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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학교다’를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6, 2004

파울로 프레이리와 프레이 벳토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1988년 분도 출판사에서 나오고 지금은 절판됐다. 오래된 책이라 한권에 1900원 밖에 안한다. 인터넷 서점에 몇권 남아있는 걸 스무권인가 사서 야학 애들에게 한권씩 나눠줬다. 지난주 독서토론회에서 이 책을 읽었다. ‘페다고지’ 보다 훨씬 쉽다. 야학에서 민중교육 이론서를 함께 읽은 것은 처음이다.

실천 못지 않게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그동안 성광야학의 이론은 시행착오의 축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현장을 벗어난 이론 못지 않게 이론 없는 현장도 공허하다. 늘 이론을 고민하지만 그 이론은 현장에서 낱낱이 분해돼 형체를 잃는다.

‘인생이 학교다’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건 먼저 공동학습과 대안의 모색에 기초한 우리의 실험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큰 방향은 맞다. 문제는 왜 프레이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프레이리는 학습을 통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런 믿음을 이른 바 대중문화운동으로 구현했다. 프레이리의 문화써클은 전국에 걸쳐 300개가 넘었다. 우리는 성광야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15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쌓아왔을뿐 언뜻 원론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1950년대 브라질과 2000년대의 우리나라는 조금 다르다. 프레이리의 문화써클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는 글 한줄 못 읽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그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주류 대중이었다. 그들은 소외받는 다수였고 그래서 현실에 맞서기 위해 서로 쉽게 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광야학의 학강들은 소외받는 소수에 가깝다. 이들은 현실에 맞서기 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다만 소외를 벗어나는데 목표를 둔다. 그것은 억압받는 자에서 억압하는 자로, 소수 집단에서 다수 집단으로 옮겨가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투쟁이다. 학강들뿐만 아니라 강학들도 물론 마찬가지다.

아학에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강학과 학강의 구분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한번 강학은 영원한 강학, 한번 학강은 영원한 학강,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배우고 가르친다지만 그 경계는 선명하고 굳건하다. 그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학강들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프레이리의 문화써클과 달리 야학에서는 수업과 공동학습의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른 바 지배 이데올로기와 대안 이데올로기 학습의 구분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소외받는 소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현실의 극복은 요원한 목표다. 야학의 학강들은 가능하면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이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확신이 필요하다. 느리긴 하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내딛고 있다.

아래는 ‘인생이 학교다’ 가운데.

우리는 이상과 용기, 현실참여를 위한 준비, 고전적 이론에 대한 충분한 지식 및 혁명사에 관한 지식 등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대중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비판을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입장을 취하게 됐습니다. “대중을 떠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차라리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대중과 함께하는 위험을 선택하겠다.”

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학적 방법이나, 특히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교육학적 방법을 신뢰하지 않으며, 따라서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는 혁명적 변화도 믿지 않습니다. 사회의 참된 변화는 대중들과 함께 더불어 진행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사회쇄신은 날마다 경험하는 일상생활 환경과 그 체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는 운동이지 흔히 대중들이 스스로를 믿고 과신한 끝에 일으키는 저항의 차원에서는 사회쇄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특히 대중교육가들이 정치적 입장에서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배우듯이 대중들 스스로 저항의 도구성을 깨닫고 저항의 본질적 성격과 도구성에 대한 인식을 자기비판적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때 민주적이며 해방적인 관점을 기초로 하는 대중형성과정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나는 대중문화운동의 한 갈래로 문화써클과 문화센터의 활동을 조정하는 일을 맡아보고 있었습니다. 써클은 하나의 실험이었습니다. 그 구성원 규모는 일정치 않았으며 2명에서 20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규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써클은 사전에 준비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은 써클 회원들의 의견을 듣고 만들었습니다. 즉 회원들끼리 서로 토론하여 활동프로그램을 정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회원들이 제안한 테마들을 전제로 그 문제점들을 더욱 명백히 하기 위한 테마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 대중들은 나름대로 사물을 인식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실제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얻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문제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종합적 인식력이 없다는 점이며 바로 이점 때문에 그들의 지식은 단편적 지식으로 끝날 수 밖에 없으며 어떤 구체적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성인들이 해야할 역할은 써클회원들이나 단위 활동 그룹에서 제안하는 작은 테마들을 잘 연결해 큰 테마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대중들이 제기한 테마가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점을 명백히 표출시킴으로써 테마에 관하여 보다 자각된 인식을 촉구하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한 모임이 곧 문화써클이었지요.

우리가 브라질에 거의 300개의 문화써클을 조직해 많은 위성도시에서 대중교육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우리 각자가 경험한 놀라운 사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새벽 네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든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상과 용기, 현실참여를 위한 준비, 고전적 이론에 대한 충분한 지식 및 혁명사에 관한 지식 등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대중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비판을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입장을 취하게 됐습니다. “대중을 떠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보다는 차라리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대중과 함께하는 위험을 선택하겠다.”

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학적 방법이나, 특히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교육학적 방법을 신뢰하지 않으며, 따라서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는 혁명적 변화도 믿지 않습니다. 사회의 참된 변화는 대중들과 함께 더불어 진행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사회쇄신은 날마다 경험하는 일상생활 환경과 그 체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는 운동이지 흔히 대중들이 스스로를 믿고 과신한 끝에 일으키는 저항의 차원에서는 사회쇄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특히 대중교육가들이 정치적 입장에서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배우듯이 대중들 스스로 저항의 도구성을 깨닫고 저항의 본질적 성격과 도구성에 대한 인식을 자기비판적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때 민주적이며 해방적인 관점을 기초로 하는 대중형성과정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사의 지식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려는 사람의 사회적 경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들의 사회적 경험이 축이 되고 이 축을 중심으로 학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육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은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어떤 테마에 관하여 토론하기 위해서 아무런 준비없이 간단히 그룹 토의에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토론은 항상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창조적 어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강사들의 능력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습니다만 집단 토론에 있어서 문제를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일반 대중 출신의 그룹 회원들이 스스로 제기하도록 기다렸습니다. 이 경우 강사의 할 일은 청중, 즉 토론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며, 강사들은 최소한 이 능력만은 구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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