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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다.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1, 2004

믿을 건 보험 밖에 없다고 다들 생각한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집집마다 평균 4.1건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체국과 농협 공제를 포함한 지난해 6월 기준 조사 결과다. 집집마다 한달에 내는 보험료는 35만원에 이른다. 전체 가구의 89.9%가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열집에 아홉집은 한군데 이상 보험에 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보험 하나쯤 안들 수도 없지만 보험이란 게 결국 쌈짓돈을 모아서 보험사 배만 불려주는 한심한 일이다. 중간에 해약이라도 하게 되면 원금의 상당 부분이 날아가고 만기까지 가더라도 이자가 형편없이 적다. 생명보험의 예정이율은 연 4.0~4.5% 수준이다.

이렇게 형편없는 이자를 받으면서 정작 보험 혜택을 받는 경우는 얼마 안된다.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석달동안 23개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총액은 11조3970억원. 이 가운데 사망이나 상해, 퇴직으로 지급된 보험금은 각각 2827억원과 338억원, 86억원 밖에 안된다. 이밖에 입원 급여 등 환급금이 1조6169억원에 이른다. 대략 더해보면 11조원을 내고 실제로 보험이나 급여 등으로 받는 돈은 2조원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만기가 돼서 타간 보험금이 9256억원, 중간에 해약해서 타간 보험금이 2조8702억원이다. 정리해보면 11조를 거둬서 5조원 가까이가 그대로 보험회사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만기까지 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도 눈여겨 봐야 한다. 해약을 하면 많게는 90% 이상 원금을 까먹는 경우도 있다.

더 억울한 것은 보험회사가 엄청난 금액을 자신들 사업비로 떼간다는 사실이다. 역시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석달동안 23개 보험회사가 책정한 사업비는 1조4037억원으로 전체 보험료의 12.3%에 이른다. 사업비는 신계약비와 유지비, 수금비 등 보험판매에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보험 설계사들을 앞세워 공격적인 영업을 하면서 그 비용을 고스란히 계약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험회사는 보험금 가운데 사업비를 따로 떼놓고 나머지 가운데서 보험금을 지급한다. 당신이 보험료 1만원을 내면 그 가운데 평균 1230원이 사업비로 떨어져 나간다. 보험회사는 나머지 8770원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고 굴려서 이자를 불린다.

보험의 만기는 보통 10년에서 20년, 길게는 30년, 40년씩 걸린다. 만기가 은행 적금보다 턱없이 긴데다 이자율까지 낮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만기가 20년이라면 당신이 낸 보험료는 20년 동안 보험회사의 자산이나 마찬가지다.

35세의 남성이 최고 3억원이 보장되는 종신보험에 가입했을 때 10년내 보험금을 탈 확률은 1.6% 정도다. 그 1.6%를 위해 이자가 형편없이 낮은 적금에 가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험은 그래서 다분히 복권과 비슷하다. 복권은 운이 좋으면 대박을 터뜨리지만 보험은 운이 나쁠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의 경우라는 건 언제든지 있을 수 있고 그 만약을 위해 보험 한두개 정도는 들어둘 필요가 있다.

핵심은 꼭 필요한 보험을 골라서 들되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집어넣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할 것은 보험회사의 지급 여력이다. 만기가 20년이라면 20년 동안 망하지 않을 회사를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업비 비율도 꼼꼼히 살펴보는게 좋다. 납입 조건과 혜택이 같은데도 사업비 비율에 따라 보험료가 10% 이상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보험 혜택은 질병과 재해를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각각 건강보험과 상해보험에 따로 나눠서 가입할 수도 있고 종합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다.

30대 이상이라면 종신보험을 가입하는 것도 좋다. 종신보험은 가입자가 죽으면 시기나 원인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보험금을 준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종신보험에 들어두는 게 좋다. 이를테면 한달에 16만원씩을 내면 언제든 당신이 죽을 때 당신 가족들은 1억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죽을 때까지 달마다 16만원씩을 내야하고 만기가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중간에 해약을 하면 원금의 상당부분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우량체 특약을 받아 보험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반드시 미리 확인하는게 좋다. 그밖에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암 특약을 받아 보험료를 조금 더 내는 대신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조건에 따라 다양한 특약이 있다. 이왕 가입하는 거 모르면 손해다.

무엇보다도 보험금의 지급 방식을 눈여겨 봐야 한다. 1천만원씩 20년동안 나눠서 받는 보험금은 금액으로는 2억원이지만 이자를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억원을 조금 넘는 정도밖에 안된다. 연금 보험의 경우 이런 속임수가 많다. 기껏 엄청난 돈을 부어놓고 정작 보험회사 배만 불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다시 강조하지만 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다. 최선의 선택은 가능한 적게 내고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이다. 위험에 대한 대비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보험을 적당한 정도로 가입하되, 노후 대비나 자산 증식은 다른 재테크 수단을 활용하는게 훨씬 현명한 일이다. 보험으로 돈 불릴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결국 보험회사 배불려 주는 길이다.

(팟찌닷컴에 보낸 칼럼. 몇가지 취재를 더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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