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카드의 눈물, 론스타는 한국을 농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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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간될 ‘투기자본의 천국’ 10주년 개정판에 들어갈 원고 가운데 일부입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유일한 문제는 합병 계획 발표로 인해 외환카드 주가가 올라가고 이로 인해 외환은행 주주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03년 11월20일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유회원 당시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한 말이다. 여기서 외환은행 주주라는 건 당연히 론스타다. 론스타는 이미 9월26일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하고 경영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당초 이날 이사회에서는 외환은행이 외환카드에 35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외환카드 감자가 핵심 안건으로 떠올랐다.

전용준 당시 외환은행 경영전략부 부장이 “그러면 외환카드 감자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시장에 흘리면…”이라면서 맞장구를 치고 나왔고 유회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넘겨 받는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방향은 외환은행 이사회가 외환카드의 감자를 통한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는 거군요. 우리가 외환카드의 감자를 통해 합병을 마무리 지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고려하고 있고 그러면 시장은 아마….”

유회원의 마지막 말줄임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감자 계획을 흘리기만 해도 시장이 요동을 칠 것이고 주가가 폭락할 거라는 의미다.

론스타에게 외환카드는 외환은행 인수에 따라 온 덤이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남발을 묵인했고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급기야 2002년에 신용카드 대란이 터졌다. 외환카드의 부실이 외환은행까지 동반 부실로 끌고 갔고 덕분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비교적 저렴하게 인수할 수 있었지만 론스타는 외환카드를 애물단지 취급했다. 외환카드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나 다만 최대한 싸게 집어삼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11월20일 외환은행 이사회 발언 가운데 일부를 그대로 공개한다. 공식 회의록이 아니라 영어로 진행된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외환은행 실무 직원이 녹음한 파일을 검찰이 입수한 것이다.

이달용 당시 외환은행 행장 직무대행 : “아직 결정난 건 아니지만, 결정한 게 아니죠. 그러나 고려해 볼 수는 있죠.”
마이클 톰슨 당시 외환은행 이사 : “어제 씨티그룹에서 들은 내용을 아주 공정하고 적절하게 적용해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가격이 적당해야 하고, 교환가격은 적정한 가치를 반영해야 하고…외환카드가… (밸류가 아마) …에게 경각심… 라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 그건 합병에 적정한 교환 비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거죠. 음, 그건, 우리가 아마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죠. 감자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유회원 : “감자를 포함해서….”
마이클 톰슨 : “하지만 저는 이런 쪽으로 좀 더 생각했어요. 가치, 현황, 외환카드의 가치를 적절히 반영하는 주식 비율을 얻으려면, 아마도, 모르죠, 감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유회원 : “그것만 적어주면 되는데 그러니까 두 회사의 합병, 합병가치를 공정한, 그것으로 되기 위한 구체적인 합병비율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을 한다, 그러니까 거기에 감자와….”
마이클 톰슨 : “물론 이 결의안들은 정식 경로를 통해 증권선물거래소에 신고될 겁니다. 여러분 모두 보도자료를 생각하고 계세요?”
이달용 : “예”.

누가 봐도 이건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 감자 계획을 발표하기만 해도 주가가 떨어질 것이고 외환카드를 좀 더 적은 비용으로 합병할 수 있을 거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깔린 상태였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정상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외환은행 인수 이후 외환카드를 합병한다는 큰 계획이 있었겠지만 그 전에 외환카드의 가치를 최대한 낮춰서 싸게 집어삼키는 게 목적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사회를 하루 앞둔 11월19일 유회원과 마이클 톰슨, 그리고 엘리스 쇼트 론스타펀드 부회장과 스티븐 리 당시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 등이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커피숍에 모여 대책회의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자리에는 외환카드 합병 자문을 맡고 있던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스캇 오(한국 이름 오창민) 전무 등이 배석했다. 검찰은 이들이 이 자리에서 외환은행-외환카드 합병 계획을 발표하는 동시에 외환카드 감자 계획을 흘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날 저녁 스캇 오가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었던 김앤장법률사무소에 보낸 이메일에는 외환은행과 외환카드의 합병 결의 이사회를 다른 날 개최할 경우 법적 문제는 없는지 문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단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합병 결의를 한 뒤 외환카드의 이사회는 최대한 늦춰서 주식 매수 가격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앞서 스캇 오가 11월9일 씨티그룹 동료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보면 이들은 17일을 ‘거사일(crunch day)’로 잡고 있었다.

“외환카드는 11월17일 2000억원의 유동성 부족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외환카드 주가가 계속 내리게 하기 위해서 외환은행은 전혀 외환카드에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외환은행이 공개매수 청구를 하든가 합병을 할 것이다. 이런 절차는 매우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스티븐 리는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으로부터 이를 빨리 추진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오직 하나의 문제는 외환은행 집행부가 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카드의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유동성 지원을 중단시켰다는 이야기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경영진을 따돌린 정황도 드러났다. 실제로 이달용 등이 론스타에 자금 지원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유회원이 반대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외환카드가 1500억원의 해외 신주 인수권부 사채(BW)를 발행하려고 했으나 론스타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 외환카드가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던 건 맞다. 채권 만기와 기업어음 상환 등으로 11월30일이면 3515억원의 자금을 막아야 할 상황인데 카드채 발행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자본잠식은 물론이고 부채가 자산 규모를 1조원 이상 웃돌았다. 이사회를 하루 앞둔 11월19일 기준으로 유동성 보유고가 17억원으로 떨어지고 현금 서비스 거래도 전면 중단되는 등 부도 우려가 확산됐다.

외환은행이 11월14일 금융감독원에 ‘외환카드사 향후 처리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낸 것도 의도된 여론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은행은 이 보고서에는 대주주인 외환은행과 올림푸스캐피탈의 지분을 완전 감자하는 대신 소액주주들은 20 대 1로 감자하는 자본감소 명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감자 후 증자를 하는 조건이었지만 사실상 기존 주주들은 보유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외환은행은 “외환카드가 계속기업으로서의 가치를 거의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 상황을 계속 방치할 경우 채권자는 물론 카드사 회원, 가맹점의 피해는 물론 카드 시장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할 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현재의 주가와 지분율로는 감자 주총이 불가능하므로 금감위의 감자 명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환은행을 감자 명령과 함께 증자 명령과 합병 명령 등을 내려 줄 것을 요청했다.

론스타가 애초에 금감원의 감자 명령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론 조작을 위해 보고서를 올려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여신전문금융법에 따르면 자본감소(감자) 명령은 조정 자기자본 비율이 2% 이하일 때만 가능한데 외환카드는 9월 말 기준으로 이미 10.51%나 됐다. 금감원이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외환은행이 감자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당시 외환카드는 외환은행이 43.9%, 올림푸스캐피탈이 24.7%를 보유하고 있었다. 2대 주주였던 올림푸스캐피탈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했다. 그런데 외환은행은 11월20일 이사회에서 올림푸스캐피탈의 보유 지분 전량을 5030원씩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감자를 할 계획이라면 휴지조각이 될 지분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 이것만 봐도 외환은행(론스타)이 외환카드 감자를 추진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당시 외환은행과 올림푸스캐피탈 사이에 정확히 어떤 거래가 오고갔는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소액 주주들 몰래 1대 주주와 2대 주주의 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지분은 68.6%로 늘어난다.

론스타는 감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감자를 하려면 주주총회를 열어야 하고 그 전에 실사도 해야 한다. 최소 2~3개월이 걸릴 텐데 외환카드는 당장 2~3주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외환은행이 올림푸스캐피털이 보유한 외환카드 지분을 매입한 것 역시 감자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감자를 할 거라면 매입할 이유가 없고 1대주주와 2대주주를 빼고 소액주주들만 감자한다는 것도 받아들여질 리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감자 무효 소송으로 갈 것이고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도자료를 생각하고 계세요?” 11월20일 이사회에서 마이클 톰슨의 말은 실제로 감자까지 갈 건 없고 적당히 언론 플레이만 해도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사회 직후 유회원은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었던 김앤장에 보도자료 작성을 지시했고 다음날 보도자료 배포 이후 이달용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어 감자 계획을 강조하면서 시장을 흔들기 시작한다.

다음은 11월21일 한국경제신문에 보도된 이달용의 발언이다.

“감자 여부는 외환카드의 순자산가치를 따져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감자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산실사와 주총 소집공고 등 필수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감자와 합병에 각각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신문은 “외환카드가 내년 1∼2월 중 감자를 단행하고 3∼4월께 외환은행에 흡수 합병될 전망”이라면서 “감자 수준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큰 폭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노골적인 언론 플레이였고 주주들은 패닉에 빠져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데일리 11월23일자 기사를 보면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외환은행이 외환카드와의 합병을 위해 대규모 감자를 단행할 예정이어서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략) 외환은행은 실사 후 감자비율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최대 20대1의 감자 가능성이 대두되는 등 대규모 감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카드의 주가는 11월10일 7330원에서 이사회가 열렸던 20일에는 4280원까지 떨어졌다가 금요일이었던 21일 장 마감 이후 언론에 감자 계획이 보도된 뒤 월요일인 24일에는 3380원으로, 화요일인 25일에는 2875원으로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26일에도 2550원까지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스캇 오가 11월24일 같은 회사의 샤리아 치스티 등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감자와 새로운 증자를 할 것입니까? 나는 이것은 논외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샤리아 치스티는 “맞다. 감자와 새로운 증자는 논외다”라고 답한다. 이날 저녁 스캇 오가 전용준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이미 감자를 포기한 정황이 확인된다.

“우리는 감자와 증자의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사회 결의가 있기 전에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이 적정해질 때까지 주가를 모니터해야 한다.”

11월25일에는 마이클 톰슨이 스캇 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점점 더 재밌어진다”는 표현을 썼다. 다음날인 11월26일 스캇 오가 스티븐 리와 유회원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합병 비율은 외환카드의 주가가 현저히 내렸기 때문에(오늘은 2600원까지 하락) 법규상의 합병 비율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어제를 기준으로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은 5171원이었으나, 오늘 주가가 11% 하락했기 때문에 가격이 더 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주가를 계속 모니터해서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과 지분 비율이 안정적으로 되거나 론스타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면 외환은행과 외환카드의 이사회를 열어 합병 결의를 하고 합병 비율과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을 고정해야 합니다. 최근 외환카드 주가 폭락 때문에 감자와 증자를 할 만한 특별한 이익이 없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샤리아 치스티는 전용준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감자를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을 바꾼다. 론스타에 보고한 것과 외환은행에 통보한 내용이 달랐다는 이야기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론스타가 외환카드의 주가를 끌어내릴 의도로 감자 계획을 흘렸다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11월20일 이사회에서 ‘시장에 흘린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거론됐고 감자 계획을 발표한 뒤에도 감자를 위한 자산 실사 등을 진행하지 않았다. 합병 자문을 맡은 씨티그룹 역시 아무런 자료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받은 것도 없었다. 언론 플레이만 했을 뿐 시늉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1월20일 감자 계획 발표 이후 외환카드 주가는 1주일 동안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그러나 감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11월27일에는 갑자기 급등했다. 11월26일 2550원이던 주가가 27일 2930원까지 치솟자 론스타는 서둘러 합병 결의를 위한 이사회를 소집한다.

11월27일 마이클 톰슨이 스캇 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은행 측에서 감자 없는 합병 소식을 흘려 외환카드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생각한다. 스티븐 리와 유회원이 가격을 고정하기 위해 내일 합병 결의 이사회를 열기로 결정했다”는 대목이 있다. 주가가 반등하자 통상적인 이사회 소집 기간도 두지 않고 부랴부랴 다음날로 이사회를 소집해 합병 결의를 강행한 것이다. 외환카드는 11월28일 이사회에서 주식 매수 청구권 매수 예정 가격이 4004원으로 결정됐다고 공시하면서 합병 시점을 3개월 뒤인 2004년 2월26일로 확정했다.

만약 감자 계획을 흘리지 않았다면 론스타와 외환은행은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외환카드 지분을 인수했거나 결국 외환카드 인수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 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하면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합병 결의 이사회 하루 전부터 2개월과 1개월, 1주일 전 주가를 거래량 기준으로 각각 가중 평균한 뒤 3으로 나눠 매수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외환은행 입장에서는 최대한 주가가 낮아야 청구권 가격을 낮출 수 있고 합병 비율도 외환은행에 유리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11월9일 스캇 오가 스티븐 리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이 7750원”이라며 “외환카드 주가가 내려가는 걸 한동안 내버려둬야 한다”고 제안한 대목이 있다. 11월24일 스캇 오가 전용준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현재의 청구권 가격은 5700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이클 톰슨이 다음날 “점점 더 재밌어진다”고 이메일을 보낸 것도 이들의 계획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캇 오는 11월26일 스티븐 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어제를 기준으로 청구권 가격이 5171원이었으나 오늘 주가가 11% 하락했기 때문에 가격이 더 내릴 것”이라고 보고한다. 합병 자문을 맡았던 씨티그룹이 정작 감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청구권 가격을 낮추는 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11월27일까지 주가 하락을 방치 또는 유도했고 주가가 바닥을 치자 11월28일에서야 청구권 가격을 4004원으로 확정한다. 3주 동안 청구권 가격이 7750원에서 4004원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난 셈이다.

론스타 주가 조작 사건은 외환카드 합병 이후 3년이 지난 2007년 1월에서야 검찰이 유회원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유회원은 4차례나 구속 영장이 기각됐으나 이듬해인 2008년 1월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해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그해 6월 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풀려났다.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던 건 외환은행이 금감원에 외환카드의 회생 방안 등을 제출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던 중이었고 감자 역시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는 론스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감자 계획이 주가 하락을 부추기긴 했지만 이미 주가가 하락 추세였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대법원은 3년을 끌다가 2011년 3월 유죄 취지로 다시 고등법원으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2011년 11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유회원에게 징역 3년과 벌금 42억9500만원을 선고, 최종 유죄가 확정된다. 론스타코리아에도 벌금 250억원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유회원 등은 감자 없이 합병을 하기로 결정했으면서도 감자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오인 또는 착각을 이용해 계속 주가 하락을 도모하기 위해 그와 같은 정보가 투자자들은 물론 외환은행 집행부에 알려지는 것을 차단하려 했고 감자 없는 합병 방침이 외부에 누설돼 주가가 반등하자 주식 매수 청구권 가격 등을 고정시키기 위해 지체 없이 합병 결의 이사회가 개최되도록 했다”면서 “일련의 행동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감자를 진지하고 성실하게 검토 추진할 의사가 있었더라면 도저히 취하기 어려운 행동들이었다”고 밝혔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003년 11월19일 커피숍 모임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모의된 범행”이라면서 “허위로 감자 계획을 유포하지 않았다면 외환카드 소액주주들에게 추가로로 지급했어야 할 주식 매수 비용 226억원 상당을 지급하지 않아 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11월19일과 11월 27일의 주가 차이 2560원이 허위의 감자 계획으로 인한 주가 손실이라고 본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합병 계획을 프로젝트 스콰이어(Project Squire)라고 불렀다. 스콰이어는 기사(Knight) 밑의 시종을 말한다. 외환은행 매수를 앞두고 벌어졌던 10인 비밀회의를 프로젝트 나이트(Project Knight)라고 불렀던 것을 떠올리면 이 모든 과정이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졌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프로젝트 나이트의 핵심은 10인 회의를 통해 외환은행을 부실금융 기관 등으로 분류해서 은행법 예외 규정을 적용하는 데 있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프로젝트 스콰이어는 프로젝트 나이트의 연장선에 있었으며 애초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부터 외환카드를 헐값에 집어삼키는 게 론스타의 구상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몇 가지 반전이 더 있다. 외환은행에 외환카드 주식을 팔고 떠난 올림푸스캐피탈은 2009년 론스타를 상대로 주가 조작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싱가포르 중재재판소에 중재 신청을 낸다. 이미 국내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유회원 등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싱가포르까지 이 사건을 들고 간 건 국내 여론을 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국내보다 해외가 더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놀라운 사실도 드러났다. 한겨레 2011년 12월29일 보도에 따르면 올림푸스캐피탈은 재판 과정에서 “2003년 11월19일 금융당국이 외환은행과 올림푸스캐피탈을 불러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외환카드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향후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한국 금융 당국이 위협했다”는 주장과 함께 “론스타는 외환카드를 부도나게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는 주장이 인용돼 있다.

싱가포르 중재재판소는 “관련된 모든 자료와 증거물을 종합해 볼 때 대한민국 민법 104조에 의거해 올림푸스캐피탈의 신청을 받아들여 올림푸스캐피탈과 외환은행 사이에 체결된 2003년 외환카드 주식 양도 계약은 무효임을 판결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중회 당시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론스타가 외환카드를 부도 내려고 했기 때문에 카드 사업을 포기하지 말라고 요청하기 위해 론스타를 불렀는데, 론스타가 올림푸스캐피탈 관계자를 데리고 와서 함께 본 것 뿐”이라며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외환카드 지분을 팔고 싶지 않았는데 론스타와 한국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에 손해를 보고 팔았다는 게 올림푸스캐피탈의 주장이다.

결국 중재재판소는 2011년 12월13일 외환은행과 론스타가 연대해 올림푸스캐피탈이 입은 손해에 해당하는 3730만달러를 지급하고 중재비용 48만달러와 소송비용 1172만달러, 지연이자 1492만 달러 등 모두 6443만 달러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론스타는 이듬해인 2012년 2월27일 올림푸스캐피탈에 배상금 전액을 지급했으나 그해 10월17일 외환은행이 배상금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며 싱가포르 중재재판소에 다시 중재신청을 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4년 12월23일, 외환은행이 배상금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론스타에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015년 1월9일 외환은행은 413억원의 구상금을 론스타에 지급했다.

놀라운 일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떠난 게 2012년. 그로부터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다. 무슨 약점을 잡힌 것일까.

중재재판소의 논리는 외환은행의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이 됐든 이사회 차원에서 만장일치로 주식 매수를 결의하는 등 불법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보는 게 맞고 주가 조작에 따른 이익을 챙겼기 때문에 책임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재재판소의 결정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만 더 수상쩍은 건 외환은행의 태도였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주체는 외환은행 이사들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론스타에서 파견됐거나 론스타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국내 법원에서는 론스타에 책임을 물어 유회원 등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외환은행에는 무죄가 선고됐다.

다음은 2011년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문의 한 대목이다.

“유회원 및 엘리스 쇼트, 스티븐 리, 마이클 톰슨을 피고인 외환은행의 대표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유회원 및 엘리스 쇼트, 스티븐 리, 마이클 톰슨이 피고인 외환은행의 대표자임을 전제로 한 피고인 외환은행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분명한 건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 론스타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외환은행은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론스타는 싱가포르까지 사건을 끌고 가 배상금의 절반을 외환은행이 내야 한다는 결정을 끌어냈고 결과적으로 책임이 없는 외환은행이 배상금을 토해내게 됐다.

만약 외환은행이 중재 결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냈을 경우 승소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게 상당수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다. 외국에서 중재 결정이 났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법원이 승인이나 집행을 거부할 수 있고 설령 외환은행에 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외환은행이 당시 론스타가 파견했던 이사들에게 책임을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외환은행은 중재 결정이 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이사회 결의도 없이 론스타에 413억원을 송금했다. 별다른 법적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2011년 12월21일 재경일보는 2010년 11월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론스타가 계약서에 우발채무 면책 조항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재경일보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하나금융지주는 올림푸스캐피탈과 관련된 중재 소송에서 최종 판결로 인해 외환은행이 회사가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 중 500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한 51.02%의 요구에 대해 론스타를 면책하고 책임을 면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참여연대 등은 2015년 6월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등을 은행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 외환은행이 부담할 필요가 없는 구상금을 지급하도록 면책 조항을 넣은 건 당시 대주주였던 론스타에 은행 자산을 무상으로 양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었다. 참여연대는 소장에서 “하나금융지주는 이런 조항을 통해 주식 매수 대금을 절감할 수 있고 론스타는 론스타가 부담해야 할 손해 배상액의 대부분을 외환은행이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절감된 주식 매수 대금에 따른 일부 손해를 보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노동팀 팀장은 “실질적으로는 외환은행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하나금융지주가 김한조 외환은행장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2015년 4월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 불기소 이유는 첫째, 싱가포르 중재재판소의 중재 결정이 외환카드 주가 조작과 무관하며 둘째, 외환은행 이사 전원이 론스타가 파견한 이사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고 저가 매수로 얻은 이익의 귀속 주체가 외환은행이었고 셋째, 자금 집행은 이사회 의결 없이 행장이 전결할 사항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 등이었다.

참여연대는 이에 불복해 항고에 재항고까지 했으나 모두 기각됐고 이 사건과 관련해 처벌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참여연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2003년 11월20일 외환은행 이사회에는 이사 9명 가운데 7명이 참석했는데 이 가운데 엘리스 쇼트와 마이클 톰슨, 유회원, 스티븐 리는 모두 론스타가 선임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이달용은 행장 직무대행, 그리고 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에서 각각 선임한 유희선과 이수길 이사가 있었으나 유희선과 이수길은 “론스타와 동일한 내용의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행사를 포기한다”는 주주 협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유일하게 이달용만 론스타에서 자유로웠지만 실제로 이달용이 론스타에 반대 입장을 낼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날 이사회에서 주가 조작을 공모했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론스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는 이야기다.

참여연대는 “오히려 외환은행의 이러한 태도는 외환은행과 론스타 사이에 이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이면합의가 존재하였던 것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외환은행이 주가 조작의 수혜자라는 사실 역시 외환은행이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었다.

만약 외환은행이 중재 과정에서 이런 주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이런 주장을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당연히 훨씬 더 유리한 국내 법원을 통해 다툴 여지가 충분했다. 구상금 지급이 행장의 전결 사항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론스타 파견 이사들이나 론스타 관계회사들에 손해 배상 청구를 포기한 것은 임무 위배 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항고에 재항고까지 모두 기각시켰다.

결과만 놓고 보면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은 론스타의 유죄가 입증되긴 했지만 론스타는 주가 조작의 과실을 충분히 챙겨서 떠난 뒤고 엉뚱하게도 외환은행이 그 뒤치다꺼리를 떠맡은 셈이 됐다.

(주가 조작 사건이 외환은행 매각의 발목을 잡았다가 결국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격으로 끝난 것에 대해서는 다음 챕터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