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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낮은 중국’을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19, 2004

황허는 한때 이름깨나 날렸던 시인이었다. 그는 지금 마약 중독자가 됐다. 미쳐 날뛰다가 손가락을 자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러 찾아온 라오웨이에게 되묻는다.

“이봐, 라오웨이. 자네처럼 이렇게 투명하게 세상 살아봤자 무슨 재미가 있나. 전에 자네 글을 본적 있는데 너무 진실되더군. 자네 언제나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티격태격 하면서 살면 피곤하지도 않나. 그냥 되는대로 한 인생 살면서 바깥에서 이 세상 배꼽이 들여다 보는 쾌락에 한번 빠져 보는게 더 낫지 않아?”

문학 친구였던 탕둥성은 오입쟁이가 됐다. 밤마다 나이트클럽을 배회하면서 어린 여성들을 사고 욕망을 채운다. 그는 여성을 사는 게 자유 시장에서 물건 사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오입을 통해 자신의 추악한 정체를 똑똑히 알게 됐다고도 한다.

“눈이 트이고 보니 그 이전 내 인생은 허황된 도덕 규율 속에서 자신을 서서히 말려 죽이고 있던 그런 거였어.”

‘저 낮은 중국’의 원래 제목은 ‘중국 저층 방담록’이다. 13억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사람들, 이 책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고도 성장의 신화에 가려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늘날 중국의 또 다른 현실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건 모두 실화다.

마오쩌둥의 1966년 문화대혁명은 자본주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문화 창조를 목표로 내건 노선 투쟁이었고 동시에 무자비한 권력 투쟁이었다.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4천만명에 이르는 청년 홍위병들이 류사오치를 비롯한 당권파와 자본주의 노선을 수용했던 주자파, 부르주아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다. 그해 8월과 9월 베이징에서만 1천여명이 홍위병의 창에 희생됐다. 마오쩌둥이 죽고 난 뒤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이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극좌적 오류였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나의 청춘, 꿈, 열정, 낭만은 모두 문혁과 뗄래야 뗄 수 없어.” 그러나 40년이 다 돼가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문혁과 못다이룬 혁명의 부질없는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늙은 홍위병 류웨이둥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서 남은 게 뭐가 있나. 문혁을 빼고 나면 기억할만한 게 뭐가 있냐고.”

그렇다면 무장투쟁은 어떻게 볼 것인가. 홍위병들 사이에 처절한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고 부자지간과 부부지간까지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켰던 1967년의 그 무장투쟁 말이다.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 늙은 홍위병의 확신은 여전하다.

“요즘 돈 한푼 때문에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목숨 걸고 싸움질하는 거하고 그게 비교가 돼? 소녀는 돈 때문에 싼페이 아가씨가 되잖아. 부패 관리는 돈 때문에 법을 무시하고 사회보장기금을 유용해서 개인 장사를 하고 자식도 돈 때문에 심지어 늙은 부모를 죽이기도 하잖아. 믿음이 있는 혼란과 믿음이 없는 혼란이 어떻게 똑같아. 완전히 다른 거야. 이 친구야.”

홍위병들은 1969년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라는 마오쩌둥의 지시를 받고 산골이나 농촌으로 내려간다. 그게 이른바 상산하향운동이고 그들은 지식청년이라고 불렸다. 시골에서 치과의사로 주저앉은 지식청년 랴오다마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도 역시 아직까지 지나간 역사의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

“꼴같잖은 선각자 분위기가 우중충한 산골생활에 위안이 된 것은 인정해. 하지만 난 아니야. 난 선각자도 아니고 농민들하고 하나되지도 못했어. 그냥 먹고 사는데 바빴을 뿐이야. 톡 까놓고 말하지. 생활의 고달픔이 한 사람 인생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알아?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니까.”

토지개혁으로 전 재산을 빼앗긴 지주, 저우수더 할아버지나 지주 출신의 여자친구를 두둔했다가 우파로 찍혀서 평생을 숨죽이며 살아온 펑중쯔 선생은 마오쩌둥보다는 덩샤오핑을 더 특별하게 기억한다. 덩샤오핑은 1978년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실용주의 노선을 도입하고 대대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단행한다.

시골 교사 황즈위안의 말은 오늘날 자본주의 중국의 혼란을 대변한다. “어떨 때는 난 마오쩌둥하고 덩샤오핑 둘 중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개방이 좋은거야, 아님 개방 안하는게 좋은 거야.”

라오웨이가 보기에 1968년의 문혁은 사이비 종교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욕망을, 심지어 성적 본능까지도 이 우상숭배에 쏟아부었다. 그들을 깨어나게 한 것이 바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야말로 돈만 주면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인터뷰 도중에 라오웨이는 오입쟁이 문학 친구에게 공허한 질문을 던진다. “민중의 도덕 관념이 동물적인 현실주의로 곤두박질친 거에요. 그리곤 모두 깨달은 거죠.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이! 이 좋은 것을 모르고 살았다니.”

라오웨이는 심각한 자살 충동에 휩싸여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1989년 텐안문 사태 때 투옥됐다가 풀려난 뒤 시 쓰기를 접고 찻집을 전전하며 악기를 연주해 생계를 이어나간다. “2000년대에도 시나 쓰면서 어영부영 자기자랑이나 하는 자들은 모두 영악하고 비열한 소인배들이다. 왜냐고? 돈이 모든 걸 움직이는 이런 세상에서 시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시작한 게 중국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고 그걸 묶은 게 이 책이다. 인신매매범과 불법 인력거꾼, 가라오케 아가씨, 공중변소 관리인, 거리의 맹인악사 등이 중국의 밑바닥 생활과 그들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놀라운 것은 이 밑바닥 사람들의 삶에 역사가 살아흐른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저 낮은 중국 / 라오웨이 지음 / 이향중 옮김 / 퍼슨웹 기획 / 이가서 펴냄 /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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