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은산 분리 완화, 명분도 실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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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은산 분리 원칙을 완화하겠다고 해서 논란인데, 핵심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이른바 인터넷 전문 은행이다.

은행과 산업의 분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을 뿐만 아니라 1995년에 법제화된 원칙이다. 론스타펀드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것도 바로 비금융 주력자(산업자본)의 한도 초과 보유 조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을 허물겠다고 하는 것이다.

현행 법에서는 국민은행이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카카오가 국민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는 것 역시 같은 논리로 불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삼성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칙에서다.

(은행법에 따르면 누구든 금융기관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비금융 주력자의 경우는 4%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초과 보유한 지분은 즉시 처분해야 하고 보유하더라도 의결권이 제한된다. 금융위원회 승인이 있는 경우 10%까지 보유할 수는 있지만 역시 4% 이상 보유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제한된다. 결국 비금융 주력자는 어떤 경우든 4%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비금융 회사의 자본총액이 4분의 1 이상인 경우 또는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경우 또는 투자회사가 발행 주식 총수의 4% 이상 의결권을 갖는 경우, 그리고 이와 별개로 사모투자 전문회사도 비금융 주력자로 분류한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실제로 카카오의 지분은 10.0%, 그리고 실제로 의결권은 4% 밖에 안 된다. 이미 한도를 채운 상황이라 모든 주주들이 같은 비율로 증자하지 않는 이상 카카오는 단 1주도 지분을 늘릴 수 없게 돼 있다. (카카오는 법을 바꿔서라도 이 지분을 더 늘리고 싶겠지만 아래 설명할 이유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케이뱅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은행과 NH투자증권이 13.8%와 10.0%로 1대 주주와 2대 주주로 올라 있지만 추가 투자 의사가 없고 공동 2대 주주인 KT는 10.0%에 묶여 있어 출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케이뱅크가 자본을 확충하려면 우리은행이나 NH투자증권 등 기존 금융기관 주주들이 추가 출자를 하거나 새로운 금융자본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카카오뱅크 역시 한국투자금융지주나 국민은행이 추가 출자를 하거나 새로운 주주를 찾아야 한다.

만약 은산 분리 조건이 완화되면 카카오나 KT가 추가로 자본금을 집어넣고 최대 주주로 부상할 수 있게 된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이 은산 분리 완화를 거론하자 여민수 카카오 공동 대표가 한국금융투자지주의 지분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눈길을 끈다.

금융기관의 대주주는 금융기관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허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 가지 질문을 해보자.

첫째, 우리은행이나 국민은행의 경우 산업자본이 대주주가 될 수 없는데 케이뱅크나 카카오뱅크는 인터넷 은행이라 KT나 카카오가 대주주가 돼도 괜찮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둘째, 삼성이 인터넷 은행을 만들겠다고 하면 그걸 막을 명분이 있을까.

셋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성장하지 못하는 게 과연 은산 분리 때문일까.

세 가지 질문 모두 하나의 답변으로 수렴한다. 국민은행과 카카오뱅크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삼성과 카카오가 다르지 않다. 재벌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산업 자본의 금융 지배를 금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카카오라서 예외일 수는 없다.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에만 허용한다면 삼성전자는 ICT 기업 아닌가?

재벌 총수가 있는 상호 출자 제한 기업집단을 예외로 둔다는 법안이 올라있긴 한데, 카카오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산 규모가 10조 원 이상이면 상호 출자 제한을 받는데 카카오는 이미 8조5000억 원에 이른다. 카카오뱅크를 편입하면 기껏 카카오를 위해 만든 법에서 카카오가 배제될 판이다. 네이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고 KT는 2016년에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어서 은산 분리와 무관하게 2021년까지 금융기관의 대주주 자격이 안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한 가지다. 은산 분리 원칙을 무너뜨릴 이유가 있는가? 기준도 목적도 불분명한데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은산 분리와 더 나가서 금산 분리를 흔히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설명하지만 그건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다. 금융기관을 굳이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융 ‘기관’이라고 부르는 건 영리 기업과 달리 금융의 공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정 대주주의 이해에 복무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건 카카오나 카카오의 대주주의 도덕성과는 무관한 문제다.

카카오뱅크가 돈이 된다면 국민은행이 추가 출자를 할 것이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추가로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자본 확충이 절실하다면 기업 공개(IPO)를 하면 된다. 케이뱅크에 자본 확충이 안 되는 건 또 다른 이유에서지만 지금도 잘 나가는 카카오뱅크를 청와대가 걱정해줄 이유는 없다. 굳이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주인이 돼야 할 이유는 없다. 카카오 뿐만 아니라 산업 자본의 금융 지배를 금지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카카오가 예외가 될 수 없고 인터넷 은행이라고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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