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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뉴스의 사막’은 어디일까.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2, 2018

(10월11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발언을 정리해 봤습니다. 가나다 순 발표라 순서 기다리는 중에 후다닥 작성.)

저는 저널리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가 공개한 뉴스의 사막 지도(desert of news)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뉴스 비즈니스의 붕괴와 디지털 전환이 확산되면서 지역 단위 일간신문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한국에서 뉴스의 사막은 어디일까요.

물론 한국 신문 시장의 상황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신문사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지역으로 내려가면 일간지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뉴스의 사막의 양상이 다른 것이죠.

뉴스 기업도 너무 많고 포털 사이트에는 하루에 3만 개의 뉴스가 쏟아져 들어온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저널리즘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널리즘의 다양성과 뉴스의 파편화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이야기 말이죠.)

오늘 같은 자리에서 다들 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공부 잘하고 정의롭고 사명감 넘치는 기자들이 어떻게 기레기가 되는가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본 투 더 기레기라서 그럴까요?

포털을 보면 쓰레기 기사가 넘쳐나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비슷비슷한 기사를 쏟아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취재 현장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이 저널리즘의 근간이 됩니다. 아주 작은 팩트 하나, 쓰고 나면 너도나도 인용 없이 가져다 쓰는 팩트 하나를 찾기 위해 일상적으로 수많은 삽질과 뻗치기와 무의미할 수도 있는 보도자료를 커버하면서 이슈를 추적하는 것이죠.

그런데 100명씩 200명씩 기자들을 두고 있는 언론사들이 일상적인 커버리지를 소화하기가 갈수록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왜 너네는 JTBC처럼 뉴스타파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취재 현장에서 일상적인 취재 보도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크고 작은 팩트들이 모여서 더 깊이있는 취재의 기초를 이루죠. 그래서 뉴스를 공공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역할도 크지만 애초에 저널리즘은 협업 프로젝트입니다. ‘기레기’라고 싸잡아 비난하고 냉소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보도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누군가는 연예 기사도 쓰고 스포츠 기사도 쓰고 일상적인 사건 사고 보도도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진짜 저널리즘이고 여기서부터는 시시하고 있으나마나한 그런 게 아니라 저널리즘의 다양한 층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탄탄한 팩트의 풀이 구성돼야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도 가능하겠죠. 그런데 그런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근간에는 일상적인 팩트 수집과 팩트 체크가 있고 여기에 저널리즘의 원칙이 깔려 있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저널리스트들이 왜 사명을 포기하는가. 저널리즘의 원칙을 저버리는가.

저는 기자 생활 20년차고, 사실 지금은 취재 현장을 떠나 언론사 경영을 맡고 있지만, 그래서 요즘은 언론의 공공성, 그리고 공공재로서의 뉴스가 어떻게 지속가능한가, 어떻게 좋은 뉴스를 만들면서 월급도 많이 주고 뛰어난 기자들을 끌어모으고 계속해서 뉴스에 투자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자본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 언론사들이 자립하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고민 말이죠.

공짜로 뉴스를 뿌리고 광고를 끼워팔던 모델이 끝났습니다.

많은 언론사들이 뉴스 유료화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MP3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했지만 이제 파일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멜론과 넷플릭스에서 월 정액을 내고 스트리밍으로 언제든 접속해서 보는 시대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왔고 뉴스 콘텐츠도 멤버십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고 실제로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광고 시장은 이미 무너졌고 멜론과 벅스,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것처럼 이제 디지털에서도 뉴스를 구독하는 시대가 될 거라는 전망이죠.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이미 2013년부터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따라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뉴스를 과연 돈을 낸 사람만 보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줄리아 카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뉴스는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공공재여야 하고 돈을 낸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된다면 저널리즘의 사명에도 위배된다는 건데요. 공짜로 뿌려지는 저질 뉴스와 돈 내는 사람들만 보는 고급 뉴스가 나뉜다면 그것도 불행한 일이죠.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디지털 유료화가 가능하다면 유료화로, 후원 모델이 가능하다면 후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언론사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들이 뒤섞여 소비되는 시대, 뉴스 기업들은 이제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인사이트라는 사이트 아시죠? 페이스북 팬이 568만명,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이트입니다. (JTBC가 92만명, 조선일보가 57만명, KBS가 198만명, 한겨레가 33만명입니다.) 취재도 사실 확인도 없이 인터넷 이슈를 좇아 콘텐츠를 쏟아내는 공장입니다. 주류 언론사들이 이런 사이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카드뉴스 만들고 바이럴 동영상 만드는 게 혁신이라고 포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가짜 혁신이 오히려 뉴스를 카니발라이즈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건 그들의 일이고 저널리즘의 다양한 층위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게 저널리즘의 본질일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뉴스는 상품이고, 상품 가치를 입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널리즘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독자들은 여전히 진짜 뉴스를 갈망합니다. 권력과 맞서는 정의로운 기자들에게 열광합니다. 다만 낡은 뉴스와 구태의연한 메시지에 싫증을 내고 있을 뿐. 디지털 혁신은 결국 저널리즘의 본질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아란 연구위원님 말씀대로 저널리즘의 본령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의제를 제시하고 건강한 토론을 끌어내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게 저널리즘의 존재의 이유죠. 어떻게든 뉴스에 돈을 내게 만드는 언론사들이 나타날 것이고, 다른 뉴스 기업들은 갈수록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똑똑한 기자들을 기레기로 내몰게 될 것이고요.

그리고 독자들은 그런 파편화된 기사를 보면서 분노하는 것이고요. 맥락이 거세된 기사와 맥락이 사라진 소비가 저널리즘을 황폐화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실 전달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이제 뉴스의 맥락을 전달하는 게 저널리즘의 중요한 사회적 책임으로 부상하게 됐습니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수간도 허용해야 한다거나 난민을 수용하면 이슬람 국가가 된다는 등의 허위 정보.

허위 정보(가짜 뉴스와 구분해서 허위 정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의 범람을 막는 건 건강한 상식과 합리적인 토론입니다. 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부끄럽게 만들고 고립되게 만드는 것 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이런 허위 정보가 쏟아지는 것이고, 가짜 뉴스를 처벌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차별과 혐오, 기득권의 이해를 확대 재생산하는 여론의 왜곡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게 지금 언론에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법 2년 뒤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오래된 거짓말이죠.
외국 투기자본이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삼성이 잘 돼야 한국 경제가 잘 된다,
공급을 늘려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용이 줄어든다,

이렇게 주류 언론이 퍼뜨리는 허위 정보에 우리는 전면으로 싸우고 있는가, 하는 의문과 반성을 갖게 됩니다.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의 핵심은 무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더 이상 불의와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저널리스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냉소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뒤집을 만한 강력한 저널리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 원칙 10가지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는 것이죠.

뉴스의 패키지를 복원해야 하고, 독자들이 맥락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실험하고 뉴스의 생산 방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언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과 저널리즘에 대한 상호 비판이 필요할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저널리즘 원칙을 포기하지 않도록 특히 경제 보도에 대한 감시 비판과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재경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독자들의 압박이 저널리즘을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달 신문과방송 기고에도 썼습니다만) 대부분의 뉴스 기업에서 혁신의 시작은 쓸모 없는 걸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광고의 종말을 직시해야 하고, 뉴스의 질적 혁신을 언론사 종사자들(경영을 맡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장의 기자들까지)이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원칙이 위협받는 시대. 저널리즘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뉴스 생산 시스템과 뉴스 생태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생존을 위해 타협하고 있는 것들을 과감히 단절할 때 비로소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들이 이런 변화를 추동하고 사회적으로 저널리즘 복원과 건강한 뉴스 생태계를 위한 고민을 시작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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