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가 묻고 이정환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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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TV와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초 어제 할 인터뷰였는데 김정남 피살 의혹 때문에 늦춰졌고요. 질문지를 보내왔기에 간단히 답변을 정리해 봤습니다. 영장이 기각되든 발부되든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1. 이재용 부회장이 1995년 겨우 60억8000만원을 상속 받아서 어떻게 8조원 대로 재산을 증식할 수 있었다고 보시나요? 이재용 부회장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0.6% 밖에 안 되는데 삼성을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기업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나요?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은 순환출자와 이익 몰아주기입니다. 회사 A가 회사 B에 투자하고 회사 B가 회사 C에 투자하고 회사 C가 다시 회사 A에 투자하고 여기서 A만 지배하고 있으면 A와 B와 C를 모두 지배할 수 있게 되죠. 삼성은 이건희 이재용 패밀리가 보유한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고 이 회사의 지분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자산을 늘려왔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게 삼성에버랜드였고 삼성SDS였죠. 에버랜드는 제일모직과 합병하고 다시 삼성물산을 집어삼켜서 사실상 지주회사로 변신했습니다. 삼성SDS는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서 이재용의 돈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희 이재용 패밀리가 실제로 삼성전자 지분은 거의 없지만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삼성물산(에버랜드)을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들의 자산이죠. 이게 이재용 부회장의 아킬레스 건입니다. 금융과 산업 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면 이재용 왕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한국형 재벌 시스템은 신속한 의사 결정과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런 의사 결정이 잘못됐을 경우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한계를 감추기 위해 필연적으로 정권과 유착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문제는 삼성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삼성의 리스크가 한국 경제의 리스크로 직결될 상황이라는 겁니다.

2. 삼성이 그 동안 어떻게 언론과 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왔나요? 한국에서의 (부당한) 삼성의 영향력은 얼마나 크나요?

삼성은 법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습니다. 단통법을 누더기로 만들었고 금산분리를 막고 있고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죠. 의료 민영화라고 불리는 의료 서비스 산업 고도화 역시 삼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의 권력은 직접적인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성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광범위하게 확산된 믿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믿음은 삼성을 비롯해 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이 퍼뜨립니다. 한국에서 삼성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삼성과 직간접적인 거래를 하고 있죠. 집단 백혈병 피해자와 가족들이 1년 넘게 삼성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거의 없습니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다면 삼성의 비리를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현실입니다. 삼성이 국민연금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최순실씨의 로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게 국가 경제에 이롭다는 신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물론 삼성이 잘 되는 것과 이재용이 잘 되는 건 다른 문제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건희가 삼성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삼성이 정치권력과의 부적절한 유착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삼성이 한국 경제를 견인한다는 신화가 그런 문제를 은폐하거나 외면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삼성 장학생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만 실제로 뇌물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보다는 삼성의 힘을 이용하거나 삼성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거나 재벌 대기업의 낙수효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 부패사슬 구조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죠. 일부 문제는 있지만 재벌 시스템을 해체할 정도는 아니라는 여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3. 삼성의 언론과 정권에 대한 장악력이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약화가 될 거라 보시나요? 앞으로는 재벌 총수의 사면, 재벌 범죄에 대한 관대함 더이상 보기 어려워질까요?

10년 전이죠. 2007년 삼성 비자금 사태가 있었습니다. 비자금 조성과 편법 후계구도 등의 혐의로 특별검사가 시작됐죠. 이건희 회장이 특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몇 년 뒤 사면을 받았습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지만 은근슬쩍 복귀했고요. 특검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은 1년 반 가까이 언론 광고를 전면 중단하다시피했습니다.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와 광고가 동시에 나가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였는데 특검 결과가 나오자 마자 광고를 풀기 시작했고 언론은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봐주기 수사에 솜방망이 처벌이었지만 언론의 비판은 시늉에 그쳤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삼성은 철처하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계속했고 언론도 삼성을 감쌌습니다. 노골적으로 이재용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신문도 많았죠.

(영장이 발부됐을 경우) 법원이 오늘 이재용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지만 실제로 재판에 가면 무혐의 또는 집행유예로 방면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봅니다. 430억원의 뇌물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직접적인 거래가 이뤄졌는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랫 선에서 적당히 죄를 뒤집어 쓸 가능성도 있습니다.

(영장이 기각됐을 경우) 법원이 오늘 이재용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한 것 자체를 면죄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범죄 여부는 재판에서 밝혀지겠지만 일단 구속할 정도로 증거인멸과 도피 등의 우려가 큰가 하는 게 쟁점일 텐데요. 430억원의 뇌물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직접적인 거래가 이뤄졌는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랫 선에서 적당히 죄를 뒤집어 쓸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는 오히려 삼성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대통령 위에 최순실, 그 위에 이재용이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민주주의가 작동해서 대통령 탄핵 소추를 끌어내고 최순실을 구속했지만 이재용을 처벌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삼성은 어디를 건드리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지 알고 있었고 크지 않은 돈으로 그걸 얻어냈습니다.

영장이 발부됐든 기각이 됐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것인가입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가 정경유착의 낡은 관행을 극복하고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삼성의 힘 앞에 정의가 물러설 것인가의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