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남의 나라 이야기, 한국 언론엔 희망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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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MA 총회 후기] 공적 플랫폼 구축,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위한 논의 시작해야.

“저널리즘 생태계에 불어닥친 ‘퍼펙트 스톰’.”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센터에서 열린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세계 총회에 참석했다. 지난 기사에서 나는 “올해 INMA 총회는 혼란과 불안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강한 자신감과 기대와 희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썼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혼란과 불안, 자신감과 기대와 희망에 대해 핵심을 각각 짚어보고 한국 언론에 주는 시사점을 이야기한다.

자신감의 첫 번째 근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한국도 지난 탄핵과 대통령 선거 국면에 뉴스 소비가 폭발했다. 트럼프가 계속해서 대형 사고를 치고 주류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매도하자 뉴스 구독이 급증했다. 저널리즘의 가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때 빛을 발한다. 지난 9일 ‘워싱턴의 슈퍼볼’이라고 불렸던 제임스 코미 전 FBI 연방수사국 국장의 상원 청문회는 이른 아침부터 2000만명 가까이 ‘본방 사수’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신감의 두 번째 근거는 독자들의 뉴스 소비 패턴 변화다. 독자들이 진짜 뉴스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당선 이후 석 달 동안 디지털 구독자가 27만6000명이나 늘었다. 세계적으로 콘텐츠 유료화 성공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노르웨이의 쉽스테드는 다이내믹 페이월이라는 진화된 형태의 유료화 모델을 선보였다. 스포티파이와 넷플릭스 등으로 유료 결제에 익숙한 20대들이 뉴스 시장에 새로 진입하고 있는 것도 희망적인 신호다.

자신감의 세 번째 근거는 네이티브 광고의 발견이다. 지금까지는 광고주들이 신문의 지면과 방송의 시간을 구입해서 메시지를 집어넣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독자들도 광고주들도 그런 광고를 원하지 않는다. 미디어 기업이 직접 기업에 메시지를 제안하고 스토리텔링을 기획해서 판매하는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미디어 기업이 가장 잘 하는 일이고 그나마 경쟁력 있는 분야다. 물론 취재·편집과 마케팅의 방화벽은 필수다.

그런가 하면 혼란과 불안 첫 번째는 콘텐츠 패키지의 해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많은 독자들이 구글에 들어가 이슈를 검색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이 추천하는 뉴스를 본다. 독자들의 브랜드 로열티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고정 방문자를 확보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전통적인 광고 시장이 급격히 꺼지고 있는 것은 공짜 뉴스를 보면서 기업 광고를 함께 보는 연결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광고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혼란과 불안 두 번째는 유통 플랫폼의 변화다.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은 기본이고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플립보드, 핀터레스트, 그리고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과 구글 AMP(Accelerated Mobile Page)까지 새로운 플랫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왓츠앱과 페이스북 메신저, 아마존 알렉사까지 새로운 문법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떠나는 독자들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10대 독자들을 이해하려면 스냅챗도 공부해야 한다.

혼란과 불안 세 번째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복점(duopoly)과 기술 격차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음성인식 등등 온갖 기술이 쏟아지고 있지만 개별 미디어 기업 차원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좋은 뉴스를 만들어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다. 뉴스의 유통 경로를 구글과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복점은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미디어 기업의 종속도 심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대와 희망 첫 번째는 독자 데이터 분석이다. 과거에는 페이지 뷰 이외의 별 다른 지표가 없었지만 이제 많은 미디어 기업들이 홈페이지에 트래킹 분석 툴을 달고 독자들의 움직임을 좇고 있다. 불특정 다수 독자들을 위한 모든 걸 다 담는 뉴스 편집이 아니라 각각의 독자의 선호와 필요에 맞는 기사를 노출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독자의 행동을 추측하지 마라. 분석하고 예측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라.

기대와 희망 두 번째는 분산 플랫폼 전략이다. 독자들은 떠난 게 아니라 흩어져 있을 뿐이다. 동일한 메시지라도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최적의 스토리텔링을 고민해야 한다. 많은 언론사들이 여전히 모바일 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스페인의 엘빠이스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형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스캔 코드를 찍으면 대화가 시작된다. 쿼츠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다시 발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독자가 20만명이 넘는다.

기대와 희망 세 번째는 수익 다각화다. 이제 어느 신문사도 신문만 팔지 않고 어느 방송사도 방송만 팔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낱말 풀이를 유료화한 데 이어 음식 레시피도 유료화했다. 지난해부터 음식 재료를 배달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 기업들이 가장 잘 하는 건 역시 스토리텔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브랜드 스튜디오를 만들어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 판매하고 있고 쿼츠는 조만간 리서치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 상황에서는 자신감과 기대, 희망이 모두 남의 나라 일이다. 지난해 공개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언론사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는 비율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일본은 12%, 한국은 13%다. 소셜 미디어와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볼 때 뉴스의 브랜드를 인지한다는 비율은 각각 24%와 23%로 일본 보다 더 낮았다. 26개국 가운데 소셜 미디어와 포털 사이트 의존도가 가장 높고 브랜드 로열티는 가장 낮았다.

한국에서 혁신이 안 되는 이유 세 가지는 모두 포털에 있다. 첫째, 포털에 가면 공짜 뉴스가 널려 있는데 누가 언론사 사이트에 찾아와서 돈을 내고 뉴스를 볼까. 일부 언론사들이 회원제 프리미엄 콘텐츠를 내놓았지만 기업 강매 모델로 전락했다. 둘째, 독자의 대부분이 포털에 있는 이상 독자 데이터 분석도 맞춤형 뉴스 편집도 큰 실효성이 없다. 셋째, 브랜드 로열티가 없는데 네이티브 광고가 먹힐 리 만무하다. 직접 방문 비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도 문제지만 지금 읽고 있는 기사가 어느 언론사의 기사인지 관심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독자들에게 브랜드를 알릴 기회 조차 없다. 뉴스가 맥락을 잃고 링크 단위로 떠돈다. 생산하는 모든 기사를 포털에 공급하지만 정작 우리 기사를 누가 얼마나 읽는지에 대한 아무런 데이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독자 분석도 맞춤형 콘텐츠 전략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포털 탓만 할 수도 없지만 포털의 공짜 뉴스가 아니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해외의 언론사들도 콘텐츠 패키지의 해체와 플랫폼 종속, 브랜드 로열티 약화 등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지만 그 어느 나라에도 한국의 네이버와 다음처럼 주요 언론사들 뉴스 콘텐츠를 통째로 사들여 무료로 푸는 포털 사이트는 없다. 이번 INMA 총회를 취재하면서 한국 저널리즘 생태계의 가장 큰 위험과 한계가 포털의 공짜 뉴스 때문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됐다.

많은 언론사들이 네이버와 다음에서 상당한 금액의 콘텐츠 전재료를 받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문제지만 10년 뒤 20년 뒤 한국 언론 생태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독자들은 계속 떠날 것이고 브랜드 로열티는 갈수록 더 낮아질 것이고 포털 의존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콘텐츠 유료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고 그나마 남아있는 비즈니스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포털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건 한국 언론의 오래된 레퍼토리였다. 2004년에 스포츠 신문들이 집단 탈퇴해 파란닷컴으로 옮겨갔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모바일만은 포털에 내줄 수 없다며 모바일 계약을 맺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2014년에서야 들어왔다. 2013년에는 연합뉴스가 포털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끓어오르기도 했다. 공짜 뉴스를 중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래됐지만 한 번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번 INMA 총회 취재에 함께 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오세욱 연구위원은 “포털에서 독립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의 콘텐츠 환경에서는 미디어 산업이 동반 몰락하는 시나리오를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 연구위원은 “단순히 전재료를 올려받는 걸로는 해법이 될 수 없다”면서 “당장은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 정도의 독자 데이터를 공개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저널리즘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디지털 파괴(distruption)의 물결이 모든 산업을 강타하고 있다. 미디어 기업과 독자들의 연결 고리가 끊겼고 광고 시장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저널리즘의 붕괴를 방치한다면 일부 독립 언론과 극단적인 상업 신문만 살아남고 상당수 언론사들이 문을 닫거나 원치 않은 타협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네이버와 다음은 공적 플랫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조중동 등 일부 언론이 일방적으로 네이버를 공격했던 것과는 다르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떠나 사회적 차원에서 공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과 포털과 언론의 관계 재정립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은 개별 언론사 차원의 행동도 쉽지 않고 일부 언론사들이 집단 탈퇴나 전재료 조정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더 늦기 전에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이사·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