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언론의 오래된 유착… 길들여진 맹수와 무너진 신뢰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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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포커스에 기고한 글을 좀 더 보완했습니다.)

산에 가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 따위를 먹다 보면 먹어야 할 먹이를 먹지 않고 영양 불균형으로 내성이 떨어져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눈 앞에 있는 달콤한 것들을 집어 먹다 보면 당장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먹이를 던져주는 누군가에게 계속 의존하게 된다.

문화일보가 2016년 5월20일 내보낸 “국방부 군인 가족 복지 향상 박차, 내집 마련 꿈 지원·자녀 학습 캠프”라는 기사는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국방부가 발주한 1200만원짜리 협찬 기사였다. 2016년 6월28일 서울경제에 실린 “원격진료 확대… 응급환자 신고 앱 ‘군 입대 자녀 건강 이상무’”라는 제목의 기사 역시 1200만원짜리 정부 발주 ‘상품’이었다. 나름 충실하게 정보를 담고 있는 기사지만 독자들은 이게 돈을 받고 쓴 기사라는 걸 모른다.

정부가 돈을 주고 기사를 사는 관행은 이명박 정부 들어 부쩍 늘어났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고용노동부는 홍보 대행 용역에 2010년 49억 원을 쏟아부은 걸 비롯해 해마다 수십억 원을 지출했다. 2014년에는 61억 원, 2015년에도 51억 원이 집행됐다. 이 가운데 상당 금액이 언론사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확인됐다. 2014년 12월8일 중앙일보에 실린 “정년 65세 일본, 호봉제 버리자 구조조정 줄었다”는 등의 기사 2건에는 5500만 원이 집행됐다.

동아일보는 2014년 4월부터 12월까지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일가양득’이라는 캠페인 시리즈 기사를 내보내고 2억3550만 원을 받았다. 방송에도 이른바 협찬 기사가 등장했다. 2014년 12월31일 SBS 모닝와이드는 조기 퇴직한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내보냈는데 여기에 1320만 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국방부와 고용노동부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도 돈을 주고 기사를 산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정부도 홍보가 필요하고 공익적인 성격의 기사인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받고 쓴 기사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는 건 독자들을 모욕하고 기만하는 행위다. 독자들은 기자가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직접 취재해서 쓴 기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광고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지만 이건 아예 광고와 지면의 경계를 뭉개고 저널리즘의 근간을 몇 푼 돈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언론사들이 문을 닫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왜 망하는 언론사가 하나도 없는지 생각해 봤는가. 한국에서는 오히려 언론사들이 계속 늘어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광고가 줄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줄어든 광고만큼 협찬과 후원이 늘어나 언론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어떤 기사를 나가게 만들거나 어떤 기사를 나가지 않게 만드는 조건으로 끊임없이 거래가 이뤄진다.

언론과 자본의 유착은 뿌리가 깊다.

2016년 8월26일 김병기 문화일보 편집국장이 장충기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올 들어 문화일보에 대한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 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 대비 1억 플러스(8억) 할수있도록 장 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달라는게 요지입니다. (중략)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갖고 챙겨봐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삼성증권 사장 출신의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2015년 7월8일 장충기 사장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밖에서 삼성을 돕는 분들이 많은데 그중에 연합뉴스의 이창섭 편집국장도 있어요. 기사 방향 잡느라고 자주 통화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열심이네요. 나중에 아는 척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통화 중에 기사는 못 쓰지만 국민연금 관련 의사결정 관련자들한테 들었는데 돕기로 했다고 하네요.”

이 언론사들이 어떤 기사를 썼는지는 지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상당수 언론사들에서 기사와 광고의 경계가 무너져 있고 기꺼이 기사를 거래하는 게 참담한 현실이다. “회장님 관련된 기사는 1억 원 주고라도 빼야 한다”는 게 홍보 담당자들이 공공연하게 하는 이야기고 기자들도 “삼성은 얼굴 없는 기부 천사인가” 반문하는 게 언론의 현실이다. 광고를 싣지 않으면서 현금을 꽂아주는 이 기묘한 거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7년 7월16일 디지털타임즈에 실렸던 “악재 연속 김정태, 3연임 먹구름”이라는 제목의 KB금융지주회사를 다룬 기사는 몇 시간 뒤에 “김정태, 금융지주 첫 3연임 순항”이라는 전혀 다른 기사로 바뀌었다. 2017년 11월7일 전자신문에 실린 “농협은행 모바일뱅킹 보안 오류… 유심 인증 먹통 ‘3일째 이용 불가능’”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농협의 항의 방문 뒤에 사라졌다.

한겨레에서도 수상쩍인 사건이 있었다. 2017년 11월6일 “어떤 영수증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한겨레21 표지 기사가 출고되기 직전 양상우 한겨레 사장이 수정 요청을 했고 길윤형 편집장이 사표까지 던지면서 반발했는데 알고 보니 LG 그룹 임원이 한겨레를 방문해 김종구 편집인을 만나 통사정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한겨레21 발간 시점에 맞춰 한겨레 지면에 LG전자 전면광고가 실려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힘을 써달라는 청탁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곤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을 받고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이 던져주는 광고와 협찬을 의식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 표를 던져야 한다고 여론을 호도했던 언론은 과연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광고를 팔던 언론이 언젠가부터 지면을 팔고 있다. 언론에 거는 독자들의 마지막 기대를 걷어차고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기사를 거래하는 것도 그나마 언론의 신뢰와 권위가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추세라면 급격히 그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흔히 기업들이 보험을 든다고 말하지만 보험으로서의 광고나 협찬도 그 효력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길들여진 맹수가 뭐가 무섭겠는가.

줄리아 카제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에 번역 출판된 ‘미디어 구하기’에서 지분 참여와 권력 분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기업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뉴스는 공공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서 주식회사 언론사의 한계를 짚는다. 공짜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어떻게든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직원과 기자들의 임금을 줄 수 없는 게 엄혹한 현실이다.

카제 교수는 저널리즘을 자본(대주주)의 전횡에서 보호해야 하고 동시에 지속가능한 후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더 이상 저널리즘을 시장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게 카제 교수의 주장이다. 필요하다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기자 조합과 독자 조합에 의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한국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그 문제의식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언젠가 한 컨퍼런스에서 후원회원이 줄어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재원이 부족해서 광고를 받게 된다면 문을 닫아야지, 그렇게까지 연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권혜진 뉴스타파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도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상업적인 언론과 비영리 저널리즘은 갈 길이 다른 것 같습니다. 진정한 저널리즘은 철저하게 비영리적 기반에서만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뉴스타파니까 가능한 자신감이겠지만 한국의 대부분 언론사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의 타락을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왜 손석희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왜 뉴스타파처럼 자본에서 독립하지 못하느냐고 ‘기레기’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널리즘을 복원하기 위한 사회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죽어가는 언론사들을 살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강한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먼저 자본과 언론의 유착을 끊어야 한다. 언론사 내부적으로는 편집과 광고의 방화벽을 높여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기사와 광고를 거래하는 관행을 중단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독자 없는 언론의 시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추동해야 할 때다. 권력과 맞서지 못하고 아젠다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언론은 존재 이유가 없다. 사회적 해법도 필요하겠지만 언론 스스로 먹이를 끊어야 산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