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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필 언론상 수상 소감.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21, 2015

우리는 모두 안종필입니다.
미디어오늘 안종필자유언론상 수상 소감.

안종필 선생님은 평생을 언론인으로 사셨습니다.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구속됐던 1978년 재판에서 “자유언론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썩고 미치고 만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잠깐 타의에 의해 현장에서 강제로 물러나 있을 뿐, 기자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던 선생님은 말씀하신대로 평생 기자로 사시다 기자로 돌아가셨습니다.

안종필 선생님은 “새 시대가 오면 국민들이 주인이 되는 신문사를 세워야 한다”면서 “제도언론에 의해 묵살당하고 심지어는 왜곡까지 당한 이 땅의 70년대 진실을 우리 손으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발표하고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언론의 길이다. 내가 동아투위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내 인생의 행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언론 자유는 안종필 선생님을 비롯해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와 언론운동 진영의 여러 선배들의 목숨을 건 투쟁의 산물입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선생님이 평생토록 열망하셨던 새로운 시대가 왔고 새로운 신문을 세웠습니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가 등장하고 공론의 공간도 확대됐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땅의 언론 현실은 엄혹하고 암담합니다. 청와대가 낙하산 사장을 내리 꽂으면서 공영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지 오래고 보수 성향 신문들이 방송시장에 뛰어들면서 한국 언론의 플랫폼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습니다. 정권을 비판했던 언론인들이 취재 현장에서 쫓겨났고 권력에 장악된 언론은 거짓 뉴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자본 권력에 종속돼 있습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실을 가리기는 더욱 힘들게 됐습니다. 부정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지만 둔감하고 무딘 언론의 비판은 핵심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분노하는 시민들의 절규는 거리에서 사그라들 뿐 어디에도 가 닿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고 안종필 선생님의 뜻을 받든 이 의미 깊은 상을 받게 된 것을 분에 넘치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은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받는 상이 아니라 미디어오늘의 선배들과 언론운동의 동지들을 대신해서 받는 상입니다. 동시에 이 시대가 미디어오늘에 부여하는 무거운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고 숙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은 언론 비평 전문신문입니다. 언론의 신뢰가 바닥없이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오늘은 묵묵히 언론 권력 감시와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에 매진해 왔습니다. 자유언론실천 선언 40년, 미디어오늘 창간 20년을 맞는 올해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오늘의 역사는 한국 언론운동의 역사입니다.

미디어오늘은 모두가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언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권언유착 뿐만 아니라, 경언유착, 언론과 자본의 결탁을 고발해 왔습니다. 광고와 지면을 맞바꾸는 음습한 거래와 그런 거래가 은폐하고 있는 자본의 범죄를 추적하고 폭로해 왔습니다.

그게 미디어오늘의 역할이고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언론 현장에서 거꾸로 기자들을 취재하고 가장 불편한 기사를 써왔습니다. 수많은 협박과 고소·고발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투쟁하는 언론인들의 동지로 함께 싸워왔고 기득권 언론의 여론 조작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언론의 언론으로서 언론 보도 이면의 진실을 추적하고 언론이 감추거나 왜곡하는 팩트의 본질을 파고 들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된 주류 언론의 타락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미디어오늘의 역할입니다. 미디어오늘이 기록한 공영방송의 왜곡 보도 기록은 그 자체로 한국 언론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종북몰이와 색깔론의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왔습니다. 온갖 정치적 압박과 여론의 냉대 속에서도 꾸준히 천안함의 진실을 파고 들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외면하는 사각지대에 주목하고 소외 받는 언론인들을 지원했습니다. 기득권 플랫폼이 된 포털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고 공정성 이슈를 제기해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변화와 도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면적인 혁신을 통해 미디어 비평을 강화하고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어려운 길을 가겠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기꺼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언론과 권력의 결탁을 추적하고 언론 보도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겠습니다. 언론에 대한 감시 감독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단순히 현상을 좇고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슈의 생성과 유통, 그리고 인과관계를 파헤치겠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주류 언론을 비판·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저널리즘의 대안을 모색하면서 공론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고 언론을 바로 세우는 구조 개혁이 시급할 때입니다.

안종필 선생님이 투병 중에 쓰신 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몰아닥친 고난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유언론을 쟁취하려는 길이 어찌 순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숱한 고난들이 자유언론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확신하기에, 그리고 이 시대 우리 역사가 우리에게 맡겨진 역사적 몫을 우리들이 인식하고 있기에, 이 같은 고난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땅에서 언론인으로 사는 우리는 모두 안종필입니다. 선생님과 동아투위의 선배들이 겪으신 고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순탄하지 않은 이 길을 함께 걷겠습니다. 평생을 투쟁하며 진실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의 높은 뜻에 걸맞게 선생님이 평생 그렇게 사셨듯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땅의 언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귀한 상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미디어오늘의 선배들과 언론운동의 동지들께 이 상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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