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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본질, 광고가 아니라 콘텐츠를 팔아라.”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23, 2017

[인터뷰] 박성조 글랜스TV 대표 “채널은 얼마든지 있다, 여전히 콘텐츠가 부족할 뿐.”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가 콘텐츠를 지배하는 게 지금까지 이 시장의 질서였다.

언젠가 케이블 채널 사업자 MBN이 서울역 대합실에 TV를 들여놨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버튼을 눌러 YTN으로 채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예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TV에 박스를 두르고 자물쇠를 채워버렸다고 한다. MBN이 틀어져 있는 TV가 아니라 MBN만 나오는 TV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서울역 대합실의 TV는 그냥 그곳에 놓여 있고 언제나 틀어져 있는 것이었다. 점심 먹으러 들른 식당에서나 목욕탕 탈의실에서나 요즘은 버스 정류장이나 편의점에서도 어디에나 TV가 놓여 있지만 어쩌다 눈길을 줄 뿐 발길을 붙잡을 정도는 아니다. MBN은 서울역 대합실이라는 플랫폼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콘텐츠를 공급하려 했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기껏 돈 들여 하드웨어를 깔았지만 플랫폼을 독점하는 데 실패했고 독점한다고 한들 소비자들을 붙잡아 두는 데 한계가 있었다.

흔히 TV를 린백(Lean-Back) 미디어라고 한다. TV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느긋하게 보는 것이다. 기차역 대합실이나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TV는 눈길을 붙들 수도 없고 붙든다고 한들 붙잡아둘 수 없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린포워드(Lean-Forward) 미디어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뭔가를 찾아서 볼 수 있는데 흘러가는 뭔가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박성조 글랜스TV 대표는 일찌감치 디지털 사이니지(signage)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봤다. 이제 TV는 어디에나 있고 정작 TV로 TV를 보지 않는 시대다. TV의 정의와 내용을 다시 규정해야 할 때다. 오히려 콘텐츠에 집중하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시와 수도권을 연결하는 광역버스가 7500대에 이르는데 5000여대의 버스에 TV가 들어가 있다. 얍TV라는 기업이 서울시와 계약을 맺어 이 버스들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과거에는 한 달에 한 번 USB로 파일을 옮겨담고 한 달 내내 같은 방송을 반복해서 틀었지만 이제는 모든 TV가 LTE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고 실시간 방송 송출도 가능하게 됐다. 당연히 어떤 내용으로 방송을 채우느냐가 중요한 고민이 됐다. 글랜스TV는 이 시장을 파고들었다.

글랜스TV가 얍TV에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편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애초에 광고 플랫폼으로 만든 TV 네트워크였지만 하루 종일 광고를 트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스 안에서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틀 수도 없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흘겨 보다가 눈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박성조 글랜스TV 대표는 디지털 사이니지가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고와 광고 사이에 콘텐츠를 끼워넣는 게 아니라 콘텐츠가 그 자체로 상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테면 글랜스TV는 ‘클라이밍 여제’라고 불리는 김자인 선수와 함께 ‘행아웃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동영상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암벽 등반을 위한 손가락 훈련 방법을 설명하거나 8자 로프 묶는 방법을 시연하는 등의 내용인데 사실 이 동영상 시리즈는 레드불과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든 브랜디드 콘텐츠다. 김자인 선수가 출연하는 화면에 잠깐 로고가 비춰지는 것 뿐이지만 바이럴 효과가 커서 충분한 광고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글랜스TV가 만든 ‘JJ노마드’라는 동영상 시리즈는 제주항공과 함께 만든 브랜디드 콘텐츠다. 역시 제주항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를 테면 “롱보드 여신 고효주의 뜨거운 괌 라이딩” 편에서는 고효주씨가 제주항공을 타고 괌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슬쩍 비출 뿐 괌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효주씨의 라이딩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것은 광고인가? 아닌가? 살짝 헷갈리게 만들 뿐 광고라는 선입견과 거부감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브랜드 노출을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의 PPL 보다 훨씬 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죠. JJ노마드 같은 경우는 그나마 제주항공 로고를 잠깐이라도 노출하거나 노선 안내를 띄우기도 하지만 다른 브랜디드 콘텐츠는 전혀 광고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듭니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아쉽겠죠. 그렇지만 충분히 설득할 수 있습니다. 광고 같지 않을수록 도달율이 높아지고 효과가 더 크다고요.”

버스 광고라고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7500대 버스에서 하루 600만 명의 잠재적인 시청자를 확보하고, 월 2억 회 이상 광고 및 콘텐츠를 내보낼 수 있는 강력한 미디어다.

글랜스TV는 이렇게 만든 동영상을 광역 버스 뿐만 아니라 커피숍과 미용실 등에 공급한다. 미용실에서는 특히 뷰티 콘텐츠가 효과가 크다. “원빈처럼 훈남되기”라거나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일, 여신 웨이브” 같은 동영상은 정보성 콘텐츠면서 광고를 싣기에도 큰 무리가 없다.

지금까지 광고가 신문의 지면을 사거나 방송의 시간을 사서 밀어넣는 방식이었다면 글랜스TV는 직접 미디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광고를 메인에 띄운다. 광고는 광고지만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버스에서든 정류장에서든 눈길을 잡아 끌고 효과적으로 브랜드를 각인시킨다. 무료하게 잡지를 펼쳐드는 대신 자막을 따라가게 된다. 글랜스TV의 동영상은 주유소와 편의점에도 들어간다. 그냥 틀어져 있는 TV가 아니라 강력한 콘텐츠 채널이 된다. TV의 재발견 또는 TV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글랜스TV의 ‘JJ노마드’.

“JJ노마드는 아무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에서 구입하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콘텐츠로 만들었는데 정규 편성이 된 거죠.”

“광고주가 좋아했겠네요?”

“당연하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케이블 채널에도 들어간 거니까요. 우리는 MSO(방송 사업자)와 MPP(채널 사업자)를 결합한 MSP(시스템 사업자) 모델을 추구합니다. 판을 좀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비디오 포털로 가는 게 목표입니다. 콘텐츠 제작도 하지만 퍼블리싱 기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흔히 모바일 퍼스트가 모바일 온리라고 아는데 나머지는 무주공산이죠. 채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채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익화 가능성이 커집니다. 중요한 건 채널에 맞는 톤 앤 매너를 지키고 콘텐츠의 가치를 희석시키지 않으면서 TPO(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는 편성을 하는 것이죠.”

글랜스TV가 브랜디드 콘텐츠 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콘텐츠가 있어야 플랫폼을 확보할 수 있고 플랫폼이 뒷받침돼야 콘텐츠가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글랜스TV는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송출하는데 임프레션 기준으로는 일 300만 회 이상이지만 정확한 인게이지먼트를 측정할 기준을 유튜브와 협의하는 중이다. 박 대표는 우선적으로 방송광고처럼 SA급이나 A급, B급 등으로 단가를 구분하거나 시청률을 측정하는 등, 또 애드 네트워크(Ad Network)를 연동하는 등의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상당수 MCN(멀티 채널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브랜디드 콘텐츠에 매달리면서도 아직 손익 분기점을 맞추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랜스TV의 옴니 채널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대표는 글랜스TV는 콘텐츠 기업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광고를 파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팔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해 직원 20여 명이 400여 편의 콘텐츠를 만들고 약 10억 원 정도 매출을 냈다. 이 가운데 브랜디드 콘텐츠가 100여 편 정도다. 나머지는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올해 매출은 약 40억 정도,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여전히 브랜디드 콘텐츠가 핵심 매출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에 핵심 자원을 쏟아붓고 유통 채널을 다변화하면서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플랫폼이 콘텐츠를 규정했다면 글랜스TV는 역으로 콘텐츠가 플랫폼을 선택하거나 플랫폼을 주도하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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