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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복원,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기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8, 2017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한 ‘2018 한국의 논점’에 실린 글을 좀 더 보완했습니다. 2018년 한국 언론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써달라고 해서 간단히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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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언론인들이 세상을 바꾼다. JTBC와 한겨레의 보도를 우리는 기억한다. 손석희와 김의겸과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많은 기사들과 저널리즘의 쾌거. 누군가는 여기에 김어준과 주진우를 꼽을 것이고 이상호를 더할 것이다. TV조선도 빼놓을 수 없다. 이진동은 가장 먼저 최순실을 팠다. 수많은 단독 기사가 모여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 놀라운 경험, 저널리즘의 추락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널리즘이 희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왜 이명박과 박근혜 같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됐을까.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 표를 던질 수 있었을까.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 5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한참 늦게 분노하고 또 쉽게 잊고 분노를 되풀이 하는가. 세상은 왜 달라지지 않는가.

내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한국은 왜 보수 성향 신문이 이렇게 많은가. 달리 질문하면 이렇다. 한국에서는 왜 보수적 논조의 신문들이 잘 나가는가. 2017년 한국ABC협회 부수공사 기준으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발행부수는 349만부,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까지 더하면 467만부에 이른다. 15개 전국 단위 일간신문 가운데 75.4%를 5개 신문이 차지하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합쳐서 44만부밖에 안 된다.

나는 지금 진보와 보수가 시장을 반반씩 나눠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15개 일간지 가운데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신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게 둘 밖에 없고 한국일보를 그나마 중도 성향이라고 본다면 주요 일간지 가운데 89.5%가 보수적 논조를 보이는 신문이다. 매출액도 거의 발행부수 순위와 일치한다. 조중동과 매경 한경의 매출액이 1조2966억원, 한겨레와 경향 1642억원의 7.9배에 이른다.

방송은 더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집권한 9년 동안 낙하산 사장들을 내려보내 KBS와 MBC를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었고 보수 신문들에게는 종합편성채널을 안겨줬다. JTBC가 돌연변이었을 뿐 SBS조차도 정치권력의 눈치를 봤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달라질까. 문재인 정부의 상식을 기대하지만 애초에 청와대와 여당이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언제라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게 한국 사회가 얻은 교훈이다.

우리는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진실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언제나 사실이 진실을 구성하지만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고 취사선택된 편집된 사실이 진실을 배반하는 경우도 많다. 권력을 감시 비판하고 부정 부패를 들춰내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지만 언론사는 스스로의 이해관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 역시 플레이어 가운데 하나고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보수가 돈이 된다. 기득권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게 장사가 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여전히 자본권력이 언론의 밥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고 오히려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건 쉽지만 자본권력을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언론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모두에 무력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언론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MBC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최승호는 사장 후보자 면접에서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최승호는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문을 못하게 한다고 질문을 안 하면 그게 언론이라고 할 수 있나. 최승호는 해고된 뒤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그 많은 언론인들은 뭘 했나. 누가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괴물을 낳았나.

몇 가지 사건을 다시 구성해 보자.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2012년 12월11일, 민주당이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국가정보원이 댓글 부대를 운영하고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리고 사흘 뒤 12월14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이 박근혜 당시 후보의 선거 유세에서 난데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해 여론을 뒤흔들었다.

이 모든 사건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을 터뜨린 것도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을 폭로한 것도 국가정보원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일정을 앞당겨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날은 정윤회 국정 개입 관련 보도가 쏟아지던 무렵이었다. 상당수 언론이 공동정범으로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 보수 언론은 프레임을 뒤집고 본질을 호도하고 물을 탔다.

박근혜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대변인을 지냈던 전여옥이 이런 말을 했다. “결정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길래 ‘전화라도 해보라’고 권했는데 정말 전화를 했다. 힘이 쫙 빠지더라.” 박근혜가 최순실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연설문이 어딘가 갔다 오면 걸레가 돼서 돌아오더라”고 했을 정도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박근혜의 실체는 정권 말 레임덕이 되고 나서야 드러났다.

TV조선은 이미 2016년 4월부터 최순실을 추적했고 7월17일 단독 인터뷰를 땄다. 그러나 계속 묵혀 두고 있다가 10월25일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컴퓨터를 입수해 보도한 다음날에야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7월18일 우병우 처가의 수상쩍은 부동산 거래 의혹을 보도한 것도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죽은 권력’ 박근혜를 제거할 기회를 노렸고 때가 되자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로 잽싸게 변신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거의 성공할 뻔했다.

1000만 촛불이 아니었다면 박근혜는 적당히 찌그러져 레임덕으로 버티고 조선일보는 박근혜를 찍어누르면서 새로운 아바타를 내세워 보수 결집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촛불의 승리를 민주주의의 쾌거라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언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자 증세를 세금 폭탄이라고 부르고 쉬운 해고 확대를 노동 개혁이라고 노동 시장 유연화라고 부르던 언론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신문사가 문을 닫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문을 닫기는커녕 신문사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뭔가. 광고 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보험을 들 듯 언론을 광고로 길들이면서 기사를 거래하고 있다. 광고 효과는 거의 없지만 여론을 통제하는 비용으로는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줄어든 광고 이상의 협찬과 후원으로 언론에 뒷돈을 대고 있다는 것도 이 바닥 업자들만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집단 백혈병 사태로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호소하고 있지만 삼성은 피해를 보상하기 보다는 언론에 돈을 바르는 쪽을 선택했다. 반올림은 한국 언론의 아킬레스 건이면서 리트머스 시험지다. 2017년 11월16일이 반올림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피해자들이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은 조정위원회 권고안을 무시하고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 언론만 콘트롤하면 한국에서는 뉴스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론을 뒤집는 것도 가능하다.

이재용이 삼성물산 합병을 찬성해 달라며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감옥에 가 있지만 어느 언론도 당시 보도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 “투기자본이 국부를 빼간다”며 “국민연금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부추겼던 언론이 아직까지도 “국민연금이 합병을 반대했다면 1조원 이상 손실을 봤을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재용이 구속되니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이런데도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나.

저널리즘의 추락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종이신문의 타락도 큰 문제지만 온라인 저널리즘 역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값싼 트래픽과 맞바꾼 어뷰징 기사가 넘쳐난다. 진짜 중요한 기사를 쓰레기로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가뜩이나 네이버의 공짜 뉴스 덕분에 한국은 언론사 사이트 직접 방문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맥락을 잃고 파편으로 떠도는 뉴스, 당연히 브랜드 인지도도 세계에서 가장 낮다.

광고 시장은 급격히 위축될 것이다. 자본권력과 언론의 기묘한 공존공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브랜드 저널리즘과 브랜디드 콘텐츠가 언론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 것이다. 이제 누구나 미디어를 조직하고 직접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파이프라인의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플랫폼 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혁신을 서둘러야 할 때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낡은 관행과 유착에 목을 매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많은 것들이 바뀌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널리즘이 희망이다. 아직도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으로 현장을 누비는 정의로운 언론인이 많다. 이제 매체의 사이즈가 아니라 개별 콘텐츠 단위로 영향력을 갖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다. 주류 언론의 기자와 PD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잘 만든 메시지 하나로 수백만 수천만 명의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시대다. 스토리텔링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레거시(유물) 미디어의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언론사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일부는 망할 것이고 또 새로운 언론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오히려 주류 언론의 외부에서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의 영향력도 재편될 것이다. 저널리즘의 본질을 파고드는 언론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겠지만 파괴적 혁신에 직면해야 한다.

추락한 저널리즘의 사회적 손실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복원은 사회적 과제다.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독립을 제도화해야 한다. 공익적인 언론의 건강한 수익모델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포털과 언론의 관계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파편화된 아젠다 플랫폼을 재건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기대와 희망, 그리고 확신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기 원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회의 퇴행을 막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성찰을 불러 일으키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좀 더 건강하고 정의로운 언론을 가질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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