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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와 싸우는 방법.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4, 2018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수간도 합법화된다.”
“레바논이 난민을 수용해서 이슬람 국가가 됐다.”

에스더 기도 운동이 만든 가짜 뉴스는 몇 가지 심각한 질문을 남긴다.

1. 뉴스가 아닌데 뉴스인 것처럼 흉내내는 가짜 뉴스와
2. 거짓인 뉴스와 (오보 또는 왜곡 보도)
3. 거짓된 정보. (유언비어)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구별하지 않거나 구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각각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애초에 미국에서 ‘fake news’라고 불렀던 것은 1번, 그러니까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정교하게 공표된 일종의 사기물 또는 선전물, 허위 정보”라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에는 1번과 3번이 뒤섞여 있기도 하고 3번이 2번으로 진화하기도 하고 실제로 카카오톡으로 옮겨가면 이 세 가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진짜 뉴스가 가짜 뉴스의 통로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주류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이 음성적인 정보의 수요를 키우는 측면도 있다.

한겨레가 가짜 뉴스의 출처로 지목한 에스더 기도 운동의 게시판은 3번에 해당하지만, 주목할 대목은 이미 게시판과 유튜브, 카카오톡 등이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사람들에게 뉴스는 누군가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고 에스더가 번역해서 뿌리는 해외의 거짓 정보가 기존의 주류 언론의 뉴스보다 신뢰가 떨어진다고 볼 이유가 없다. 출처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모두 누군가가 카카오톡으로 던져준 정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가짜 뉴스’의 해법은 거짓인 데다 애초에 뉴스가 아닌 것이었다고 밝히면 됐지만 언젠가부터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하게 됐다. ‘가짜 뉴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 뉴스라서가 아니라 진짜 뉴스에서 말하지 않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2018년 한국의 ‘가짜 뉴스’는 굳이 뉴스인 것처럼 흉내낼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이고 언론이 말하지 않는 진짜 진실에 대한 갈망이 가짜 뉴스를 공유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민언련 기고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부 대목을 다시 옮겨본다. http://beta.mediatoday.co.kr/135129/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건 평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평판 시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거짓 뉴스나 ‘가짜 뉴스’를 퇴출할 방법은 없다. …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유언비어가 힘을 얻는다. 유언비어는 그 자체로 범죄가 아니고 ‘가짜 뉴스’ 역시 공론장의 자정작용에 기대는 것 말고 근절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장됐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겠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가짜를 처벌해야 한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에스더 기도 운동을 처벌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의 범주 안에 있다면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이런 정보를 걸러낼 수 있을까?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에스더의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건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유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는 계정을 차단하거나 포스팅을 강제로 삭제한다고 해서 뿌리를 뽑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연히 혐오와 차별 표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제재를 요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법적 처벌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황당무계한 소리라도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허용돼야 하고 단순히 허위 사실을 퍼뜨린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는 게 지금의 법이다. 그 이유는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엄격한 팩트 확인과 공적 가치는 저널리즘의 사명이지만 뉴스가 아닌 일반인들의 주장에 100% 진실을 요구하거나 단순히 왜곡됐거나 악의적인 주장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방법은 없다. (명예훼손이나 선거법 위반, 주가조작, 차별, 혐오 발언은 예외.)

아울러 플랫폼 사업자가 임의로 콘텐츠를 판단하고 게이트 키핑에 나서거나 알고리즘에 반영할 경우, 또는 이를 압박하거나 강제할 경우, 또 다른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안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낙태 반대나 10대 성매수 비판 등의 콘텐츠가 19금이거나 노출이 많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삭제된 사건을 여럿 알고 있다.)

에스더를 ’가짜 뉴스’라고 부른다면 이런 유형의 유언비어와 그들만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유튜브 때문에 좀 더 폭발적인 확산 속도를 갖게 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가짜 뉴스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계속해서 진실을 알리면서 바로 잡는 것 말고는 없다. 거짓을 이기는 것은 진실 말고는 없다. 진실이 강하다고 해서 다수의 힘으로 거짓을 누를 수는 없다.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어떤 신문이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일삼는다고 해서 폐간을 시키거나 강제로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장 강력한 압박은 독자들이 떠나는 것이고 냉소하고 무시하고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만의 커뮤니티 안에 고립시키고 영향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공론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에스더 같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거짓을 거짓 안에 가두고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머물게 만드는 것 말고는 달리 해법이 있을 수 없다. 유튜브에서 100만명, 1000만명이 봤다고 해서 겁먹을 것도 없다. 그게 여론이라면 공론의 장에서 드러내놓고 충돌하고 서로 반박하면서 서로를 설득하고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무시하고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슬로건은 “민주주의는 어둠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다.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고 햇빛 아래에서 거짓은 힘을 잃는다.

에스더 기도 운동 같은 얄팍한 가짜 뉴스가 위협적인 영향력을 갖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태극기 부대 역시 마찬가지다. 가짜 뉴스가 이들을 이끄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걸 찾는 것 뿐이다. 그것 역시 여론이고 논박하면서 설득하거나 각자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나는 ‘가짜 뉴스’ 현상을 우려하지만 과장된 우려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시절에도 ’가짜 뉴스’를 핑계로 여론을 통제하고 플랫폼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플랫폼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플랫폼이 게이트 키핑 권한을 갖는 건 어설픈 기계적 중립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미국의 쿼츠가 문제는 ‘가짜 뉴스’가 아니라는 글을 내보낸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https://qz.com/1130094/todays-biggest-threat-to-democracy-isnt-fake-news-its-selective-facts/

“페이크 뉴스나 대안 팩트보다 지금 이 시대에 더 위험한 것은 선택적 팩트다. 선택적 팩트들은 우리에게 오직 팩트의 부분만 보여주는 ‘진짜’ 팩트들이다. 소셜 미디어와 정파적 뉴스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목소리를 듣게 해준다. 그건 또한, 어떤 특정 팩트만 뉴스피드에 뜨게 만들도록 조정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더 많이 둘러싸여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의 기고를 다시 인용해 본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건 여론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나쁜 뉴스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공존하고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를 밀어내는 게 평판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다. 진짜 뉴스가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짜 뉴스’가 힘을 잃는다.”

웹은 원래 청정지역이 될 수 없고(그렇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늘 있지만), 누구나 자기 주장을 떠들고 다소 과장되게 비약을 섞기도 하고 하는 공간이다. 다만 계속 헛소리를 하면 무시 당하거나 결국 자기들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할 거고. 헛소리인데 좀 위험하다 싶으면 반박하고 찌그러지게 만들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정권에서 ‘나는 꼼수다’가 ‘가짜 뉴스’였을 수도 있고 위협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반면 지금의 태극기 부대나 에스더 기도 운동은 그냥 떠들게 내버려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공론의 장(평판의 시장)은 유튜브 조회 수 좀 나왔다고 해서 여론이 뒤집히거나 할 정도로 폐쇄된 시장이 아니다.

다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등의 해괴한 논리, 난민 문제를 둘러싼 억지 주장들은 누가 완벽하게 잘 정리된 웹 문서로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다. 누가 카톡으로 이딴 거 보내면 이거나 읽어보시오, 라고 툭 던져주고 끝낼 수 있도록. 사실 그런 FAQ를 만드는 게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서 문제지 ‘가짜 뉴스’를 찍어누르는 것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에 이런 대목이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302057015&code=990100

“증오의 확대를 노리는 세력은 명백한 허위주장도 쓸모 있다고 사용하는데, 주장의 허위성을 밝힌다고 해도 증오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허위사실을 밝힌 편은 공들여 작은 진실을 얻고도 여론에서 밀릴 수 있다.”

그렇지만 핵심은 이 대목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담론 경쟁으로 설득할 수 없기에 상대편의 발언을 규제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딱한 일이다. 스스로 무능함을 입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득할 수 있음에도 규제정책을 택한다면 일단은 태만을 범하는 일이지만, 또한 동시에 무모하다. 환경 미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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