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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댓글과 박근혜 댓글이 같나?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7, 2018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12월27일 방송 내용입니다.)

1. 어제 드루킹 사건 결심 공판이 있었죠. 검사가 징역 7년을 구형했네요.

= 네. 지난 5월에 특검이 수사가 시작됐고 8월에 결과를 발표했죠. 9월부터 재판을 시작해 1심 선고는 1월25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사실 구형(求刑)이란 단어가 일본식 조어인데요. 영어로는 그냥 ‘ask’나 ‘demand’라고 합니다. 검사가 판사에서 어느 정도 형량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죠. 사실 법에도 없는 단어입니다.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 신문과 증거조사가 끝나면 검사가 사실과 법률적용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하여야 한다고만 돼 있습니다. 결심 공판을 하고 다시 날짜를 잡아서 선고 공판을 하는데 언론 보도에서는 구형이 곧 선고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어디까지나 검사의 의견일 뿐 법원의 판단은 또 별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 네. 구체적으로 적용된 혐의가 뭔가요?

= 댓글 조작으로 7년 구형을 받았다, 대부분 언론이 이렇게 보도하고 있는데요. 엄밀하게 말하면 댓글 조작 또는 여론 왜곡 등은 법에 명시된 범죄가 아닙니다. 실제로 드루킹(김동원)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방해입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댓글 140만개에 9971만 건의 공감 비공감을 클릭하는 등 네이버와 카카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게 검찰의 핵심 주장입니다. (검찰은 “소수 의견을 다수 의견처럼 꾸며 민의를 왜곡하고자 한 것으로,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용납될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강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2-1. 업무방해죄만으로는 징역 7년까지 나오지 않죠?

= 업무방해는 징역 5년 이하 벌금 1500만원 이하의 처벌이 가능합니다. 검찰은 드루킹이 고 노회찬 의원 불법 정치자금 제공한 혐의에 징역 1년6개월, 김경수 경남도지사 보좌관에게 뇌물 공여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더해서 징역 7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니까 업무방해 혐의에 4년7개월이란 계산이 됩니다. (김경수 지사는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는데 드루킹은 선거법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구형은 검찰의 의견을 제안하는 것일 뿐, 실제 선고에서 깎일 걸 감안해서 높여 부르는 경우가 많죠.

3. 분명히 여론 조작은 심각한 범죄인 건 맞는데 여론 조작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이거 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왜 그런 건가요?

= 법적인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했던 허위사실 유포죄, 정확하게는 전기통신기본법에 공익을 해하기 위해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은 2010년에 위헌 결정이 났습니다.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 포함된다는 겁니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남아있지만 드루킹 사건과는 거리가 멀고요.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런 말을 했는데요. 동네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데 글씨체와 분필 색깔을 바꿔 가면서 여러 사람이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 불법이 될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써서 여론을 왜곡했다고 하더라도 여론은 한 장의 도화지가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느냐는 논리죠. 만약 이번에 드루킹이 업무방해로 형사 처벌을 받는다면 여론 조작을 처벌할 근거는 없지만 그게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판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4. 네. 일단 법원 판결을 지켜봐야겠네요. 네이버가 그래서 드루킹 사건 이후 댓글 시스템도 바꾸고 했죠.

= 댓글 조작이 여론을 왜곡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다만 댓글 조작만으로는 처벌하기 쉽지 않고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비정상적인 패턴을 감지한다거나 같은 내용의 댓글이 짧은 시간 안에 연속으로 등록되는 걸 차단한다거나 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죠. 네이버가 댓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호감순이나 순공감순이나 배열을 바꾸는 것으로 근본 대책이 안 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댓글 조작이 문제인 건 맞고 공무원이 아니라면 일반인이 댓글을 열심히 다는 걸 처벌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인위적인 여론 조작 시도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만들 수 있는데 제대로 대응을 안한 게 문제라는 거죠.

5.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성격은 많이 다르죠?

= 국가 권력이 여론 조작에 나선 것과 한 개인이 여론 조작에 나선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선거를 앞두고 심리 전담 부서를 두고 정권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죠. 드루킹은 오히려 민간인이 정부에 비판적인 댓글을 달다가 적발된 사건입니다. 이 사람이 과거 민주당에 우호적인 글을 많이 썼던 사람이고 청와대에 인사 청탁을 했다가 실패하자 정권에 등을 돌리고 여론 조작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민간의 영역입니다. 만약 선거 때 김경수 지사의 부탁을 받고 민주당에 우호적인 글을 썼다면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김경수 지사(명시적인 지시가 있었다면 문재인 후보까지)가 선거법 위반을 하는 것이지 드루킹이 위반하는 건 아닙니다.

6. 김경수 지사 재판도 결심이 곧 있죠?

= 내일(28일)입니다. 관전 포인트는 선거법 위반이 적용되느냐, 그리고 김경수 지사가 여론 조작을 지시한 정황이 인정되느냐 여부입니다. 드루킹이 (나중에 입장이 뒤바뀌긴 했지만) 선거 때 단순히 특정 후보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달았다면 설령 김경수 지사가 그걸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선거법 위반이 안 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허위 사실을 공표했거나 상대 후보자 비방을 한 게 아니라면 이른바 선플을 선거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죠. 설령 그게 의도적이거나 조직적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매크로를 썼다면 그건 업무방해가 되는데 그건 별도로 따질 문제고요.) 정권 차원에서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한 것과 선거 캠프 당직자가 여론을 관리하는 걸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선거법 위반 부분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힘이 실립니다.

7. 언론 보도도 진보 보수에 따라 논조가 엇갈리는 것 같던데요.

= 미묘하면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드루킹 사건을 정권 차원의 여론 조작으로 보고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댓글과 드루킹 댓글을 동일하다고 보고 “드루킹은 사설 국정원” 등의 표현을 쓰면서 정권 차원의 여론 조작으로 몰아가려는 보도가 많았습니다. 일단 특검은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에게 여론 조작을 지시한 정황을 입증하지 못했죠.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특별히 논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구형 기사를 잘 쓰지 않는 분위기기도 합니다.) 과거 박근혜 정권이 개인적 일탈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지만 드루킹 사건의 경우 일반인의 개인적 일탈이라 성격이 다르기도 하죠. 그렇지만 여전히 특검 수사가 살아있는 권력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비판은 진보 보수를 떠나 유효합니다. 한겨레는 내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드루킹 사건에서 한겨레가 김경수 지사에 우호적인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8.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1심에서 구형이 얼마가 나왔나요?

= 2014년 7월이었죠.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했습니다.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으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줄었고요. 공직선거법은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항소심에서 선거법도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으로 법정 구속됐다가 대법원에서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며 파기 환송됐죠. 그리고 지난해 8월 징역 4년이 선고돼서 올해 4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국가 권력이 주도한 여론 조작과 민간 차원의 여론 조작, 법원의 판단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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