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와 서울신문 인사 개입 논란, 성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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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사무관을 지낸 신재민씨가 “청와대가 KT&G 사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동영상을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신문 사장을 교체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고도 밝혔다. KT&G 건은 MBC가 서울신문 건은 미디어오늘이 몇 차례 보도한 바 있는데 실제 담당 공무원의 폭로가 터져 나오면서 다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공직사회의 상명하복 문화와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기에 바쁜 구태의연한 관행, 늦게나마 이를 폭로하는 것으로 소신을 지키려는 현장 공무원의 결의와 분노 등 시사하는 바가 큰 영상이다.

일단은 신재민씨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면서, 몇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다.

KT&G의 경우는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민간 기업에 대한 인사 개입이라고 보기에 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정부도 민간 기업에 지분을 갖고 있다면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 정부가 KT&G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만 않지만 기업은행의 대주주고 기업은행이 KT&G의 주요 주주다. 기획재정부가 보유한 IBK기업은행 지분이 51.8%, 역시 정부가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기업은행 지분이 각각 1.9%와 1.5%, 실질적으로 정부 지분이 54.2%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행의 KT&G 지분은 7.5% 밖에 안 된다. 국민연금공단 지분이 10.5% 있지만 이건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아니니까 논외로 하고.

결국 정부가 우회적으로 KT&G에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7.5%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경영진 교체를 운운할 정도의 지분은 아니지만 정부도 당연히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부당하게 압력을 넣는 게 문제지 지분이 있는데 그냥 들고만 있으라는 건 말이 안 되고 낙하산 논란과 별개로 정부 지분은 공적인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의결권 행사가 적절했느냐를 따질 수는 있지만 의결권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KT와 포스코에 대한 인사 개입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 행사고 국민의 세금을 쓰는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지분을 굳이 보유하려면 명분과 목적이 있어야 하고 국가 소유의 자산은 공적 목적에 맞게 관리돼야 한다.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면 주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고 필요하다면 경영진 교체도 검토할 수 있다.

KT&G의 경우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기획재정부가 반대 표를 던졌는데 56.3%의 찬성으로 백복인 사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물론 국민연금의 독립은 또 다른 문제고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논외로 한다.)

부당한 압력이 없었고 7.5% 주주로서 정당한 권리 행사를 했고 결국 표 대결에서 실패했다면 그것만으로 큰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낙하산이냐 아니냐 지난 정권 인사에 대한 보복이냐 아니냐는 또 다른 층위의 문제고. 실제로 표 대결이 아니라 아마도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면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서울신문의 경우 정부 지분이 30.5%, 여기에 KBS 지분 8.1%까지 더하면 38.6%가 된다. 오히려 KT&G 보다는 정부 지분이 많은 편이지만 언론사에 낙하산을 내려 보내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포스코가 보유한 지분이 19.4% 있지만 포스코에는 정부 지분이 없기 때문에 별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29.1%, 이와 별개로 자기주식을 9.6%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합계 38.7%) 포스코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포스코에 영향력을 넣는다면 표 대결에서 과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둘 다 민간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언론사에 대한 지배 개입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애초에 정부가 언론사 지분을 소유하는 게 문제고 소유하고 있다면 KBS와 MBC처럼 공적인 지배구조를 보장하고 정부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 게 맞다. 정부가 언론사 지분을 보유한다면 시장에 맡겨둘 수 없는 영역에서 언론의 독립을 보호해야 할 명분이 있을 때에 한하는 게 맞다.

이번 논란과 별개로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서울신문 지분은 단계적으로 처분하는 게 맞다고 본다. 서울신문 구성원 역시 정부 지분 매각을 요구하고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정부 구독료 등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고 본다.

참고로 서울신문에는 지난 3월 한겨레 출신의 고광헌 사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왔고 서울신문 노조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고광헌 사장이 서울신문 독립성을 약속 받아오겠다는 각서까지 써가면서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낙하산 사장이 낙하산 사장을 끝내겠다는 약속으로 자리를 보장 받은 셈인데 결국 서울신문 독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방안 등 후속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 상태다.

서울신문의 경우 실제로 고광헌 사장이 선임되는 과정에 포스코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큰데 포스코의 의사 결정에 정부의 지시 또는 압력이 있었다면 그게 문제가 된다.

짚고 싶은 것은 정부가 지분이 없는 민간 기업(이를 테면 포스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문제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에 지분 만큼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 일단 그것만큼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의결권 행사가 공적인 가치에 부합하느냐를 따져야 하고 충분한 사회적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신재민씨가 지적한 것처럼 정부가 부당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건 당연히 문제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을 무조건 문제라고 할 수는 없고, 민간 기업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면 안 되지만 정부가 어떤 이유로든 민간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정당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사하지 못할 지분이라면 처분하는 게 맞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KT&G 사장을 바꿔야 한다고 7.5% 지분만큼 주장할 수 있는 것이고 서울신문은 38.6%나 보유하고 있지만 정부가 어떤 종류의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처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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