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신드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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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이한 열풍의 뒤에는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초조감, 신자유주의적 광풍에 대한 일정한 무력감, 사민주의에 대한 상상적 판타지, 새것 콤플렉스에 의한 언론의 이슈 따라잡기적 속성 그리고 개혁적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월간 ‘말’ 6월호에 썼던 ‘삼성만 잡으면 된다’라는 기사에 반론이 들어왔다. 전현준 ‘말’지 편집위원이 썼다. 뼈아픈 비판이고 일정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비판이 논점을 조금 벗어났다.

6월호 기사를 풀어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자본가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이나 서로 양보할 부분이 거의 없다. 다만 우리나라의 재벌은 주주 자본주의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거기서 양보와 타협을 끌어낼 수도 있다. 그게 이른바 “삼성만 잡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스웨덴은 모범사례도 아니고 실제로 문제도 많고 다분히 오해되고 있기도 하다. 스웨덴을 하나의 대안 모델로 제시한 것은 적절치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의를 ‘스웨덴 신드롬’으로 축소하고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또한 맥락에서 벗어난다.

나는 여전히 한국적 사회대타협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스웨덴과 별개로 대립과 극한 투쟁이 아니라 양보할 건 양보하고 얻어낼 건 얻어내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전현준 편집위원의 글 가운데 몇 부분을 아래에 발췌 인용한다. 그리고 관련 기사들을 몇개 첨부한다.

“먼저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은 사민당정권과 좌파노총으로부터 기업 지배권을 정말 보장받았는가? 그렇지 않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은 대개 이중이사회 구조를 채택하고 있어 발렌베리 가문의 후손들은 기업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고 내부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감독이사직을 맡고 있다. 소수 지분에도 불구하고 순환출자 등의 부당한 방법으로 세습적으로 경영권을 장악하고 기업을 지배하는 한국 재벌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노자간 계급대타협과 연대임금제의 실행으로 과연 해결가능한가? 연대임금제는 알려진 것처럼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개선과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위한 아름다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정책목표를 겨냥한 임금정책이었다.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의 측면도 있었지만 경쟁력 있는 스웨덴을 위한 임금억제적 수요관리의 성격이 본래부터 더 강했다. 또한 동일임금을 감당 못 하는 저수익 기업을 퇴출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에 자본과 노동력을 집중시키는 산업합리화정책의 역할도 수행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 연대임금제는 자본보다 특히 고수익부문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지탱되는 정책이다. 따라서 고수익부문 노동자들로부터 연대임금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1950년대에서 1960년대 말까지의 임금 총상승분 중 절반 정도가 임단협 이후에 임금불만을 달래기 위한 임금보전책의 일종인 ‘임금유동’에 의해 달성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합의는 지켜질 수 없었고 1983년부터 사실상 계급타협은 끝이 났다. 그러므로 일부 언론의 사실왜곡과 무비판적 ‘받아쓰기(dictation)’ 습관은 실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참고 : 고용 못늘리겠으면 비용을 분담해라. (이정환닷컴)
참고 : “스웨덴 모델, 이미 한물 갔다.” (이정환닷컴)
참고 : ‘말’지,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지배권 인정” 주장. (이정환닷컴)
참고 : 대안연대회의 사람들을 만나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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