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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철수’의 ‘철수정치’, 분열의 덫에 갇히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5, 2015

안철수는 본인의 표현대로 광야에 섰다. 다시 광야에 섰는지는 의문이다. 안철수의 짧은 정치 인생은 늘 순탄했다.


안철수는 2009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2030세대의 멘토로 떠오른 데 이어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 막판에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기는 했지만 정치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대권까지 넘볼 정도가 됐다. 2012년 대선 막판에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하고 물러났지만 이듬해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에 무혈 입성하다시피 정치권에 입문해 신당 창당을 추진하다 돌연 민주통합당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키고 공동 대표까지 지냈다. 안철수는 깔아놓은 판에 올라섰을 뿐 한 번도 광야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

13일 안철수의 기자회견에서는 안철수의 자기 확신과 합리화가 어느 수준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등장했다.

“이대로 가면 총선은 물론 정권 교체의 희망이 없다”는 현실 인식은 정확하다. 다만 “머물러 안주하려는 힘은 너무도 강했다”거나 “저의 부족함과 책임감을 통감한다”는 대목에서 안철수가 여전히 안철수 자신을 정치개혁의 주역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은 최선을 다 했는데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너무 커서 실패했다는 의미다.

안철수에게 개혁과 쇄신의 대상은 언제나 안철수를 뺀 나머지다. 혁신을 해야 한다고만 외칠 뿐 뭘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말하지 않는 안철수의 화법은 기성 정치에 발을 담근 뒤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안철수는 낡은 정치와 새 정치의 이분법 구도를 세워놓고 스스로를 실패한 혁명가로, 고난받는 메시아로 포장했다.

지지율이 40%를 웃돌던 시절에는 안철수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고 안철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강한 울림을 가졌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안철수의 추락은 안철수가 자초한 것이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여전히 거물급 정치인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안철수가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건 안철수가 말하는 변화와 혁신이 무엇인지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된 적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말한 혁신 가운데 그나마 드러난 것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지방의원 정당 공천 폐지 정도였는데 둘 다 근본적인 혁신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회의원 정수는 축소가 아니라 비례대표 확대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고 의석 수를 늘리고 특혜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의원 공천 폐지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폐해를 해결하는 대안이라는 주장과 자칫 지역 토호에게 장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지방 의회 역시 비례대표를 늘리고 여성 할당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나마 지난해 4월,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등을 핑계로 기초선거 무공천 입장을 최종 번복했다.

안철수는 짧은 정치 인생을 통틀어 당내 주도권 투쟁에 올인해 왔다. 무소속으로 당선돼 신당을 창당한다고 바람을 잡더니 돌연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해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재보궐 선거에 참패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비주류로 밀려난 뒤에는 끊임없이 문재인 체제를 흔들었다. 혁신위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거부했고 엉뚱하게 혁신안을 들고 와서 요구했다가 문재인에게 재신임을 묻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문재인이 제안한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고 혁신 전대를 요구했다. 전당대회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상황을 단순화한 것도 문제지만 고질적인 친노-반노의 구도를 악용해 지도부를 흔드는 것도 꼴 사납다는 평가 이상을 받기 어렵다.

안철수의 혁신안은 대법원 확정 이전이라도 부패에 연루된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등의 일부 파격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자칫 검찰에 공천권을 줄 수 있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낡은 진보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나치게 모호하고 공허했다.

안철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치 혐오주의의 절정에서 메시아처럼 등장했지만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고 우유부단한 데다 포기도 너무 빨랐다.

대선 때는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고도 지원 유세에 뜨뜻미지근했고 투표 당일 훌쩍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신당 창당을 접고 민주통합당과 합병하는 과정도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대선 출마 여부를 두고 한참 뜸을 들이기도 했고 이번에 탈당 과정에서도 수차례 언론에 밑밥을 던지면서 여론을 떠보는 발언을 내놓았다.

안철수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고 더 나은 정치,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동안 세월호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노동개악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의견을 내놓은 적이 없다. 거리에 나선 적도 없다.

안철수는 기자회견에서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비상한 각오와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거듭거듭 간절하게 호소했다”고 말했지만 이대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가야 한다고 밝힌 적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안철수는 정치에 발을 담근 뒤에도 정치를 정치로 풀지 않고 비슷비슷한 선언과 구호를 반복했다.

안철수라는 이름만으로 새로운 정치를 꿈꾸게 했던 4~5년 전과는 상황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안철수가 ‘간철수’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얻게 된 건 뭔가를 보여줘야 할 타이밍을 한참 놓쳤기 때문이다. 보여주지 않는 게 아니라 보여줄 게 없는 것 아니냐는 확신이 굳어진 지 오래다.

안철수는 이제 광야에 섰다. 안철수를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주류 몇몇은 탈당을 하고 신당 창당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안철수가 떠난 당과 안철수가 만들 당 모두 분열의 후유증을 오래 치를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게 안철수의 마지막 호소였지만 “이렇게 가도 안 된다”는 게 안철수의 철수정치를 보는 상당수 국민들의 심정이다. 안철수는 광야에서 한동안 또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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