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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우버? 북스의 도서정가제 무너뜨리기 프로젝트.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13, 2015

(미디어토핑이라는 곳에 올라온 글을 허락을 받고 퍼옵니다. http://mediatopping.com/2015/01/12/boox_project_of_contentscloud/)

도서정가제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안착하는 분위기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서정가제는 정말 멍청하고 한심한 제도다. 지난해 11월 21일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는 책값 할인을 직접할인 10%에 간접할인 5%를 더해 최대 15%가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정가의 15% 이상 싸게 팔면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이런 괴상한 법을 만든 것일까.

발상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서점 주인이라면 내가 볼 책은 마진을 안 남기고 출판사에서 들여온 가격만 치르면 사볼 수 있다. 내가 만약 한 달에 책을 100권씩 사보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직접 서점을 차리는 걸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주변에 책을 많이 사는 친구들이 여럿이라면 서점을 차려서 친구들에게 좀 싸게 책을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아예 작정하고 필요한 책을 공동구매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서점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참여하고 있는 콘텐츠 마케팅 에이전시, 콘텐츠클라우드에서는 북스(boox)라는 이름으로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리는 실험 프로젝트를 조만간 가동할 계획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서점에서 책을 싸게 팔 수 없게 됐으니, 그래서 책을 싸게 살 수 없게 됐으니, 직접 서점을 차려서 서점이 출판사에서 책을 들여오는 가격에 책을 사보자는 거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당신이 직접 서점 주인이 돼라! 안 될 게 뭐가 있나.

출판사에서 서점에 책을 보낼 때 정가 대비 공급가의 비율을 공급률이라고 하고 서점 입장에서는 매입률이라고 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국내 대형 인터넷 서점의 매입률은 59.3%, 대형 서점은 61.5%, 도매상은 61.9%, 중형 서점은 70.5%, 소형 서점은 73.0%, 그리고 오픈 마켓은 57.7% 정도다. 구매력이 큰 대형 서점과 오픈 마켓을 우대하고 소형 서점을 차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정가 2만원짜리 책을 출판사에서 1만2380원에 도매상에 넘기면 동네 서점은 1만4600원에 책을 받아 할인 없이 2만원 정가에 판다. 인터넷 서점은 1만1860원에 받아 1만8000원에 팔면서 1000원을 포인트로 적립하고 무료로 배송해준다. 대형 서점은 1만2300원에 받아 2만원에 팔고 1000원을 포인트로 적립해준다. 유통 비용과 반품률 등을 감안한 시장 가격이지만 애초에 동네 서점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북스의 1단계는 도매상을 통해 회원들에게 소형 서점이 받는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도록 연계해 주는 모델이다. 이 경우 최소 마진을 빼고 정가의 75%(할인률이 25%!) 수준에 회원들에게 책을 보내줄 수 있다. 북스는 회원이 동네 서점인지 아닌지 묻지 않는다. 당신이 서점 주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서점이라는 게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등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업자 등록증만 내면 누구나 서점을 차릴 수 있다.

북스의 2단계는 베스트 셀러 중심으로 직접 출판사에서 책을 공급 받아 회원들에게 판매하는 모델이다. 100권씩 200권씩 책을 달라는데 (그것도 주문과 동시에 현금 결제로) 주지 않을 출판사가 있을까.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만 팔아준다면 상대방이 서점인지 아닌지 알 바 아니다. 이 경우 60% 매입률로 책을 받아 회원들에게는 70% 수준에 (할인률이 30%!) 공급할 수 있다. 동네 서점이 공급 받는 가격 보다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북스의 3단계는 북스가 직접 도매상+인터넷 서점이 되는 모델이다. 출판사에서 도매 가격에 책을 받되 다른 인터넷 서점과 달리 정가의 70% 수준에 판매하는데 (할인률이 30%!) 서점 주인들만 주문할 수 있다는 게 차이다. 이를 테면 서점 주인들을 대상으로 한 도매 마켓 플레이스인 셈인데 당신이 회원으로 가입한다고 해도 당신이 서점 주인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물론 확인도 하지 않을 계획이다.

동네 서점들이 무너지는 건 안타깝지만 애초에 도서정가제로 동네 서점을 살린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동네 서점은 가뜩이나 매입률이 높아 할인 판매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도매상들은 최근 도서정가제를 빌미로 공급률(=매입률)을 높이는 추세다. 할인 판매를 금지하면 1차적으로 소비자들 부담이 늘어나고 그만큼 인터넷 서점들은 이익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갑자기 동네 서점을 찾지는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 시골 산지에서 트럭째로 팔리는 배추 가격이 도시의 슈퍼마켓으로 오면 100배 가까이 뛰는 것처럼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소매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만약 출판사와 독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다면 정가의 60% 수준에 책을 살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책 판매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까. 이걸 가로막는 게 뭘까.

물론 출판사와 독자가 직접 거래하는 건 재고와 반품 관리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고 당일 배송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래서 북스가 필요하다. 북스가 서점 주인(인 척하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책을 판다면 정가의 60%에 책을 받아와서 최소 마진을 남기고 팔 수 있다. 교보문고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들도 정가의 60%에 책을 받아오지만 소비자들에게 정가의 90%에 팔고 5% 포인트를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최대 15% 할인)

결국 멍청한 도서정가제 때문에 가격 구조가 왜곡된다는 이야기다. 북스는 서점 주인(인 척하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최소 마진을 남기고 팔 수 있지만 인터넷 서점들은 마진을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 없는 (실제로는 줄일 생각도 없겠지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됐다. 언뜻 인터넷 서점들이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이런 가격 왜곡 때문에 책이 안 팔리면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북스는 몇 가지 법적 쟁점을 안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정가의 15% 이상 싸게 팔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북스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서점 주인들을 대상으로 최대 30% 이상 책을 싸게 공급할 계획이다. 만약 북스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북스의 회원들이 서점 주인이냐 아니냐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걸 도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구분할 건가.

우리는 누구나 서점 주인이 될 수 있고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접 서점을 차리고 회원으로 가입하시라. 서점을 어떻게 차리냐고? 회원 가입과 동시에 우리가 온라인 서점 같은 걸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원한다면 거기서 직접 책을 팔 수도 있다.) 서점 주인인 척 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문제라면 이 사람들을 진짜 서점 주인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런 게 뭐 어렵나.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는 회원 가입의 선결 조건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요구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사업자 등록증 만드는 건 공짜다) 웬만하면 그런 절차는 생략할 계획이다. 사업자 등록을 해야 서점 주인이라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지만 만약 그런 조건이 붙는다면 친구들 가운데 대표로 누군가가 사업자 등록을 하고 구매 대행을 해줄 수도 있다. 서점 주인이 친구들에게 원가에 책을 준다면 그게 불법인가.

출판사들이 북스에 책을 공급하겠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누가 됐든 책을 팔아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설령 출판사에서 책을 못 주겠다고 하더라도 1단계에서는 도매상을 통해서 책을 받을 수도 있고 책값이 부풀려지는 중간 단계 어디에서든 쉽게 구멍을 찾을 수 있다. 북스가 하나의 서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위장된 서점을 여럿 두는 방법도 가능하다.

배송비도 변수인데 공급률을 낮게(할인율을 높게) 잡는 대신 배송비를 서점 주인이 부담하거나 초기 단계에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할 경우 배송비를 무료로 책정하고 일정 금액 미만일 경우 배송비를 퍼센티지로 책정할 수도 있다. 핵심은 배송비를 감안하더라도 동네 서점 주인이 도매상에서 책을 납품 받는 조건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책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0만원어치를 사면 3만원을 할인 받는 셈이니 배송비는 큰 문제가 안 된다.

북스의 가격 구조는 도매상과 비슷하다. 정가의 60% 정도에 가져와서 10% 남짓 마진을 남기고 판다. 다만 도매상은 동네 서점이 고객이지만 북스는 일반 소비자가 대상이라는 게 차이다. 물론 북스의 한계도 있다. 대형 인터넷 서점과 비교하면 배송이 하루이틀 정도 늦을 수 있다. 한두 권은 큰 메리트가 없고 서너 권 이상을 사야 확실하게 가격 할인을 체감할 수 있다. 완벽한 소매라기 보다는 소매와 도매의 중간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북스는 마진률을 최소로 가져갈 계획이다. 1차적으로는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리는 게 목표고 2차적으로는 대형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의 폭리 구조를 폭로하고 왜곡된 가격 구조를 바로잡는 데 기여하는 게 목표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도서정가제는 동네 서점의 몰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시장 원리가 만능은 아니지만 대형 사업자의 가격 할인을 막는 것으로 영세 사업자를 보호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목표는 동네 서점을 망하게 만드는 게 아니지만 우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이런 구조에서는 모든 동네 서점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동네 서점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형 온라인 서점의 마진을 보호하는 어처구니 없는 도서정가제는 폐지돼야 한다. 동네 서점이 사라진 자리에서 대형 온라인 서점들이 과점 담합을 하지 못하도록 제로 마진을 향한 경쟁으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다. 북스 프로젝트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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