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에서 토성까지… 서울여대 해커톤에서 발견한 다음 세대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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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틀 만에 하나의 미디어 서비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지난 3월 미디어오늘과 구글, 글로벌에디터스네트워크(GEN)가 공동으로 미디어 해커톤을 진행하면서 제가 심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했던 말입니다.

(서울에디터스랩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beta.mediatoday.co.kr/topic/689511/)

해커톤은 해킹+마라톤이라는 의미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기획과 개발, 프로토 타입까지 만들어내는 대회입니다. 보통 기획자와 개발자가 팀을 이루거나 디자이너가 합류하기도 하고 미디어 해커톤에서는 기자 또는 PD와 개발자, 디자이너가 한 팀이 돼서 경쟁을 하게 됩니다. 흔히 해킹이라고 하면 컴퓨터 범죄 같은 의미로 오해를 받곤 하지만 본래는 구조를 해체해 문제를 찾아내거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한다는 의미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여대에서는 국내 최초로 대학생 대상의 미디어 해커톤이 열렸습니다. 개발자 해커톤은 종종 있었지만 미디어 해커톤은 처음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제안하고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취지에 공감해 멘토들을 끌어모아서 판을 키웠죠. 서울여대와 미디어오늘, 메디아티가 공동 주관했고 이정환(접니다) 미디어오늘 대표와 엄호동 미디어디렉션연구소 소장, 노성규 키움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랩 랩장,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등이 멘토로 참여했습니다. 이 정도 멤버를 평일에 하루 종일 한 자리에 모으기가 쉽지는 않죠. 조영신 연구위원의 부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취지에 동의했으니 가능한 이벤트였을 겁니다.

페미니즘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는 시바뉴스팀의 김세영, 김수정, 김해인 학생,
오버워치를 주제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타임아웃팀의 이서희, 박세아 학생,
시사 키워드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개발까지 하겠다는 SOW팀의 박이은, 양하영, 서한비 학생,
그리고 비콘과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한 앱을 기획하고 있는 아띠팀의 조미나, 김지연 학생 등
모두 4개팀이 출전해 멘토들을 만났습니다.

대학생 해커톤? 별다른 기대가 없었지만 그래도 밀레니얼 세대들의 생각이 궁금하긴 했습니다.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들은 콘텐츠 소비 패턴이 전혀 다르죠. 뉴스의 파편화와 브랜드의 해체를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원래 그런 환경에서 커왔으니까요. 이제 누구나 미디어를 조직하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번 해커톤은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무너진 경계,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로 자란 10대와 20대 소비자들이 담론의 시장에 뛰어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변화를 내다보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SOW팀의 멘토를 맡게 됐습니다. 해커톤을 1주일 앞두고 박이은님과 양하영님, 서한비님이 직접 미디어오늘까지 찾아왔죠. 면담을 한 결과, 일단 아이디어가 너무 모호하고 구현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구현 가능성은 일단 다음 문제고 실제로 뭘 만들고 싶은지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시사 키워드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게 처음 계획이었는데 물론 아이디어는 좋았죠. 도대체 지금 어떤 이슈가 뜨고 있는지, 언론사들이 어떤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지, 직접 찾아보고 골라서 뉴스를 소비하겠다는 생각이었겠죠.

그러나 이슈의 키워드를 추출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특정 단어의 출현 빈도로 측정할 수는 없고요. 기사마다 핵심 주제를 뽑아내고 기사의 경중을 구분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기사의 메타 데이터가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도 마찬가지지만 피상적인 분석에 그치거나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죠. RSS를 실시간으로 읽어들여 주제를 나누고 중요도를 판별하는 시스템도 가능은 하겠지만 해커톤 주제로는 무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결국 학생들과 저는 키워드 추출 보다는 이슈를 해설하는 서비스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결국 학생들이 만들고 싶었던 건 이슈를 따라잡고 이슈의 맥락을 다시 구성하는 서비스였으니까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뉴스 지도를 그려 보기로 했습니다. 마인드 맵처럼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제가 확장돼 나가고 각각의 주제가 다른 주제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그리고 여기에 친구들이 서로의 주제를 보완하면서 완성해 나갈 수 있도록 말이죠.

맥락을 다시 구성하고 독자들이 뉴스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콘텐츠를 구조화해야 한다는 건 사실 많은 언론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죠. ‘최순실’로 검색하면 기사가 수백만개가 뜰 겁니다. ‘북핵’이나 ‘최저임금’은 어떤가요? 검색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죠. 정보가 너무 많아서 뭔가를 찾아보려 해도 잘 정리된 완결된 문서를 찾기 어렵죠. 계속해서 업데이트되지도 않고요. 오히려 위키백과나 나무위키가 훨씬 더 맥락을 따라잡기 좋도록 잘 편집돼 있죠. 그렇지만 이슈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관점을 만들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언론사들은 왜 이런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요?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를 쫓아가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어제 500개의 뉴스를 만들었는데 오늘 또 500개의 뉴스를 만들고 그걸 또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죠. 어제 만든 500개의 뉴스는 링크를 잃고 처박힙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독자들은 정작 얼마 안 되는데 그날그날 먹고 살기 바쁜 모습이죠. 기사의 유통 기한이 짧고, 만들자 마자 버려지는 기사도 많고 진짜 중요한 기사와 다시 읽힐 수 있는 기사들까지 버려집니다.

학생들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내줬죠. 월요일까지 뉴스 지도를 3장씩 만들어 올 것. 당신들이 뭘 보여주고 싶은지 샘플을 만들어 봅시다. 과연 지도 한 장으로 이슈의 여러 맥락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며칠 뒤에 받은 학생들의 숙제는 사실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일까. 하긴 그 수많은 언론사들도 못하는 걸 학생들에게 기대하기는 좀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며칠 뒤 해커톤이 시작됐습니다. 1차 피칭으로 시작했습니다.

 

시바뉴스팀은 이미 1년 가까이 페이스북 기반으로 동영상 작업을 해온 팀이었습니다. 20대 여성 대학생의 눈으로 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듭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부딪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영상으로 고발하겠다는 것이죠. 시바뉴스의 시바가 ‘시선을 바꾸다’란 의미인데요. 특히 왜곡된 성 역할과 성 관념을 바꾸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나온 슬로건이 “객관을 깨부수는 미친 우리들의 주관”. 친구들은 굳이 ‘씨바’라고 발음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개소리 하고 있네”와 “여풍당당” 등의 강력한 콘텐츠를 만드는 팀이었습니다.

‘게임 깨부수는 여자들’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타임아웃팀도 목표 의식이 명확한 친구들이었습니다. FPS(1인칭 슈팅) 게임 오버워치를 즐기는 이 친구들은 “여자들은 게임을 못한다”거니 “팀에 여자가 끼면 반드시 진다”는 등의 편견에 맞서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오버워치를 좋아하고 잘 하는 친구들이 모이기도 했고요. 오버워치는 특히 팀 플레이 게임이고 팀 보이스라는 기능으로 직접 마이크를 이용해 대화하면서 하는 게임이라 차별적인 발언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성 희롱에 가까운 발언도 많고요.

이 친구들은 그래서 오버워치로 미러링을 해보자는 재미있는 발상을 하게 됩니다. 팀 이름부터 ‘남자들의 시간은 끝났다’는 도전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이 친구들이 만들고 싶은 동영상은 이런 겁니다. 5명의 여성 팀원이 1명의 남성 팀원을 받고는 “아, 이래서 남자랑 게임을 하면 안 돼”라거나 “남자는 뒤로 빠져서 힐러나 해” 같은 차별적 발언을 ‘피 터지는 현장 보이스’로 돌려주겠다는 것이죠. 씩씩하고 용감한 게임하는 언니들의 컨셉입니다. 이런 식이죠. “누나만 믿어, 내가 캐리해 줄게.”

그리고 SOW팀 발표가 있었습니다. 어쩐지 걱정을 했지만 발표는 전체적으로 무난했습니다. 다만 멘토들 평가에서는 일단 발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요(써놓은 거 읽지 마라). 아우름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소개했는데 제가 보기에도 메뉴 인터페이스 소개는 좀 지루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은 좀 너무 나갔고요. 좋은 걸 다 갖다 붙였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프로토타입까지 못 가고 아이디어 스케치 수준이었는데요. 결국 핵심은 지도를 보여주는 것인데 샘플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죠. 아마도 멘토들도 이 친구들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은 아띠팀. 발표 퀄리티는 가장 높았죠. 이 친구들은 엄호동 소장과 사전 미팅을 하면서 컨셉을 완전히 바꿨다고 합니다. 근거리 무선 통신 비콘을 이용해 노인들에게 음성 도움말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날 발표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친구 찾기 서비스를 들고 나왔습니다. 1주일 남짓한 동안 완전히 기획을 뒤집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낼만큼 유연하고 순발력이 있다는 이야기겠죠.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분석해 15명의 아띠(atti)와 15명의 버디(buddy), 그리고 130명의 크루(crew)를 분류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웬만한 스타트업의 서비스 소개라고 해도 될 만큼 깔끔한 발표였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따져볼 부분이 많았습니다. 연락이 뜸한 친구를 찾아 리마인드해주고 안부 문자를 보낸다든가, 친구들과 모임을 주선한다든가, 아띠끼리는 일정을 공유하고 영화를 추천한다는가 하는 서비스를 음성인식과 인공지능으로 구현하겠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통화와 문자 메시지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등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모니터링한다는 게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상은 재미있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이 오프라인의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었습니다.

발표가 끝날 때마다 멘토들의 가혹한 평가와 냉정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 이슈는 조금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여자들은 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느냐”며 “강요된 객관에 미친 우리들의 주관으로 맞서겠다”고 말하는 시바뉴스에게 약간만 톤 다운을 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는 일이죠. 다만 시위와 운동을 넘어 미디어로 성장하려면 좀 더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미디어가 운동이 될 수도 있고 타겟 독자에 집중하는 전략도 필요하겠지만 확장성을 고민할 필요도 있겠죠.

타임아웃팀은 젠더 이슈를 가져가되 오히려 좀 더 경쾌하고 재미있게 가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장기적으로 여성이 진행하는 새로운 게임 채널로 키울 수도 있을 거고요. 젠더 대결 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전복하고 반전과 반성을 끌어내는 느낌으로 말이죠.

SOW팀은 이슈의 구조를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사 목록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죠. 한 장의 지도에 모든 맥락과 관점과 사건의 흐름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독자 참여의 동기 부여도 돼야 하고요.

1차 피칭이 끝난 뒤 학생들은 어쩐지 기진맥진한 느낌이었는데요. 점심 시간 이후에 2시간 정도 보완 작업을 한 다음 3시30분부터 2차 피칭을 시작했습니다. 엄호동 소장이 “마법이 벌어졌다”고 할 정도로 다들 확 달라진 기획안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시바뉴스팀은 “우리는 왜 여성주의 콘텐츠를 만드는가”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멘토들의 조언을 반영한 것이죠. 릴리안 생리대 사건에서 보듯, 우리는 우리의 몸을 모르고 정보가 제한돼 있고 주류 언론이 이야기하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이죠. 1차 피칭도 좋았지만 훨씬 더 주제의식이 깊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좀 더 깊이있게 구조를 들여다 보고 편견에 맞서고 좀 더 강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진규 교수님은 지난해 강남역 사건 이후 여학생들의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시바뉴스는 미디어면서 운동이고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이고, 단순히 조회 수나 영향력과 별개로 중요한 학습이고 투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독립적인 언론 매체로 진화하려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할 것, 꼭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실험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콘텐츠의 존재감과 차별성 확보하는 전략이 있어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임아웃팀은 타겟 전략을 보완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 영상을 만드는 것이 누구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져온 것이죠. 젠더 폭력에 강한 문제의식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여성들에게는 자극과 분노를, 폭력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남성들에게는 반성과 변화를 일깨우는 영상을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모두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고(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죠)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을 공략하겠다는 것이죠.

조영신 박사님은 즉석에서 카카오 스토리펀딩팀의 컨설팅을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단편 영화를 만들든 시리즈 기획 기사를 내보내든 처음부터 진행 과정을 독자들과 함께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타임아웃팀은 일단 게이머팀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콘텐츠 작업에 들어갈 거라고 합니다. 역시 기대가 큰 팀입니다.

아띠팀은 실제로 서비스로 구현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는데요. 아쉽게도 창업까지 할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한계를 넘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능한 거겠죠. “진짜 친구는 이렇게 실제로 만나요.” 아띠는 스마트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관계를 복원하는 서비스입니다. 2년 전에 친구랑 본 영화를 기억해주고 6개월 동안 연락을 안 한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라고 알려주고 내가 보지 못한 친구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챙기는 그런 서비스. 언젠가 누군가가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내놓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띠팀의 조미나씨와 김지연씨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러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실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제가 멘토를 맡았던) SOW팀의 변화가 놀라웠습니다. 이 친구들은 새벽 1시에 일어나서 밤샘 작업을 했다던데요. 이번 해커톤을 준비하면서 코딩도 배웠다고 하고요. 일단 이 친구들은 실제로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압축해서 설명하는 게 부족한 것 같아서 개념을 잡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모든 지식은 연결돼 있다. 오늘의 뉴스는 어제의 뉴스의 연장선에 있고 일주일 전 뉴스와 오늘의 뉴스가 원인과 결과로 만나기도 하고 뉴스와 뉴스가 연결되는 방식을 들여다 보면 이슈의 작동 원리와 숨겨진 맥락을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만든 서비스였죠.

이 친구들이 샘플로 만든 7장의 뉴스 지도는 페미니즘과 문재인 정부 100일과 군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마를린 먼로와 국정원 대선 개입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마인드 맵처럼 상위 노드와 하위 노드가 위계 구조를 이루고 각각의 키워드가 상위 노드로 올라가 이슈의 동심원을 구성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고 이슈를 구조화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만든 지도를 남이 보고 이해하게 만들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박이은씨가 만든 페미니즘 지도와 서한비씨가 만든 군대 지도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박이은씨는 페미니즘의 여러 키워드를 분류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넣었죠. 병역 거부를 일부 남성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봐야 하고 여성들 역시 이들을 지지하는 걸 넘어 연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습니다. 한편 서한비씨는 군대라는 이슈의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제 찬반 논쟁을 지도에 넣고 있습니다. 페미니즘과 군대라는 다른 키워드가 인권이라는 연결 고리로 만나는 것이죠.

우리가 하려던 건 모든 이슈가 하나로 연결된 축구장 20개 넓이의 거대한 지도였습니다. 물론 전체를 다 볼 수는 없고 그 거대한 지도의 일부를 볼 수 있을 뿐이지만 뉴스와 뉴스가 연결돼 있고 어떤 상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노드와 노드를 타고 넘나들면서 맥락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집단지성이 작동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해 인식을 확장할 수도 있겠죠. 이를 테면 박이은의 페미니즘 지도로 시작해 양심적 병역거부 지도로 넘어가고 서한비가 만든 군대 지도로 넘어가서 다시 복무 기간 단축이나 주한 미군 철수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여기까지 설명을 하자 멘토들이 감탄사를 내뱉었죠.

그래서 SOW팀의 캐치 프레이즈는 “금붕어에서 토성까지”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섯 단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된다고 하는 것처럼 뉴스와 뉴스가 상호 작용을 하고 결국 모든 뉴스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뉴스와 뉴스가 연결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길이 될 거라는 겁니다. 금붕어의 뉴스와 토성의 뉴스에 갇히지 않고 금붕어와 토성, 금붕어와 마를린 먼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끊임없이 뉴스를 의심하게 하고 뉴스의 이면을 보게 만들고 다른 관점을 고민하게 하는 그런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바뉴스와 타임아웃, 아띠, 아우름, 이 친구들이 직접 미디어 서비스를 만들거나 콘텐츠를 제작하는 모험을 하게 될지는 모릅니다. 언젠가 언론사에 취업하게 될 수도 있고 스타트업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오히려 낡은 관행에 사로 잡힌 기성 언론인들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소비자 중심의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친구들입니다. 멘토들은 거들 뿐, 이런 친구들을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면 훨씬 더 멋진 기획과 반짝거리는 콘텐츠를 쏟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오는 때가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모든 멘토들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이번 해커톤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애초에 기대 수준이 낮았을 수도 있지만 참신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스토리텔링, 무엇보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났고요. 미디어의 문턱이 낮아졌고 플랫폼도 다양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도구도 많습니다.

누구나 미디어를 조직할 수 있는 시대. 앞으로 몇 년 안에 수많은 조소담과 구현모와 국범근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번 해커톤은 오전과 오후 짧은 일정으로 진행됐지만 기대 이상으로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자부합니다. 이런 실험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미디어X에 동시 게재됩니다. http://www.mediax.kr/?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