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투자 좀 늘려달라”, 청와대 읍소 먹힐까.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16, 2019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1월16일 방송 내용입니다.)

1.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기업인들을 만났죠.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 특별한 형식 없이 질문 답변을 주고 받는 타운홀 미팅으로 진행됐습니다. 문 대통령이 “일자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는데요. 이거 많이 보던 모습이죠. 과거 모든 대통령들이 경제가 안 좋아진다 싶으면 재벌 총수들을 불러서 투자를 늘려달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1-1. 그런데 기업이 대통령이 부탁한다고 투자를 늘리거나 부탁 안 하면 투자를 안 하거나 하나요?

= 일단 정부 입장에서는 투자를 늘린다, 고용이 늘어날 거다, 이런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 밥만 먹지 말고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라, 이런 기사가 많습니다. 어제 모임에서 보온병을 나눠줬는데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이라고 적혀 있었죠. 기업들 팔을 비틀어서 무슨 무슨 공장을 지어라, 지시하는 시대는 아니니까요.

= 보통 기업인 면담 다음날이면 “기업들이 투자 보따리를 푼다”, 이런 기사가 쏟아지는데요.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났을 때는 다음날 “100조원 투자 보따리 푸나”, 이런 기사가 났었죠. 그리고 지난해 8월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를 만난 뒤 이틀 뒤 향후 3년 동안 180조 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신문에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까지 1면에 삼성의 투자 확대 소식이 게재됐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투자 발표가 오늘이나 내일쯤 쏟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2. 3년 동안 180조면 1년에 60조인데요. 이게 많이 늘렸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 사실 삼성은 2015~2017년까지 3년 동안 150조원 가까이 투자했습니다. 그러니까 늘리긴 늘린 건데 파격적으로 늘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년 동안 4만 명이라는 것도 삼성전자 서비스 직접 고용 8000명이 포함된 것이고 원래 해마다 9000명 정도 채용하기 때문에 연간 2000명 정도 늘어난 규모입니다. 그러니까 역시 늘어나긴 늘어난 건데 엄청난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그런데 투자 계획이라는 것 자체가 집계가 안 되기도 하고. 기준도 모호합니다. 실제로 개별 기업들이 얼마를 투자했는지, 애초에 투자라는 개념 조차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것도 그냥 선언 이상의 의미가 없고 실제로 어디에 투자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3. 실제로 약속을 지키느냐가 관건일 텐데요. 과거 경험을 보면 어떻습니까.

=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되자 마자(2002년 12월31일) 경제 단체장들을 불러서 재벌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경제 환경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말했고요. 그런데 잘 안 됐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때도 2013년 8월 청와대에서 재벌 총수들과 회동이 있었죠. 30대 재벌이 155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연초보다 6조 원 늘어난 규모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총수들에게 “밝히신 계획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는데요. 한국정책금융공사 발표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설비투자는 2012년 대비 0.1%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 2017년 7월에도 문재인 정부 초기에 재벌 총수들과 모임이 있었죠.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SK, KT 등 5개 그룹이 약속한 협력사 지원 기금이 1조3000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현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협력사들에게 물품 대금을 대출해주겠다는 거라 실제로 지원금은 260억원 밖에 안 된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4. 청와대가 요청하면 투자를 늘리는 시늉만 했다,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 업계에서는 성의 표시를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고용을 늘린다는 것도 갑자기 정부 눈치를 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인력을 채용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 그런데 2013년 6월 기준으로 1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이 477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계산하면 759조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사내유보금=현금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내유보금이 적정 수준을 넘어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5. 정부가 그래도 재벌에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이 재벌에 달려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 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300인 이상 기업들이 지난해 고용을 5만여명 늘렸는데 이게 전체 고용 증가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300인 이상 기업들이 우리나라 설비투자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2분기부터 설비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 올해 전망도 좋지 않아서 지난해 12월 산업은행이 3700개 국내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설비투자가 170조원으로 지난해 대비 6.3% 줄어들 거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지난해에도 2017년 대비 4.4% 줄어들었습니다. 설비투자지수는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연속 하락했습니다. 외환위기 때 1997년 9월부터 1998년 6월까지 10개월 하락한 적이 있는데 20년 만에 처음입니다.

6.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는 이유가 뭘까요?

=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 5위입니다(세계은행 기업 환경 평가).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가 500억달러, 15%나 늘어났습니다. 한국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낮은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 한국정책금융공사 조사에서 왜 투자를 안 하는 거냐 물었더니 기업의 35.4%가 ‘수요부진’, 그리고 34.4%가 ‘불확실한 경기전망’이라고 답변 했습니다. 정부가 투자하라고 압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돈이 안 되니까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 사실 한국 경제가 과거처럼 공장 짓고 사람 뽑아서 성장하던 시대가 아니란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구 구조도 20대와 30대가 줄어들고 있고 노동 가능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취업자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죠. 정부가 혁신 성장을 강조하는 것도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일 텐데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바이오 등 이른바 4차 산업 혁명은 갈수록 노동력을 덜 필요로 하는 산업입니다.

7. 경제지들은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 어제 모임에서도 대기업 총수들이 한 목소리로 규제완화를 당부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무가 기업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고요.

= 현대차는 수소차 규제 완화를 요구했고 SK는 사회적 경제가 혁신 산업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지원을 당부했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와 환율 절상을 약속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기업 미팅이 많았죠. 규제완화와 감세라는 당근을 내걸었고요.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대기업들의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경험을 보면 규제 완화가 투자를 늘리지 않았고 오히려 기업들 이윤을 늘리고 사내 유보금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 2007년과 2015년을 비교해 봤더니 과세표준 1000억원 이상 기업들 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3%에서 8.8%로 늘어났는데 이들이 낸 세금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에서 1.4%로 줄어들었습니다. 많이 벌어서 많이 세금 내고 많이 사람 뽑아서 경제를 키우면 좋은데 실제로 국민경제와 기업이 따로 노는 상황이 됐다는 거죠.

8. 정부가 재벌 총수들 만나는 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과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기업 범죄를 저지르고 유죄 판결을 받은 상황인데 대통령이 여러 차례 만나서 부탁하는 모습이 좋지 않은 시그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공장이나 연구소를 만든다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자리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최대 고민인데요. 결국 재벌에 고용 등을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게 이명박 대통령의 구호였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이미 경험으로 입증됐죠. 당연히 지원도 필요하지만 공정한 시장의 룰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투자 좀 늘려라고 할 게 아니라 실제로 투자를 늘릴 유인을 제공해야 하고 그게 일방적인 규제 완화 선언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 혁신성장과 창조경제가 뭐가 다르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고요. 혁신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장하성 실장이 혁신성장, 김동연 부총리가 소득주도 성장을 진두지휘한다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아웃된 상태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킬만한 명확한 그림을 그려줘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www.leejeonghwan.com
leejeonghwan.com audio
Voiced by Amazon Polly

Related Articles

Related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한다는 것.

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