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 경계하라’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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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말할 때 그 미국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화씨 9·11』을 보고도 그들은 왜 조지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 복잡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먼저 2000년대 미국을 지배하는 세가지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는 코포라도, 새로운 형태의 기업인 집단이다. 이들은 재화의 생산보다는 금융이나 투기가 훨씬 더 짭짤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제너럴모터스는 자동차 생산보다는 주택 대출에서 더 많은 돈을 번다. 가전 제품을 만들던 제너럴일렉트릭은 수많은 사업부문을 잘라냈지만 이익은 더 늘어났다. 이들은 사업을 확장하기 보다는 잘라내거나 축소하고 기업을 뜯어고쳐서 이익을 늘리는데 집중한다.

이들은 탄탄한 이익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편 정치세력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1930년대 뉴딜 정책에서 비롯한 소득 재분배 정책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1950년대 미국 기업들은 전체 세금의 25% 정도를 냈다. 2000년대 들어 이 비율은 10% 정도로 낮아졌다. 이들은 사회적 다위니즘과 자유지상주의,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시장의 문제는 시장의 문제로 풀자는 논리,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다.

두번째는 승리주의자들, 흔히 신 보수주의자 또는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부의 분배를 추구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데 군산복합체를 끌어들였다. 국방비 예산을 터무니 없이 늘리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무기를 사들여 사회복지 예산을 없애버리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흔히 군산복합체와 결탁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가능하려면 전쟁이 제때 터져줘야 한다. 다행히 2001년의 9·11 테러는 이들에게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꼴이었다. 이들은 코포라도들과 연대해서 전쟁을 기업들의 잔치로 바꿔놓았다. 이라크의 석유자원은 통째로 부시 행정부와 그의 친구 코포라도들의 손에 떨어졌다. 여기서 자유지상주의와 승리주의, 작은 정부와 안보국가가 기묘하게 결합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무기와 버터를 모두 살 수 없다면 먼저 무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시는 레이건이 했던 역할을 충실히 승계한다. 정부의 개입은 적을수록 좋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돼야 한다. 사회복지 시스템에 들어갈 돈은 없지만 전쟁에 들어갈 돈은 있다. 그는 사회의 낙오자와 실패자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세번째는 선뜻 와닿지 않지만 교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어느 종교나 광신은 위험하지만 미국의 기독교는 이미 광신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은 선거에서 기독교의 중흥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표를 몰아준다. 이를 테면 부시가 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를 찍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이 믿기지 않지만 유권자 가운데 47%나 된다.

미국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가장 잘 조직된 정치세력이고 막강한 유권자 집단이다.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종교적 성향이 뚜렷한 부시는 회의를 기도로 시작하고 연설할 때는 공공연히 다른 나라를 악마라고 부른다. 그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해 주소서”라고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그 신은 이라크를 결코 축복하지 않는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그렇게 정치적으로 변질돼 제국주의와 결합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진보진영이 이런 현실에 저항할 힘을 잃고 있다는데 있다. 변화는 레이건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노동자를 공격하는데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부를 지지했다. 특히 백인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 보다는 백인의 권리 보호에 큰 비중을 뒀다. 그들은 인종차별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승리주의를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인종적 다위니즘인 셈이다.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여전히 모든 논쟁의 핵심에 있다. 인종차별은 이를테면 권력의 전제 조건이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볼 때 흑인에게 다가서려면 유권자를 잃는 걸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회복지 시스템은 백인의 몫을 빼앗아 흑인에게 나눠주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고 백인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게 진보진영 조차도 섣불리 인종문제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놀라운 통계를 하나 보자. 미국 교도소에는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감돼 있다. 10만명당 715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 놀라운 것은 흑인의 비율이 65%로 1950년의 35%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교도소에 수감된 흑인 남자들이 흑인 남자 대학생 보다 더 많을 정도다. 1895년에서 1991년까지 흑인 재소자는 450% 이상 늘어났다. 백인들의 수명이 70대 중반을 넘어선 가운데 흑인 남자의 평균 수명은 아직 60세도 안된다.

문제는 이들 흑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투표권을 제한당하거나 박탈당한다는데 있다.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플로리다주에서는 흑인 남자 네명 가운데 세명에게 투표권이 없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이들에게 제대로 투표권이 주어졌다면 부시는 아마 대통령이 못됐을 수도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테면 미국이 우리나라에 3만명 이상의 군대 병력을 50년 이상 주둔시켜왔다는 사실을 아는 미국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바란다는 사실은 아는 미국 사람은 더욱 없다. 사람들은 언론이 만들어준 환상에 빠져들고 이런 문제의식에 동조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계급투쟁은 사라진 마르크스의의 유산일뿐이다. 그들은 기꺼이 자유지상주의와 승리주의, 종교적 광신을 받아들이고 이라크 전쟁을 환영한다.

이 책의 저자, 시어도어 로직 교수는 이제 미국이 미국 사람들의 미국이 아니라고 개탄한다. 그가 보기에 미국의 진짜 위험은 테러가 아니라 패권적 제국주의가 가져올 도덕적 정치적 위험이다. 미국은 그 역할을 맡을 권리도 능력도 없다. 사람들은 무기력에 빠져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아무도 미국을 견제할 수 없다는데 있다.

세계여 경계하라 / 시어도어 로작 지음 / 구홍표 번역 / 필맥 펴냄 /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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