쓰이고 있다.

녹색화폐의 실패는 이 학교가 딛고 있는 공동체의 기반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녹색대학은 막 개교를 한 뒤였고 지역사회에 뿌리가 얕았다. 이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역화폐로 공동체를 만들어 내려던 실험은 결국 실패했다. 지역화폐가 공동체를 결속시킬 수는 있지만 없는 공동체를 새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다. 접근 방식부터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이 위원장은 대전의 한밭레츠를 추천했다. 이 위원장이 보기에 한밭레츠는 지역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정착한 많지 않은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다.

한밭레츠는 1999년에 처음 설립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회원수가 530여명, 회원 업소는 80여곳에 이른다. 한밭레츠의 단위는 두루, 역시 1두루는 1원과 같다. 지난해 거래 건수는 2653만건, 거래 금액은 모두 3751만두루에 이른다.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는 지역 통화 거래 시스템의 줄임말이다.

한밭레츠는 같은 건물에 있는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의료생협에 가입한 병원들은 병원비의 30% 이상을 지역화폐로 받는다. 지역화폐가 통용될 수 있는 기반을 의료생협이 만들어 준 셈이다. 전체 거래의 46% 가량이 회원 병원에서 이뤄진다.

이를 테면 회원으로 가입한 음식점의 주인은 음식 값의 30% 이상을 지역화폐로 받을 수 있다. 그는 그 지역화폐로 병원비를 낼 수도 있고 다른 회원이 파는 유기농 농산물을 살 수도 있다.

한밭레츠의 경우도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회원들의 수동적인 태도였다. 회원들의 절대 다수인 회사원이나 가정 주부들은 무엇인가를 사서 쓰는 데만 익숙할 뿐 딱히 팔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낯선 사람에게 연락해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01년까지 한해 거래 건수는 500여건에 지나지 않았다.

“지역화폐가 자본주의 시장에서 통용되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 쉽지는 않았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해는 하더라도 선뜻 나서기까지 상당히 망설이는 것 같다. 우리는 먼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맺음에 주력하기로 했다.”

김성훈 민들레의료생협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김 국장은 한달에 한번씩 하는 품앗이 만찬이 한밭레츠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평가한다. 회원들은 각자 음식을 싸와서 함께 놓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목을 다지게 된다. 식사가 끝나면 품앗이 경매를 한다. 안 쓰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소개를 하고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낙찰돼 팔려 나간다. 물론 거래는 모두 지역화폐로 한다.

한번 거래를 해본 사람들은 큰 부담없이 새로운 거래를 찾게 된다. 버려뒀던 물건들이 주인을 찾아 팔려나가고 낯선 이웃들이 만나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집에서 직접 담근 간장을 파는 회원도 있고 잔치 치르는 데 일손을 돕는 회원도 있다. 외출할 때 아이를 봐주고 지역화폐로 일당을 받는 회원도 있다.

한밭레츠는 거래 금액의 5%를 운영비로 뗀다. 이밖에도 회원들은 가입비로 1만원, 회비를 한달에 2천원씩 내야 한다. 한밭레츠는 그 수입으로 상근회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등을 충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지역화폐라고 하지만 한밭레츠는 여전히 친목 도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의욕만 앞설 뿐 거래는 여전히 부진하고 상당수 회원들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다만 철저하게 지역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고 조금씩 그 공동체가 강화되고 있다는 부분이 한밭레츠의 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자칫 동호회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비슷한 성격의 송파품앗이도 주목할만 하다. 다만 송파품앗이는 송파구청의 지원을 받는다는데서 다르다. 송파품앗이는 송파구청의 송파 자원봉사센터에서 출발했다. 지금도 운영비는 모두 구청에서 지원하고 회비는 전혀 없다. 회원은 10월말 기준으로 614명까지 늘어났다. 올해들어 10월까지 거래 금액은 모두 20011만원, 한밭레츠보다 조금 적은 규모다.

송파품앗이에서도 가장 활발한 것은 한달에 한번 있는 장터다. 50명 정도 회원이 참여하고 안입는 옷이나 안쓰는 전자제품 등이 거래된다. 이밖에 회원들 사이에서는 피부관리나 학습지도, 차량 정비 등이 인기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상당부분 수입이 줄어드는 걸 감수해야 한다.

“수입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못한다. 이건 자원봉사의 개념이다. 베푸는만큼 다른 데 가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돼야 한다.”

김찬수 송파품앗이 부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역화폐가 자원봉사라는 개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원봉사는 자칫 한쪽 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다.

송파품앗이도 역시 빈익빈 부익부가 문제된다. 많은 사람은 300만에서 400만원 규모까지 모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이너스를 잔뜩 끌어안고 있는 사람도 있다. 송파품앗이는 자칫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지역주민행사 정도에 그칠 우려가 있다. 우선은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한밭레츠나 송파품앗이나 도시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결속력은 약하다. 회원들의 삶은 서로 연결돼 있지 않고 지역화폐는 재활용품을 거래하는 수단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회원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지역화폐의 실험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철학의 공유부터 부족한 상태다. 일부 언론의 떠들썩한 포장과 달리 우리나라 지역화폐의 실험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성광야학의 실패도 마찬가지다. 거래가 없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소외돼 있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 받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해도 안되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도 안된다. 그게 야학이 딛고 있는 현실이고 넘어서야할 과제다. 그때 공동학습과 대안의 모색도 가능하다.

이정환 성광야학 강학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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