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과 방침, 시스템을 고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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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가 한국 언론에 던지는 질문 “자네는 그동안 어디 있었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미국 보스턴글로브가 폭로한 카톨릭 사제들의 집단 성추행 사건을 다룬 실화 영화다.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 마틴 배런은 한 사제의 성추행 사건을 다룬 칼럼에서 피해자측 변호사가 “추기경도 알고 있었다”고 언급한 대목을 파고 들었다. 정말 그렇다면 엄청나게 큰 사건이겠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들춰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원래 그런 거 아냐”라고 넘어가고 어쩐지 외면하고 싶은 사안이었다.

일방의 주장만 있을 뿐 사실 확인이 쉽지 않거나 실제로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감안해야 했다. 합의로 끝난 재판 기록은 모두 비공개 처리돼 있고 교회는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피해자들의 주장을 기록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그러나 여러 사례를 모으자 하나의 패턴이 발견됐고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기자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3년마다 옮겨 다니는 사제들을 전수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가설을 사실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크로스 체크하고 최종적으로 이를 확인해 줄 내부 고발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공식 문건을 확보해야 한다. 불가능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 부딪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우연과 행운이 따라야 하지만 취재원들의 신뢰를 얻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렵사리 추기경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자들이 일단 이것부터 터뜨려야 한다고 하자 국장이 찬물을 끼얹는다. “조직에 초점을 맞춰요. 사제 개개인 말고. 관행과 방침에 대해. 교회가 체계를 조작해서 고소를 면했다는 증거를 가져와요. 바로 그 사제들을 다시 교구로 보내고 또 보냈다는 증거와 그리고 체계적으로 위에서 지시했다는 증거도.” 기자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스포트라이트팀은 단순히 성직자 중에 변태성욕자가 많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일상에 도사린 범죄와 말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들, 그리고 이를 은폐하는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폭로했다. 명단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에 단호하게 거절하던 내부 고발자는 결국 기자를 불러 세운다. “자네는 그동안 어디 있었지? 왜 이리 오래 걸렸나.”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만약 기사가 좀 더 일찍 나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건과 사건을 엮고 사건의 구조를 드러내면서 진실의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은 언론의 사명과 저널리즘의 본질을 다시 고민하게 한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을 감시하고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는 데 있고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현상의 외피를 건드리며 값싼 트래픽에 안주하는 이 땅의 기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뉴스의 혁신은 여전히 콘텐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무거운 교훈을 남기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