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UN 선정, “세계 마이크로 크레딧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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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에게 물었다. “돈을 벌면 어디에 쓰죠?”

“절반은 쌀을 사고 절반은 주인한테 줘야합니다.”
“주인이 누군데요?”
“당연히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을 빌려준 사람이죠.”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은 기껏해야 5만원 정도 밖에 안한다. 겨우 5만원만 없어서 이 사람은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을 빌려준 사람의 노예가 된다. 그나마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낫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이들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건 방글라데시의 이야기지만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의 고리대금업자들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일주일에 10%씩 이자를 받는다. 이들은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지만 빚은 계속 늘어나고 결코 빚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끝은 파국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라민은행의 실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라민’은 벵골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라민은행은 이 구두닦이에게 5만원을 빌려준다. 아무런 담보도 서류도 없이 그냥 빌려준다. 이자는 한해 20%. 그리고 일주일마다 1200원씩 갚게 한다. 놀랍게도 이 5만원은 구두닦이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그날 그날 먹고 살기 바빴던 구두닦이는 이제 어엿한 사장이 된다. 그는 5만원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20%면 결코 싼 이자가 아니지만 99%에 이르는 사람들이 돈을 착실히 갚는다. 이 5만원이 그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어떤 은행도 이만큼 대출해준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다. 일주일마다 갚아야 하는 1200원은 이들에게 더이상 빚이 아니다. 1200원을 갚아나갈 때마다 이들은 가난을 벗어나는 꿈에 한발자국 다가간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돈을 빌려가라고 말한다. 돈을 빌려가서 현실과 맞서 싸우고 가난을 넘어서라고 말한다. 그라민은행은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한계를 자본의 힘으로 넘는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정한 ‘세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란 그라민은행의 실험과 같은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을 말한다. 기본 개념은 노동 능력과 의지가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라민은행은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1976년에 설립된 그라민은행은 자산 규모가 3조3600억원에 이르는 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방글라데시 전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방글라데시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그라민은행의 성공사례를 배워갔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원조하는게 아니라 자립과 자활의 기회를 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유엔 자본개발기금에 따르면 2001년까지 세계적으로 268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마이크로 크레디트을 지원받았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을 신청한 사람들의 6%에 지나지 않는 규모다. 성과는 충분히 검증됐지만 자본금이 부족한 탓에 아직은 지원 범위가 좁다.

유엔은 총회 차원에서 정부와 비정부 기구, 시민사회 단체, 언론 등을 초청해 마이크로 크레디트을 널리 홍보하고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유엔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라민은행의 한국 지부로 ‘신나는 조합’이 설립돼 있다. 2000년 시티은행이 지원한 1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설립됐고 현재까지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100만~500만원씩을 대출받았다. 신나는 조합은 아직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볼 때 대출 규모 등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를테면 한국형 그라민은행 또는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고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를 읽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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