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후’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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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영화라고 다 무서운 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영화는 영화에 빨려 들어가 정말 나에게 닥친 일처럼 느껴지는 영화, 의자 깊이 움츠려 들면서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영화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든 비오는 어느날, 흠뻑 비를 맞고 찾아든 영화관에서 생각없이 봤던 영화, ‘블레어 윗치’가 그랬다. 소리나 꽥꽥 지르면서 칼이나 곡괭이 따위를 휘둘러 대는 한심한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28일 후’도 그만큼 무섭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섭다기보다는 서늘한 느낌의 영화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볼 생각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세요.)

몇일동안 병원에 누워있다 깨어났더니 세상이 너무 조용했다. 노을이 지는 거리가 유난히 넓어 보인다. 텅빈 거리에 바람은 황량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자동차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상황 설정은 대충 그럴듯하다.

어느날 실험실에서 끔찍한 바이러스가 쏟아져 나온다. 바이러스는 피나 침으로 전염되고 한번 전염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는 못된 증상을 보인다. 감염자에게 한번 물리면 당신도 살아있으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살아있는 시체가 된다. 감염자들은 낮이 되면 우글우글 햇볕이 안드는 어두운 곳에 숨어들었다가 밤이 되면 원숭이처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바이러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그리고 28일이 지났다.

당신의 사랑하는 친구가 감염자에게 물렸다면 당신은 20초 내에 그를 때려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그에게 물리게 될 테니까.

가장 무서운 것은 어디에서 튀어나올까 알 수 없는 살아있는 시체들만큼이나 혼자 뿐이라는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당신은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블레어 윗치’처럼 끔찍한 상황이다. 혼자 있을 때보다 많지 않은 몇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더 무섭다. 두려움은 서로를 확인하면서 증폭되니까. 함께 있어도 서로의 두려움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니까.

눈여겨 보면 영화 첫 부분에 우리나라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이 실험실의 티비 화면에 잠깐 나온다. 반가운 건 잠깐, 이내 씁쓸해진다.

모두가 죽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면. 정말 익숙하지만 어딘가 새롭고 끔찍한 상상이다. 사람들이 없는 텅빈 런던을 담아내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몇몇 장면은 정말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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