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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혁신, 한국 언론은 준비돼 있습니까.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8, 2017

[INMA 총회] 저널리즘 생태계에 불어닥친 ‘퍼펙트 스톰’…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독자 분석에 미디어의 미래가 있다.”

“‘퍼펙트 스톰’이 뉴스 생태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Perfect storm is changing news ecosystem).” 얼 윌킨슨(Earl J. Wilkinson) 국제뉴스미디어협회 최고경영자(CEO).

“주저하지 마세요. 빨간 약을 먹어야 할 때입니다(Don’t wait to act. It’s time to take the red pill).” 에이미 웹(Amy Webb) 퓨처투데이인스티튜트 설립자.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You have to think differently).” 마크 톰슨(Mark Thompson) 뉴욕타임스 회장.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세계 총회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 규모 미디어 컨퍼런스다. 세계신문협회(WAN)가 주최하는 세계편집인포럼(WEF)이 저널리즘과 콘텐츠 이슈에 집중한다면 INMA 총회는 상대적으로 미디어 비즈니스와 전략에 무게를 둔다.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센터에서 열린 올해 INMA 총회는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언론사와 페이스북과 구글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 42개국 428명이 참석했다.

올해 INMA 총회의 최대 화두는 여전히 혁신, 특히 생존을 위한 혁신이었다. 전통적인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 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확장된 플랫폼에 맞춰 콘텐츠 문법도 달라졌고 독자들도 달라졌다. 뉴스 생태계에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이 급습하고 있다. 올해 INMA 총회는 이른바 ‘뉴 노멀(New Nomal, 새로운 질서)’ 시대를 맞아 혼란과 불안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강한 자신감과 기대와 희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마크 톰슨 뉴욕타임스 회장은 총회 마지막 날 기획 대담에서 “디지털 뉴스 구독자를 200만명에서 1000만명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독자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종이신문 구독자가 100만명, 낱말풀이 유료 구독자도 30만명에 이른다. 마크 톰슨은 “웹 사이트 순 방문자가 월 1억5000만명에 이르기 때문에 유료 구독 1000만명은 완전히 현실적인 목표”라면서 “나는 이것이 우리가 갖춰야할 야망과 규모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크 톰슨은 영국 BBC 출신으로 1979년 입사해 보도 프로그램 편집장과 사업본부 본부장 등을 지내고 2004년부터 2012년까지 12년 동안 BBC 사장을 지낸 뒤 뉴욕타임스로 옮겨왔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타임스는 망해가고 있다”고 말하자 CNBC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조차 가짜 뉴스에 현혹돼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뉴욕타임즈는 망해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구독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2013년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이후 뉴욕타임스는 실험을 거듭해 왔다. 마크 톰슨은 “계속해서 독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는 게 핵심 전략”이라면서 “우리가 모델을 수정하지 않고 1주일 이상 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에 뉴욕타임스는 페이월(paywall, 지불장벽)을 없애고 모든 기사를 무료로 돌렸다. 선거가 끝나고 다시 페이월을 세우자 유료 구독이 급증했다.

얼 윌킨슨은 “카오스 속에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짜 뉴스 논란이 촉발되면서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늘어나고 똑똑한 독자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여전히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거대 플랫폼에 종속돼 있지만 많은 언론사들이 데이터 분석을 강화하면서 독자들과 관계를 고민하고 독자 기반(audience-based) 회사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 구독이 늘고 네이티브 광고 시장이 성장하고 거부감이 줄어드는 것도 중요한 신호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당선 이후 석 달 동안 디지털 유료 구독이 27만6000명 늘었는데 이는 2015년 한 해 구독자 증가에 맞먹는 규모다. 뉴욕타임스 외에도 트럼프 당선의 반사 이익을 본 언론사들이 꽤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선 다음날 평소보다 세 배 이상 가입자가 늘어났고 베니티페어도 하루만에 1만3000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얼 윌킨슨이 “트럼프가 저널리즘의 구원자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여러 언론사들의 고민의 층위는 복잡다단했지만 공통의 문제의식은 독자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2005년을 고점으로 찍고 광고가 급감하고 있는데 구독은 완만하게 늘어 2010년에는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앞질렀다. 마크 톰슨이 “뉴욕타임스의 종이신문 광고 매출을 0달러로 만드는 게 전략”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은 디지털 혁신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 톰슨은 “뉴스는 관계 비즈니스”라고 거듭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 출생)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불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1965~1976년 출생)와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인터넷 초창기를 지낸 X세대는 콘텐츠는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하지만 스포티파이나 넷플릭스 등과 함께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익숙합니다.”

홍콩의 영자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해 11월 소셜 뉴스 서비스 딕(digg)의 CEO, 게리 리우(Gary Liu)를 CEO로 영입했다. 언론사 경력이 전혀 없는 데다 33세의 젊은 나이라는 것도 화제가 됐다. 114년 역사를 자랑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해 4월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에 2억6200만달러에 인수됐다. 게리 리우를 전격 영입한 것은 레거시 미디어의 관성을 깨고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게리 리우는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을 독자 데이터 분석에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데이터 시스템은 콘텐츠를 단어와 문장, 서술 구조까지 수집하는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과 독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추적하는 데이터 웨어하우스(DWH), 신문사 외부에서 이용자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이터 관리 플랫폼(DMP) 등으로 구분된다.

게리 리우는 독자가 아니라 이용자(user)라는 표현을 고수했다.

“우리 이용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내서 이들이 찾는 콘텐츠를 정확히 전달해 주는 것은 더 이상 편집자들의 일이 아닙니다. 알고리즘 속 기계가 할 일이죠. 이용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 파악해서 리얼타임으로 제공하고 광고주들에게도 잠재적인 소비자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광고를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광고주들도 돌아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딕에 있을 때 저는 영어로 된 콘텐츠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날마다 700만 건의 콘텐츠가 쏟아집니다. 콘텐츠의 인기도 뿐만 아니라 퀄리티까지 반영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우리 소비자들이 세계 어디에 있든 여러 다른 채널을 통해서 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것이 바로 우리 뉴스 기업들이 노력해야 하는 자연어 처리입니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는 바이럴을 일으키기 쉬운 기사를 선택하는 데 머신러닝 기법을 도입했다. 어떤 기사가 일본에서 많이 읽히고 있다든가 지금 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띄우면 많이 읽힐 것 같다든가 하는 메시지를 슬랙 봇으로 편집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로라 에반스(Laura Evans) 데이터 담당 부사장은 “우리 전략은 데이터에 대한 효율적인 접근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데이빗 호(David Ho) 허스트 부사장은 모바일 퍼스트 전략을 위해 철저하게 사용자 관점에서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는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뉴스와 넷플릭스, 뉴스와 포켓몬고, 우리는 전쟁에서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만드는 뉴스의 대부분이 종이조각이든 어떤 종류의 스크린이든 결국 평평한 2차원 표면에 갇혀 있습니다. 차원을 넘어서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dimensional storytelling).”

“뉴스는 경험이고 디바이스는 기사의 한 부분”이라는 지적도 중요하다. 데이빗 호는 “뉴스 알림(notification)은 미래의 뉴스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뉴스 앱은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며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모바일은 짧다는 것도 잘못된 종교”라고 지적했다.

“지하철에서 보셨습니까?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필요를 채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짧은 콘텐츠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긴 경험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마크 톰슨은 “디지털이 우리의 목적지가 돼야 한다”면서 “디지털 구독이 우리의 미래라면 모바일이 드라이버”라고 강조했다. 플랫폼 전략에서도 다른 언론사들보다 훨씬 여유있는 태도를 보였다. INMA에 참석한 많은 언론사 경영자들이 구글과 페이스북 등에 강한 적개심을 보인 것과 달리 톰슨은 “플랫폼과 파트너십을 가져가는 건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면서 “나는 그들이 인터넷의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INMA 총회에서는 페이스북과 구글의 ‘복점(monypoly가 아니라 duopoly)’이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됐다. 두 회사가 콘텐츠 플랫폼을 완전히 독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구글 검색을 타고 들어온 독자들에게 유료 기사를 무료로 보여주는 퍼스트 클릭 프리(first click free)를 허용했으나 최근 차단했다. 구글 AMP(Accelerated Mobile Pages)는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은 평가가 엇갈렸다.

현실적으로 구글과 페이스북이 엄청난 페이지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플랫폼 종속은 장기적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잠식하고 콘텐츠 유료화에 걸림돌이 되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의 권력 격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INMA 총회에서도 구글과 페이스북 관계자들 발표에서는 일부 참석자들의 탄식과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에이미 웹은 뉴스가 배포(distribution) 모델에서 발견(discovery) 모델로 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까지는 상품(뉴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인지도와 신뢰, 그리고 거의 절대적인 통제가 가능했죠. 그러나 이제는 발행하기만 할 뿐 배포는 플랫폼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상품의 인지도는 낮고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상품이 너무 많고 넘쳐나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주도권이 테크 거인들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이클 프라이덴버그(Michael Friedenberg) IDG CEO는 “해마다 디지털 공간에서 늘어나는 미국에서만 830억 달러 규모의 수익은 99%가 구글과 페이스북, 두 회사로 간다”면서 “광고 수입에만 의존하는 대부분의 미디어 기업은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의자와도 같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프라이덴버그는 “데이터가 새로운 세계의 기축 통화가 될 것”이라면서 “미디어 기업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독자들을 좀 더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미 웹에 따르면 아마존 에코와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는 이제 첫 발을 뗀 단계다. 2021년이 되면 산업화 국가의 인구 50%가 음성으로 컴퓨터와 소통하게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어떤 뉴스를 불러올 것인지, 어떤 뉴스를 버리거나 선택할 것인지를 구글이나 아마존이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기계와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겁니다. 우리 미디어 기업들은 머신러닝 시대를 맞아 진화하고 있습니까.”

에이미 웹은 “미디어 기업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열고 있는 IBM과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그리고 아마존”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우리가 뉴스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터넷보다 훨씬 강력한 변화를 불러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뉴스 기업들 중에 인공지능의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곳이 있나요? 거의 없죠.”

텔리스 테세이라(Thales Teixeira)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디지털 파괴(distruption)의 물결에 맞서 리커플링(recoupling)과 리밸런싱(rebalancing)을 전략으로 제안했다. 디지털 파괴는 상품 판매의 패키지를 해체하고(Unbundling) 판매자와 소비자를 잇는 중개자를 건너 뛰고(disintermediation) 상품의 검색과 구매, 소비, 평가의 모든 과정을 분리한다(Unbundling). 약한 고리를 찾고 끊긴 고리를 다시 연결하는 게 디지털 파괴에 맞서는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신문을 펼쳐들면 당연히 기사도 읽고 지역 광고도 보고 레스토랑 리뷰도 읽었지만 이제는 뉴스는 구글에서 읽고, 지역 광고는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 List)가 대체하고 있다. 레스토랑 리뷰는 옐프(Yelp)에서 읽는다. 언번들링은 모든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EMI는 애플 아이튠즈에, 맥그로힐은 아마존 킨들에, HBO는 넷플릭스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공짜 방송과 광고의 연결고리를 끊은 건 티보(Tivo)와 에어리오(Aereo) 같은 신생 기업들이었다.

자동차 시장은 어떤가. 과거에는 차를 사고 운전하고 유지·보수하는 각각의 단계가 연결돼 있었지만 튜로(turo) 같은 회사들이 나타나면서 급격히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다. 직접 운전하려면 집카(Zipcar),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려면 우버(Uber)나 리프트(lyft), 그리고 카풀 서비스인 블라블라카(BlaBlaCar) 같은 업체도 있다. 화장품 시장에서는 샘플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버치박스(BirchBox) 같은 기업들이 평가와 선택의 연결고리를 끊고 있다.

텔리스 테세이라는 “리커플링보다는 리밸런싱이 지속가능한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셀리악서프라이라는 회사는 매장에서 제품을 고르고 정작 구매는 아마존에서 하는 손님들이 늘어나자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문을 닫았다. 가전제품 매장 베스트바이는 삼성전자와 제휴해 제품을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해주는 대가로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셀리악서플라이가 리커플링이라면 베스트바이는 리밸런싱의 사례다.

미디어 산업의 리커플링 또는 리밸런싱 전략은 뭘까. 월 윌킨슨은 “확고한 콘텐츠 기반 없이 밝고 빛나는 테크놀로지 유행을 쫓는 건 스탠드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데이터가 없는 지불장벽과 아날로그 마인드로 밀어붙이는 디지털 전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독자들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기사를 만드는데 조직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까?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원하는지 파악이나 하고 있습니까?”

광고 시장도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독자 수가 광고 효과를 의미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우리 고객인 시스코는 지구적 차원의 커다란 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 문제를 시스코 같은 전문가가 해결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텍스트 대신에 13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했고 굉장히 만족해 했습니다.”

에이미 크레이머(Amy Marks Kramer) 블룸버그 글로벌마케팅팀 팀장의 이야기다.

어떤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언론이 거꾸로 광고주들에게 제안을 던지고 콘텐츠를 제작해서 공급하고 그 광고 효과까지 입증해야 하는 시대다. 시한부 환자가 이식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다룬 “Day Zero(예정일)”라는 단편 영화는 오프텀(Optum)이라는 보험회사를 위해 블룸버그가 만든 네이티브 광고였다. 직접적으로 기업 홍보를 하지 않으면서 기업의 전달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저널리즘 문법으로 담아내는 방식이다.

헤일리 로머(Hayley Romer) 아틀란틱 부사장은 “네이티브 애드는 포맷이 아니라 감성(sensibility)”이라고 설명했다. 헤일리 로머는 “독자들은 참여하고 관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독자들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미 크레이머는 “수많은 스토리텔링 방식이 있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의 브랜드가 기본에 충실해야 진정한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크 릿손(Mark Ritson) 호주 멜버른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에 따르면 광고 예산의 15%를 광고 대행사가 콘트롤하고 85%는 광고주가 직접 배분한다. 마크 릿손은 “사회적 영향력과 저널리즘에 대한 필요, 가짜 뉴스와의 전쟁 등은 광고주가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서 “광고주들이 뭘 원하는가 추측하지 말고 직접 묻고 그들이 원하는 걸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이 바뀌었다. 시니컬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보라는 의미의 조언이었다.

마크 릿손은 “라이벌의 게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면서 “당신들의 유일한 자산인 저널리즘으로 구글과 페이스북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이미 웹은 “애플이 블랙베리를 짓밟았던 걸 돌아보라”면서 “미디어 산업도 블랙베리의 몰락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에이미 웹은 “비영리 저널리즘 컨소시엄이 트위터를 매입해서 21세기 로이터나 AP통신 같은 공적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토마스 피터슨 (Thomas Peterssohn) HSS미디어 CEO가 소개한 핀란드의 스트로슬(Strossle)이라는 대안 플랫폼도 주목할 만한 사례였다. 80개 언론사들이 제휴 관계를 맺고 뉴스 사이트의 사이드 바에 다른 언론사의 기사 목록을 노출 시키는 방식이다. 기사를 클릭하면 스트로슬 사이트로 넘어가 기사 목록을 볼 수 있고 여기서 클릭하면 다른 언론사 사이트로 넘어간다. 스트로슬은 월 평균 10억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다.

울릭 하게룹 (Ulrik Haagerup)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 창업자는 ‘기회의 뉴스’를 저널리즘의 대안으로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부정적인 뉴스는 무관심을 만들고 사람들은 공개 토론에서 이탈하게 합니다. 우리는 저널리즘이 현실과 현실의 인식 사이의 필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입니다. 속보와 탐사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건설적인(constructive) 뉴스, 기회에 대한 뉴스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지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건 오래된 신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뉴스를 원한다는 잘못된 믿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뉴스에 익사할 지경이죠. 누가 더 빨리 보도하느냐, 누가 더 호되게 비판하느냐의 경쟁을 멈출 때, 대안과 해법을 이야기할 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올해 INMA 총회가 남긴 중요한 교훈은 뉴스도 이제 장치 산업(process industry)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 산업은 ICT 산업 가운데 가장 늦게 변화에 맞닥뜨렸지만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독자 데이터 분석과 콘텐츠 최적화가 아니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얼 윌킨슨은 “우리의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저널리즘인가? 광고인가? 독자인가? 이익인가? 영향력인가? 이에 대한 답변에 따라 전략도 달라질 것입니다.”

얼 윌킨슨은 결론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질서있는 퇴각을 위한 솔직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광고 비즈니스가 아니라 독자 비즈니스로 전환해야 합니다. 둘째,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 합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데이터에 투자해야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독자를 이해해야 합니다. 독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최고독자담당자(Chief Audience Officer)로 두고 각각의 플랫폼에 따라 독자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콘텐츠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사흘 동안 90여명의 발표자들이 빛나는 인사이트를 쏟아냈지만 공통된 문제의식은 미디어 기업이 독자 비즈니스로, 그리고 기술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분석에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따라잡는 기업이 뉴노멀 시대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 미디어 산업은 가장 늦게 변화를 맞닥뜨렸지만 가장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기대와 희망의 이면에 혼란과 불안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은 이런 변화가 낡은 관행의 타파와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뉴스를 쏟아내는 것만으로 독자를 붙잡을 수도 없고 광고주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플랫폼이 달라졌고 독자들도 달라졌다. 뉴스의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비관하기에는 이르다.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전면적인 혁신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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