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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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했는데 재미가 없을 리 없다. 김병철과 안선희가 쓴 이 책은 한국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병철은 미디어오늘 후배다. 텀블벅 펀딩에 참여했더니 책과 함께 사진 엽서 5장이 왔다.)

11명(팀)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몇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문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거나 “매일 이어지는 야근, 강요된 회식과 술을 강권하는 회사 문화” 때문이기도 하고 “일에 회의감이 생겼다”거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나”, “분명히 세상엔 너무나도 즐겁고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을 텐데” 하는 기대감과 아쉬움 때문에 이민을 준비하고 결행한 사람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기만 하면 되는 나라에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같은 고민도 있었고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도 있었다. 분명한 건 다들 새로운 삶에 대한 모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다. 다만 굳이 돌아올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열심히 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 퇴근 이후에 가족들과 저녁을 보낼 여유가 있는 삶, 충분한 휴가, 보장된 노후, 개인의 행복과 권리가 존중 받는 사회를 누구나 꿈꾼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정착하려면 확실한 직업 또는 기술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언어가 돼야 한다. 영주권을 받을 확실한 계획이 없으면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독일 에센에 살고 있는 김성길씨는 독일 이민을 위해 치기공 기술을 배웠다. 그런데 사실 치기공사는 독일에서 부족한 인력이 아니었고 운 좋게 좋은 사장을 만나지 않았다면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장이 직접 노동 허가 요청을 해줬다고 한다. 부인 정보경씨는 독일에서 직업교육(아우스빌둥)을 받고 치위생사 자격을 따서 취업했다.

호주 멜버른에 살고 있는 이재호씨는 한국에서 잘 나가던 영어 강사였는데 호주에서 청소 업체 사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 번도 자신이 청소를 업으로 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두 명이 함께 일하는데 시간당 70~8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호주 달러 기준이니 시급이 6만 원쯤 되는 셈이다. “일은 고되지만 미래가 그려지니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정확한 수입은 밝히지 않았지만 사업하던 친구가 월 1000만 원을 벌다가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한국에서 월 200만 원 받고 일하더라는 걸 보면 이재호씨의 수입도 상당할 것 같다.

세금은 많은 만큼 복지는 좋다. 프랑스의 곽원철씨는 9월에 세금 신고를 하는데 거의 한 달 월급을 통째로 낸다고 한다. 캐나다의 이장헌씨는 40%를 세금으로 낸다. 호주에 사는 김소연씨도 소득의 30%를 세금으로 낸다.

김소연씨는 부모를 초청하면서 7만5000달러를 기여금으로 냈는데 부부가 월 3000달러 정도의 기초 연금을 받는다. 김소연씨의 아버지는 한인 업체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일주일에 사흘만 일해도 월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된다고 한다. 다만 월세는 비싸다. 김소연씨는 250만 원 정도를 월세로 내는데 비용을 아끼려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휴가도 많다. 곽원철씨는 1년에 45일의 휴가를 쓴다. 워킹 데이로 9주니까 두 달이 넘는다. 대신 근무시간에 짬을 내서 개인 볼일을 보는 일은 없다고 한다. 은행이나 부동산 등의 일로 한두 시간 자리를 비울 거면 휴가를 낸다. 김소연씨는 연차 휴가가 1년에 4주다.

확실히 어떤 나라들은 삶이 질이 다른 것 같다.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딴 뒤 온타리오주 공무원으로 취업에 성공한 이장헌씨는 오전 7시30분부터 9시 사이에 30분 단위로 출근시간을 정할 수 있다. 이장헌씨는 7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3시30분에 퇴근한다. 운동하거나 영화관에 가고 집에 가도 6~7시다. 직장 동료들끼리 술 먹는 일도 거의 없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개와 산책을 하고 일찍 출근한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고 나이먹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력서에 나이와 성별, 학력을 적지 않고 나이 때문에 떨어뜨리면 바로 소송에 걸린다.

이장헌씨에 따르면 캐나다 주 공무원은 신입 연봉이 4만5000달러쯤. 은퇴하고 나면 직전 5년 급여의 평균 60%를 죽을 때까지 달마다 받을 수 있다. 교통사고가 난 사람 옆에 한 시간씩 함께 기다려 주는 나라, 여유와 배려가 문화로 자리잡은 나라들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참고로 미국 편이 가장 재미없었다.)

한국에서 아빠들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하루 6분이라고 했더니 아무도 안 믿더라는 이야기도 웃어넘기기엔 팩트 폭력이다.

캐나다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 취업에 성공하고 영주권을 받은 이성진씨 부부는 생활비가 4000달러 정도 드는데 맞벌이라 한 사람의 소득은 통째로 저축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빵사로 취업했다면 130만~150만 원 정도 월급을 받고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레스토랑 종업원도 꽤 괜찮은 직업이 될 수 있다. 여행을 위해 투잡을 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자녀 양육 보조금이 월 650달러, 둘이면 1400달러까지 나온다. 학교를 다니는 이성진씨네 친구 부부는 고정 수입이 없는데도 양육 보조금으로 월세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살고 있는 김소연씨는 “별다른 목표 없이 인생의 다른 문을 열고 싶다, 흘러 가듯이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콜롬비아에 왔는데 “콜롬비아에 온 게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김소연씨 챕터를 읽으면서 이 사람은 딱히 콜롬비아가 아니라 어디라도 잘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치안도 좋지 않고 소득 수준도 높지 않은 곳이지만 적게 벌더라도 즐겁게 사는 이 나라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콜롬비아가 또 가장 맞는 나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확실히 캐나다가 대부분의 이민자들에게는 무난한 것 같다. 영어를 잘 못해도 차별이 심하지 않고 삶의 질도 높고 복지 수준도 높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잘 돼 있다. 캐나다에서는 심지어 벌금 조정을 하러 법정에 가서 통역사를 요청했는데 통역사가 안 오면 벌금이 무효가 된다. 이성진씨는 신용카드 회사와 통화를 하다 한국어 통역사를 요청해서 3자 통화를 한 적도 있다.

기업 문화도 다르다.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건 퇴근 시간 이후에 일을 하면 수당을 줘야 하기 때문에 화를 낸다고 한다.

“이거 일 누가 했어?” 이렇게 따지는 경우도 없다. 일을 잘 못하면 그건 상사의 책임이다. 캐나다의 이성진씨와 뉴질랜드의 최재영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최재영씨가 사고를 쳐서 쫓겨나는 거 아닐까 걱정하던 참에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너만의 실수가 아니라 확인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실수다. 책임은 내가 진다. 그래서 내가 더 많은 돈을 받는 거다.”

다들 말하는 건 어디나 사람 사는 건 같다는 것이다. 어디나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다. 다만 좀 더 삶에 충실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민을 꿈꾸고 실제로 그런 꿈을 이뤄주는 나라들이 있다.

다만 이민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성길씨 부부가 독일에서 만난 일곱 팀 가운데 여섯 팀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언어가 안 되면 취업도 쉽지 않고 돈이 떨어지면 버틸 수가 없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살고 있는 최동섭씨는 별다른 경력이 없어 이왕이면 좀 더 기회가 있을 것 같은 동유럽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전자 현지 공장에 취업했지만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최동섭씨는 당초 아일랜드에 정착하려 했으나 거주 비자를 얻지 못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CJ에 다녔던 안승현씨는 영국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뒤 취업을 결심했으나 5개월 가까이 구직 활동을 해야 했다. AOL 런던 지사에 취업한 안승현씨는 이제 한국에 갔다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면 “이제 드디어 집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런던 시내에 살면서 한때 소득의 절반을 월세로 내기도 했지만 “여기 오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내 자신 개인에게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를 잘해도 언어의 장벽은 여전하고 소수 인종으로 사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고 한다.

이장헌씨는 캐나다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면 전문 기술을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뭘 하든 언어가 돼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성진씨는 IT를 전공하고도 1년 넘게 마트나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경력이 없으면 취업이 어려운 건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인턴이든 파트타임이든 일을 시작하라는 이야기다.

김소연씨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나가서 편하게 살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은 이민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어디든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프랑스 그르노블에 살고 있는 곽원철씨 부부는 ‘한국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프랑스에서는 살고 싶다’거나 ‘캐나다에 살고 싶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행복과 권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나라, 누군가에게는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을 떠난 게 아니라 멀리 사는 것일 뿐이라는 인식도 새삼 새롭다. 높은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많다. 곽원철씨는 그래서 모두에게 이민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자녀를 유럽으로 보내라’고 조언한다.

세상을 한 바퀴 돌고 온 김병철은 “‘어느 쪽의 삶이 더 낫다’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고 어쨌거나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고 서울도 매력적인 도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는 제목은 (‘그들은’이 아니고 ‘나는’이라고 쓴 걸로 봐서) “그래서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김병철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내가 냉소적이었던 이유를 책을 읽으니 알 것 같다. “나는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보다는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을 텐데 이 책이 어느 정도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으면 인터뷰 뿐만 아니라 각 나라마다 기초 데이터를 좀 더 풍성하게 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 김병철·안선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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