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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뉴스의 혁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1, 2016

(주간 세종포스트에 보낸 서평을 좀 더 보완해서 정리했습니다.)

잃을 게 없을 때 모험을 할 수 있다. 미국의 쿼츠는 세계적으로 많은 언론사들이 부러워하는 혁신 모델이다. 2012년에 창간한 이 독특한 인터넷신문은 “SYBAW(Smart, Young and Boared At Work)를 잡아야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재밌는 뭔가를 찾는 똑똑하고 젊은 직장인들이 목표 고객이다. 다른 많은 언론사들은 이런 모험을 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든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디지털 뉴스의 혁신’에 따르면 쿼츠는 “짧고 분명하거나, 길고 분석적인, 그러나 언제나 명확한 관점을 드러내는 콘텐츠”에 집중한다. 잃을 게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잘 팔리는 콘텐츠에 주력하면서 인내심 없는 독자들을 사로잡는 전략이다. 500∼800단어의 데스존(death zone)을 피하라는 원칙도 흥미롭다. “신뢰하는 조언자가 짧게 써준 메모 같은 뉴스”를 만들지만 필요할 때는 작정하고 장문의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쓴다.

버즈피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콘텐츠 기업이다. 고양이 동영상이나 얄팍한 리스티클 따위로 트래픽을 긁어모으다가 광고가 밀려들어오자 제대로 된 뉴스도 만들고 있다. 모든 언론사들이 버즈피드를 부러워하지만 버즈피드가 트래픽을 거저 얻는 건 아니다. 집요하게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꾸준히 실험과 피드백을 거쳐 콘텐츠 확산율을 높이는 게 비결이다. 버즈피드를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술회사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이스미디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언론사라고 보긴 어렵지만 요즘 뜨는 신생 뉴스기업 가운데 가장 비싼 기업인 건 분명하다. 바이스미디어는 CNN과 MTV를 합쳐 놓은 듯한 파격적인 동영상 뉴스를 만드는데 기업 가치가 벌써 25억달러에 이른다. 일찌감치 동영상 콘텐츠의 성장 가능성을 간파하고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맞는 파격적인 문법을 실험한 것이 주효했다. TV가 죽은 게 아니라 다른 화면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게 바이스미디어의 주장이고 전략이다.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맨을 북한에 보내 김정은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농구 관람을 하게 만든 것도 바이스미디어다. 뉴욕타임즈는 바이스미디어의 보도를 ‘스턴트 저널리즘’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기자가 취재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대신 직접 사건에 개입해 그 경험을 토대로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곤조(gonzo) 저널리즘’이란 말을 만든 것도 바이스미디어다. 경험과 픽션을 조합, 취재 대상에 주관적 개입을 강조하는 취재 기법을 말한다.

많은 언론사들의 고민은 전통적인 뉴스 플랫폼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사람들은 이제 9시 뉴스를 시간 맞춰 보지도 않는다. 아침 신문에 나온 뉴스는 대부분 어제 포털 사이트나 페이스북 등에서 본 구문(舊文)이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쳤는데, 언젠가부터 모바일 퍼스트로, 그리고 이제 모바일 온리(only) 시대로 간다고 난리법석이다. 모바일에서는 도대체 트래픽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쿼츠와 버즈피드, 바이스미디어 같은 신생 언론사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문법의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콘텐츠 유통 방식도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버즈피드의 창업자 요나 페리티는 “인쇄 뉴스에서 디지털 뉴스로 가는 변화는 마구간을 닫고 말을 팔고 철로를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낡은 플랫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레거시(legacy) 미디어들은 마구간을 닫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올드 미디어 중에 그나마 디지털 혁신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디언이 “도덕적 권위는 종이신문에 있지만 기회는 디지털에 있다”며 “기사를 들고 찾아가야 한다”고 전략을 잡은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기사를 무료로 풀되, 기사의 퀄리티를 높이고 온라인 유통을 강화하는 게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아젠다는 심각해도 콘텐츠는 가벼워야 한다”는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뉴욕타임즈도 일찌감치 “인쇄하기 적합한 모든 뉴스에서 클릭하기 적합한 모든 뉴스로” 전환을 시도했다. “우리의 미래는 동영상과 소셜, 모바일에 달려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홈페이지의 종말’에 맞서 쿼츠가 ‘사이드 도어 전략’을 내걸고 기사 단위 유통에 주력하고 있다면 뉴욕타임즈는 기사를 구조화하고 맥락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플랫폼에 대응했다. ‘에버그린 콘텐츠’로 독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한국에서도 중앙일보가 혁신 보고서를 내고 카카오 대표이사를 지낸 이석우씨를 디지털전략본부 본부장으로 영입하는 등 혁신과 생존이 언론사들 화두다. 중앙일보는 최근 개발과 디자인 인력을 대거 충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최근 네이버와 합작 자회사를 만들고 취업정보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새로운 변화다. 구글이 한겨레21 등과 3개월 과정의 저널리즘스쿨을 만들고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미디어 기업과 정보기술 기업의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뉴스는 이제 푸쉬 방식이 아니라 풀 방식으로 유통된다. 뉴스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페이스북이든 카카오톡이든 온갖 경로로 뉴스가 다가온다. 우리는 이제 뉴스 유통의 주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뉴스의 패키지가 해체되고 브랜드 충성도도 약화되고 있다.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기사는 만드는 순간 버려진다. 너도나도 혁신을 외치고 변화를 서두르지만 포장과 유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질적 혁신이다.

우리는 진짜 중요한 논의를 빠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에도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과 아젠다 셋팅 또는 키핑, 비판과 대안 제시다. 버즈피드나 허핑턴포스트는 대안이 아닐뿐더러 이대로 가면 유사 뉴스 서비스들이 뉴스를 대체하고 공론의 장이 붕괴되고 어젠다 셋팅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까지 가게 될 수도 있다. ‘디지털 뉴스의 혁신’에서 강조하는 건 혁신의 스타일이 아니라 본질이고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트래픽과 퀄리티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지속가능한 콘텐츠 수익모델이 나타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이제 모든 기사가 프론트 페이지가 돼야 한다. 1면을 편집하는 데 들이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기사를 편집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을 새겨 들어야 한다. 경쟁력 없는 콘텐츠를 버리되 기사에 맥락을 부여하고 지나간 기사를 끊임없이 다시 소환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칼 번스타인 기자는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을 제공하는 것이 기자들의 역할”이라고 말한 적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원칙 첫 번째는 “진실로써 확보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국 디지털과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도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에버그린 콘텐츠를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에버그린 콘텐츠로 만드는 전략을 고민해야 하고 손석희 JTBC 사장이 강조했던 것처럼 아젠다 셋팅 못지 않게 아젠다 키핑도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다. 진짜 절박한 건 재미없으면서도 중요한 뉴스를 읽게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콘텐츠의 기획과 취재 단계부터,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고, 철저하게 경쟁력 있는 콘텐츠에 집중하되 메시지는 무겁더라도 전달방식은 가볍게, 여전히 시도할 수 있는 건 많다.

잃을 게 없으면 새롭고 핫한 데 모든 자원을 쏟아부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언론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낡은 플랫폼에 발을 담그고 있고 버리고 떠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종합지의 함정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이슈를 다 다루고 모두에게 읽히기 위해 만드는 그런 뉴스는 갈수록 경쟁력이 없다. 여기 아니라 다른 데 가도 다 있는 그런 뉴스를 포기할 때 비로소 혁신이 시작된다.

비슷비슷한 300개의 뉴스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서너 시간만 지나도 읽히지 않을 뉴스에 귀한 취재 인력을 동원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멀리 가는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 독자들이 나서서 뉴스를 퍼가고 댓글을 달고 공유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꼰대 저널리즘을 버리고 약간의 짤방을 더하고 문어투의 문장을 버리고 친구에게 말하듯 이야기를 건네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혁신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버즈피드는 “파도가 밀려 오기 전에 서핑을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만큼 콘텐츠 환경 변화를 일찌감치 내다봤기 때문에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언론사들이 버즈피드를 따라갈 수 없고 따라가서도 안 된다. 다만 달라진 문법과 새로운 콘텐츠 유통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파도는 이미 밀려왔고 이제 좋든 싫든 서핑을 해야 할 시간이다.

 

디지털 뉴스의 혁신 / 루시 큉 지음 / 한운희·나윤희 옮김 / 한국언론진흥재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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