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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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니까 하루 한시간 남짓 책 읽을 시간이 된다. 몇일 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상권과 하권을 사흘만에 읽었다.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그만큼 열심히 읽었지만 읽고 난 다음 돌아보니 별다른 울림이 없다. 하루키의 책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요즘은 들고 다니면서 볼만한 책이 별로 없다. 그래서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다시 읽고 있다. 흔들리는 전철에서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지만 그렇게 아무렇게나 펼쳐 읽어도 늘 새롭고 힘이 넘쳐난다.

“치열한 싸움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열정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일부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을 피할 수 없다. 한 개인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일부인 것이다.”

나는 스콧 니어링의 굳은 신념이 부럽다. 막연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옳다고 확고하게 믿는 것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몇차례에 걸쳐서 지금 읽고 있는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비롯해,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소박한 밥상’ 등을 읽고 몇 부분을 더 발췌한 다음 총평을 쓰기로 하겠다.

아래 사진은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직접 지은 돌 벽돌 집 앞에서 플루트를 불고 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다.


나는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 / 스콧 니어링.

나는 인간에게 최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 차원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협동적 사회유형을 계획하고 건설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사회적 관계는 각 개인의 성격과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진보는 그 구성원 모두를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따라서 어느 공동체에서나 사회를 의식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최우선 과제다. 나는 사회주의라는 사회적 변화가 인간의 행복과 안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회주의자로서 나는 공동체 전체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제의 부분들은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간선도로, 우체국, 학교, 보안림 등은 공익을 위해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철도, 전화, 전력, 공장, 석유, 광물 같은 공동사업들은 인민이 소유하고 인민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

둘째, 미국의 대기업가들은 정치권력에 의지해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공동생산기술에서 기인하는 막대한 이윤을 누린다. 자본주의 국가를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윤 추구자들의 왕국은 사회적 생산기구들, 광산과 공장, 철도, 그리고 대량 유통의 수단들을 사회가 소유하고 관리할 때만 청산될 수 있다.

내가 사회주의자가 된 세번째 이유는 사회학적인 것이다. 개인주의적인 사기업 사회는 19세기 내내 경쟁을 부추겨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사회는 전쟁이라는 가장 차원 높은 경쟁을 통해 파괴와 살인이라는 끔찍한 수확물을 거둬들였다.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협동을 사회적 사고와 행동의 중심에 두고 경쟁을 효과적인 협동을 위한 하나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정책의 급반전 없이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경쟁을 협동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회주의에 찬성하는 네번째 이유는 인생의 참된 목적과 관련이 있다. 이것을 윤리적 이유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은 왜 지구상에 존재하는가. 인간이 자신의 숙명을 다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목적을 따져보기 위해서 인생의 주된 목표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가능한 한 자신의 숙명에 순응하며 살고 동료들에게도 자기와 똑같은 기회가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시각을 예술과 학문의 발전에 적용시켜 보면 간단한 노동공식이 도출된다.

1. 육신을 위한 의식주는 표현과 개발과 창조를 위한 노력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하다.

2. 따라서 사회는 현재 도로, 가로등, 도서관, 공원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생활에 필요한 것, 의식주와 교육, 의료 서비스를 제공토록 한다.

3. 각 개인에게는 자신이 소비하는 물자와 서비스를 스스로 처리하고 노인, 병자, 어린이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일상적인 노동을 하게 한다. 그러는 한편 개인에게 표현, 개발, 개선과 창조라는 자신의 주요 과제에 주된 에너지를 집중하게 한다.

이 방식을 따른다면 삶의 무게 중심이 재화를 얻는 것에서 창조적인 활동으로 옮겨갈 것이며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인 투쟁, 지금 서구 세계의 심장을 좀 먹어 들어가고 있는 투쟁이 서로 도우며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협동적인 노력으로 억제될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자신의 생활방식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게 될 결정에 주기적으로 직면해 왔다. 식인 풍습을 버리기로 한 결정이나 노예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 등이 바로 그런 성격을 띄고 있었다. 착취를 일삼지 않겠다는 결정도 앞의 두가지 결정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결정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는 토지와 광산, 공장 같은 것들의 개인 소유와 타인의 노동이 제공하는 임대료, 이자, 배당금으로 나태한 기생생활을 할 수 있는 개인 소유자의 권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비윤리적이며 불공평하다. 또한 지난 반세기 동안의 공황과 전쟁이 분명하게 말해주듯이 이런 시스템은 백해 무익하다.

만약 서구 문명이 살아남는다면 서구 문명은 한사람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한사람을 위하는 협동의 기반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업들을 반드시 공동체가 소유하고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물자와 서비스는 그것이 부족할 때는 공정하게 배급돼야 하고 풍족할 때는 사회질서의 기본원칙에 따라 각 개인에게 필요한만큼 아낌없이 제공돼야 한다.

‘나를 위한 나의 것’이라는 사기업의 공식 아래서 성장한 사람들은 ‘우리를 위한 우리의 것’이라는 사회주의 공식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런 장애를 넘어 나는 인류가 개인 경영에서 집단 경영으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큰 발걸음을 내딛을 때가 왔다고 본다.

세계 여러곳에서는 일부러 이런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북아메리카 사람들은 기술적으로는 이런 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것에 반대하고 있다.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고 있는 북아메리카의 완고한 반동주의자들이 공황과 군비 지출, 전쟁 참화라는 황폐함과 부정에서 깨어 사회주의를 채택한 성난 인민 대중에게 외면당할 때 인류는 행복해질 것이다.

스콧 니어링 자서전. 실천문학사. 244~2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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