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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화질개선 프로젝트, 컨버터 400만대 비용은 누가 대나.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9, 2013

8VSB(8레벨 잔류 측파대)는 애초에 종합편성채널의 화질개선 프로젝트로 출발했지만 뜻밖에도 케이블 방송 사업자(SO)들이 이 떡밥을 덥석 물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지난 10일 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8VSB를 모든 케이블 채널(PP)들에 확대하도록 허용했지만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종편은 한동안 축제 분위기였는데 8VSB 방식이 확대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SO들도 손익 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8VSB 확대는 종편의 숙원 사업이었다. 8VSB는 원래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송 방식인데 지상파 디지털 전환 이후 SO들은 아날로그 케이블에서도 지상파 채널을 8VSB로 내보냈다. 이 때문에 지상파 채널만 HD 화질로 나가고 다른 PP 채널은 SD 화질로 나갔는데 8VSB를 확대하면 종편을 비롯해 다른 PP 채널들도 HD 화질로 볼 수 있게 된다. 전송 방식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추가 비용도 들지 않는다.

문제는 300만~400만 가구로 추정되는 아직까지 아날로그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다. 전체 케이블 가입 가구는 1491만 가구, 이 가운데 아날로그 케이블은 888만 가구, 여기서 대략 절반 정도가 아직 아날로그 수상기로 TV를 본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종편 등이 8VSB로 전송된다고 해도 화질이 달라질 게 없다. SO들은 이들을 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들에게 돈을 더 쓰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8VSB를 확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아날로그 케이블의 주파수를 둘로 나눠서 디지털 수상기에는 8VSB 방식으로 내보내고 아날로그 수상기에는 기존처럼 쾀 방식으로 내보내는 방법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 경우 아날로그 수상기 가구에는 채널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둘째, 아날로그 수상기 가구에 디지털-아날로그(DtoA) 컨버터를 나눠주고 모두 8VSB 방식으로 내보내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 경우 컨버터 구매 비용이 문제가 된다.

먼저 주파수를 쪼개는 경우에는 360MHz 폭을 디지털 수상기 전용으로 240MHz, 아날로그 수상기 전용으로 120MHz씩 할당하고 디지털 수상기 가구에 풀HD 채널 20개와 HD 채널 20개, SD 채널 40개, 모두 80개를 내보내고 아날로그 수상기 가구에는 SD 채널 20개를 내보낼 수 있다. 디지털로 전송할 때는 MMS(멀티모드 서비스)를 적용해 6MHz 폭에 최대 4개까지 채널을 집어넣을 수 있지만 아날로그 방식에서는 한 채널에 6MHz 폭씩 잡아야 한다.

전혀 돈이 들지 않는 방식이지만 SO들은 일찌감치 이 방식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채널 수가 20개로 줄어들면 아날로그 수상기를 보유한 가구가 엄청나게 반발할 텐데 애초에 가입자 동의 없이 서비스를 변경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한때 8VSB 방식을 확대하면 군소 PP들이 퇴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돌기도 했지만 SO들이 이런 방식으로 8VSB를 도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업계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렇다면 결국 아날로그 수상기를 보유한 가입자들에게 컨버터를 나눠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컨버터 한 대에 4만원씩만 잡아도 400만 가구면 1600억원이 된다. 월 4000~5000원 남짓의 낮은 수신료를 올릴 수도 없는데 거의 수신료 1년분에 맞먹는 가격의 컨버터를 무료로 뿌린다는 건 SO 입장에서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수상기에서는 화질 개선이라도 있지만 아날로그 수상기에서는 기껏 4만원짜리 컨버터를 달아도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

더 구조적인 고민은 8VSB 확대가 디지털 전환을 지연시키고 저가 케이블 상품을 고착화할 거라는 우려에서 나온다. 디지털 케이블은 아날로그 케이블보다 수신료가 3~4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SO들은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를 늘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최근에는 케이블을 끊고 통신사 결합상품으로 나온 IPTV로 옮겨가는 가입자가 늘고 있다. 8VSB는 SO 입장에서는 반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애매모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 조해근 과장은 “8VSB 확대는 원래 종편의 요구로 시작된 게 맞지만 SO들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하겠다고 해서 허용한 거다, 짝퉁 디지털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SO 입장에서는 어차피 디지털 전환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가입자를 끌어안는 효과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SO들도 좋고 PP들도 혜택을 보고 가입자도 좋고 모두가 해피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SO들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SO 관계자는 “지역별로 가입자 성향으로 보고 셀 단위로 8VSB 전환을 검토할 계획”이라면서 “필요하다면 아날로그 수상기 보유 가입자들에게 컨버터를 나눠주고 8VSB로 옮겨가겠지만 비용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SO 관계자들은 미래부 정책에 반발하는 모양새로 비춰지는 걸 우려하는 듯 대부분 말을 아꼈다.

다른 한 SO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도 단계가 있다고 본다”면서 “우선은 화질 개선, 그리고 VOD(주문형 비디오), 그리고 노래방 서비스 같은 데이터 방송으로 옮겨갈 텐데 한꺼번에 옮겨가기를 꺼린다면 중간 단계로 8VSV 같은 상품을 도입하는 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당수 가입자들이 디지털 케이블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디지털로 옮겨갔다가 아날로그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SO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 때도 저소득 계층에게 컨버터를 나눠주거나 디지털 수상기 구매 비용을 지원해 줬는데 그때는 아무도 낭비라고 하지 않았다”면서 “SO들도 가입자들에게 당장 아날로그 수상기를 버리라고 할 수 없다면 일단은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래부 조 과장도 “자기네들이 원해서 하겠다고 하는 건데 컨버터도 알아서 사서 뿌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 지원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SO 업계는 일단 200만 가구 정도로 추산되는 공동주택(아파트) 단위의 아날로그 상품 단체 계약을 중심으로 8VSB 전환을 추진한 뒤 단계적으로 양방향 디지털 상품으로 옮겨가도록 프로모션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아날로그 상품 가입자 비율이 높으면서 상대적으로 아날로그 수상기 보유 가구가 적은 단지 중심으로 프로모션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8VSB가 디지털 상품으로 옮겨가기 위한 일종의 미끼 상품이 되는 셈이다.

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8VSB 확대에 모든 SO 업계가 다 적극적인 건 아니다, 그렇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또는 디지털 리모컨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날로그 케이블을 고집하는 중장년층도 많고 앞으로도 한동안 디지털 전환 의사가 없는 아날로그 세대들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에게는 8VSB가 좋은 대안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상당한 비용이 들겠지만 아날로그 서비스 종료를 위해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컨버터를 공짜로 400만대 이상 뿌린다는 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고 본다”면서 “지상파 디지털 전환 때처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방송발전지원기금 면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채 위원장은 “8VSB로 가고 아날로그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하면 주파수 대역에 여유가 생길 테니 일단 받고 보자는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유명무실한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짝퉁 디지털도 디지털… CPS,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SO 수신료 못 올리는데 부담만 가중… “사업자들끼리 결정할 문제” 미래부는 수수방관.

8VSB(8 레벨 잔류 측파대) 방식이 케이블 채널(PP)로 확대되면 지상파 방송사들과 케이블 방송 사업자(SO)들의 재송신 수수료(CPS) 분쟁도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케이블 신규 가입자 한 가구에 월 280원씩을 받고 있는데 8VSB를 디지털 케이블로 본다면 한 가구에 3개 채널(KBS2와 MBC, SBS), 월 280원씩이면 1년에 1만80원, 10월 말 기준으로 888만가구면 1년에 895억원이 된다.

SO들은 8VSB 방식 디지털 방송은 CPS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CPS가 없으면 채널을 들어내겠다며 맞서고 있다. 짝퉁 디지털이든 반쪽 디지털이든 디지털 방송이기 때문에 CPS를 받아야한다는 입장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가뜩이나 8VSB 방식을 확대하면 지상파 플랫폼의 입지가 더 좁아진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유료방송과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CPS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는 “8VSB 전환이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8VSB 전환이나 CPS 부과 여부도 결국 사업자들끼리 결정할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미래부 뉴미디어정책과 조해근 과장은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에게 CPS를 받게 되면 수신료 인상 요인이 생길 텐데 최대한 수신료 인상을 자제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라면서도 “사업자들이 서로 양보해서 절충점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SO 관계자는 “SO 사업자들끼리 SO의 최대 적은 888만 가구 아날로그 가입자들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면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랫동안 아날로그에 머물면서 아날로그 종료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8VSB가 과도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 컨버터 지원 비용이나 CPS 지급 등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수신료를 올릴 경우 가입자 이탈을 부추길 수도 있어 기대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진홍 방송기술인연합회 방송기술저널 편집장은 “8VSB는 지상파와 동등한 경쟁을 하겠다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들의 요구와 가입자 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SO들의 절박한 생존 본능이 맞물려 만든 타협적인 서비스인데 실행 단계에서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 편집장은 “종편들이 기대하는 대로 8VSB 전환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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