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님’, 단말기 보조금은 주는대로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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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를 바꾸러 대리점에 들르면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할부원금이 얼마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래야 ‘호갱님(고객+호구라는 의미의 은어)’ 취급을 안 당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단말기 한 대에 보조금이 27만원을 넘으면 위법이라고 보고 지난달 말 106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대리점에 내려오는 보조금은 27만원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보조금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스스로 ‘빠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호갱님’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통신 3사가 대리점에 내려보낸 단말기 보조금 정책 문건을 보면 1월1일 기준으로 SK텔레콤은 삼성전자 갤럭시S4 LTE-A를 24개월 약정 번호이동 조건으로 71만원의 보조금을 대리점에 지급하고 있다. 최신 기종인 모델명 SHV-E330S의 출고가격은 95만4800원이다. 대리점에 따라서 마진을 최소화한다면 24만4800원에 팔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얼마에 팔 것인지는 대리점 점주의 마음이다.

대리점 점주는 71만원을 다 고객에게 돌려줄 수도 있고 이 가운데 상당수를 남길 수도 있다. 싸게 팔면 고객을 더 끌어 모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고객들은 할부원금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깐깐한 고객에게는 파격적으로 깎아줄 때도 있고 어수룩한 고객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는 마음놓고 덤터기를 씌우기도 한다. 그래서 똑같은 단말기를 똑같은 대리점에서 90만원에 사는 사람도 있고 20만원에 사는 사람도 있다.

할부원금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판매원의 다음 설명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아보자.

“고객님, 이 단말기 출고가격이 95만4800원이죠? 그런데 52요금제를 쓰시고 24개월 할부를 하면 35만6400원을 깎아드리고요. 만약 36개월 할부를 하시면 44만5500원을 깎아드려요. 데이터 사용량이 많으면 62요금제로 36개월 할부를 하시면 52만8000원까지 깎아드릴게요. 그럼 42만6800원을 36개월로 나누면 월 1만1856원만 내시면 되는 거에요.”

많은 ‘호갱님’들이 약정할인과 단말기 보조금을 헷갈린다. 애초에 통신 요금과 단말기 가격을 구분해서 달마다 얼마를 내는지 계산해야 하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이 판매원은 약정할인을 단말기 가격에 갖다 붙여 큰 선심이나 쓰는 듯 설명을 하고 있다. 원래 SK텔레콤의 경우 62요금제로 36개월 할부를 하면 기본료가 월 6만2000원이 아니라 월 1만7600원씩 할인돼 4만4400원 밖에 안 된다.

실제로 이 경우 할부원금은 출고가격 94만4800원 그대로다. 한 푼도 깎아주지 않고 통신사에서 내려 보내는 보조금 71만원을 그대로 대리점이 꿀꺽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다. “단말기 공짜”라고 써붙여 놓고 들어가 보니 출고가격 40만원짜리 단말기를 약정할인과 묶어서 기본료 월 5만2000원만 내면 된다고 속이는 식이다. 깎아주는 건 단말기 가격이 아니라 기본료고 그건 원래 약정을 하면 깎아주게 돼 있는 것이라는 게 함정이다.

출고가 95만4800원인 팬택의 베가 시크릿업(IM-A900S)은 보조금이 87만원이나 된다. 물론 이 돈을 고객에게 그대로 다 주지는 않는다. 대리점 마다 다 다르고 고객에 따라 다 다르다. 실제로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제값 다 주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보조금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대리점의 전략도 제각각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도 이 시장에는 애초에 가격이라는 게 없다.

KT의 경우도 갤럭시S4에 70만원의 보조금이 내려왔다. 베가 시크릿업이 KT에서는 보조금이 71만원이다. 베가 아이언(IM-A870K)는 무려 75만원의 보조금이 나온다. 만년 3위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LG유플러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갤럭시S4는 64만원으로 좀 적지만 베가 아이언에 무려 78만원이나 된다. 대리점이나 판매점 점주만 아는 암호 같은 표에 적혀 내려오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정확한 보조금 규모를 알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방통위의 보조금 가이드라인 27만원은 현장에서는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대리점에 내려오는 보조금은 30만원을 훌쩍 넘어 50만원, 70만원을 웃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7만원 이하로 신고하도록 유도한다. 만약 27만원을 넘게 신고하면 보조금을 강제로 차감 당한다. 이를테면 한 대를 팔면 70만원을 주는 조건인데 고객에게는 27만원만 이상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적당히 현금을 지급하도록 편법을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한 판매점 점주의 이야기다.

“출고가격 90만원짜리 단말기에 보조금이 70만원으로 내려왔는데 이걸 45만원에 팔고 싶다고 해볼까요. 그 정도에 팔아야 경쟁이 되겠다 싶은 건데요. 그런데 보조금을 27만원 이상을 줬다고 적지 말라고 하잖아요? 만약 27만원이 넘으면 보조금을 70만원 다 안 주니까요. 그래서 63만원에 팔았다고 쓰고 차액 18만원(45만원-27만원)을 현금으로 주는 거죠.”

방통위가 말하는 이용자 차별은 누구에게는 90만원에 팔고 누구에게는 50만원에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그래서 90만원짜리 단말기를 최대 27만원까지 깎더라도 63만원 이하로는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방통위가 아무리 규제를 해도 판매점이 자기네 이익을 줄여가면서 싸게 파는 걸 전면 금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애초에 출고가격이 높은 탓도 있고 워낙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한 탓도 있다.

고객 입장에서야 보조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닐까 싶지만 그게 아니다.

“45만원에 사는 것과 63만원에 사고 현금 18만원을 돌려받는 건 다르죠. 할부 이자가 5.9%니까 할부원금 45만원을 할부로 하면 이자만 2만6550원인데 할부원금이 63만원이면 3만7170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방통위 규제를 피하려고 고객에게 안 내도 될 돈을 더 내게 만드는 거죠. 통신사들은 이것만으로 1년에 수백억원의 부가수익을 얻게 됩니다.”

결국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는 27만원보다 훨씬 더 많은 보조금을 뿌리고 있는데 방통위 규제에 맞춰 적당히 서류만 꿰어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보조금을 얼마를 주든, 설령 현금을 끼워주더라도 본사에는 27만원 이상 보조금을 주지 않은 것으로 기록이 올라가게 된다. 방통위가 잊을 만하면 떠들썩하게 단속도 하고 과징금도 때리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단속 효과가 없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빠꼼이’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꼼꼼히 따져보고 최저 가격에 단말기를 산다. 그 비율은 10%도 안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나머지는 매장에 와서 단말기를 사는데 웬만큼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설령 아무리 열심히 발품을 판다고 하더라도 눈탱이를 맞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호갱님’들은 실제 보조금이 얼마인지를 알 수가 없고 선심이나 쓰듯 제시하는 보조금에 쉽게 현혹되기 마련이다.

휴대폰 가격 검색 사이트 피피넷의 표영진 대표는 “얼마에 팔든 그건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결정할 문제고 방통위가 가격까지 결정해 줄 수는 없다, 규제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표 대표는 “이용자 차별을 막는 게 보조금 규제의 목적이라면 가장 확실한 것은 매장마다 가격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미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만든 가격 정찰제만 제대로 시행돼도 상당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동네 구멍가게와 대형 할인마트가 가격이 다른 건 당연하다. 누구도 그걸 두고 이용자 차별이라고 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대형 할인마트에는 가격이 정확하게 붙어있고 할머니가 오든 대학생이 오든 같은 가격에 판다는 것이다. 적어도 30만원에 팔 수 있는 단말기를 90만원에 파는 그런 일은 대형 마트에도 없고 동네 구멍가게에도 없다. 동네 구멍가게 가격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멀더라도 대형 마트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표 대표는 “주유소에 가격을 붙여놓는 것처럼, 그러면 멀리 있는 주유소를 찾아가거나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차 몰고 들어가서 기름 값 흥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표 대표는 “전국 모든 주유소에서 기름 값을 똑같이 매기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한 주유소에 들어온 고객들을 차별하거나 속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라면서 “방통위가 진짜 이용자 차별을 막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방통위가 정한 27만원 가이드라인은 이 정도는 돼야 통신사들이 안정적인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막연한 추정을 근거로 통신사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라면서 “정작 문제는 보조금을 줄여도 그게 요금 인하로 이어지지 않는데 이처럼 요금 규제는 하지 않으면서 경쟁을 억제하면 그 줄어든 마케팅 비용이 고스란히 통신사들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팀장은 “규제를 하려해도 현장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 데다 정작 단말기 가격도 크게 내려가지 않으면서 통신사들 배만 불려주는 상황”이라면서 “법적 근거도 모호한 보조금 규제를 전면 개편해 통신 요금을 인하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보조금 규제 보다는 통신 요금 인가 기준을 강화하고 출고가를 낮추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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