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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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보고 연기 잘한다는 이야기는 참 하나마나 이야기다. 배우니까 연기 잘하는 거야 당연하지 뭐. 그래봤자 결국 연기는 연기 아닌가. 그렇게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영화는 너무 작위적이다. 어쩌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꾸며낸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연기가 그럴듯해 보일수록 영화의 사람들은 더욱 불쌍해 보인다.

‘오아시스’는 매우 불쾌한 영화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만큼 너무 억지스러웠다. 자연스러울수록 더 억지스러웠다. ‘오아시스’가 가져온 불쾌함의 이유를 찾으려면 몇가지 질문이 더 필요하다.

1. 종두는 왜 공주를 다시 찾아갔을까. 꽃다발까지 사들고서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주인 없는 집에 문을 따고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종두는 그때 공주를 강간할 생각이었을까.

2. 종두는 공주를 강간하려고 했다. 종두는 정말 공주가 예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오랫동안 여자가 그리웠기 때문일까. 공주가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3. 공주는 왜 그런 종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까. 외로웠기 때문일까. 종두가 예쁘다는 말을 해줬기 때문일까. 종두 말고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종두 같은 사람마저도 그리웠단 말인가.

4. 종두는 공주를 사랑했을까. 공주는 종두를 사랑했을까. 사회와 사람들에게 소외 당하고 있다는 공감 때문이었을까. 그만큼 둘다 의지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5. 종두와 공주의 섹스는 끔찍하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섹스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섹스에는 따뜻함과 애정이 깃들여 있지 않았다. 공주는 그 메마른 섹스에서 과연 오르가즘을 느꼈을까.

6. 핏자국 묻은 담요는 왜 보여주는 것일까. 공주가 처녀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유치하고 천박한 발상이다.

7. 잔인한 일이다. ‘오아시스’는 어쩌면 뇌성마비 장애인을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오아시스’가 결국 가식과 위선으로 뒤범벅된 한갖 영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영화는 현실을 교묘하게 비웃는다. 그런 비웃음을 맞받아칠 분별력이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모른척 속아넘어가 주는 것일까. 이래저래 굉장히 기분나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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