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에게 이 책들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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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을 맞아 월간 ‘말’이 특별한 도서추천 이벤트를 기획했다. 휴가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8월 1일부터 1주일간 휴가를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심사도 결코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추천도서를 선정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노 대통령은 머리를 식히는 한편 집권 1년 반의 반성과 함께 국정운영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추천도서를 소개하기에 앞서 노 대통령께서 최근에 읽었던 책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대변인실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업무정지 상태에 놓여있었던 지난 3월과 4월, 모두 7권의 책을 읽었다.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와 ‘기술강국 2만불 시대’, ‘동아시아 경제 변화와 국가의 역할 전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마가렛 대처’, ‘이제는 지역이다’, ‘칼의 노래’ 등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노 대통령의 독서취향은 협소하고 빈곤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은 김훈의 ‘칼의 노래’다. 지난해 7월 노 대통령은 문화방송의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에 출연해 “요즘같이 격동기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며 ‘칼의 노래’를 소개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업무정지 기간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왜 이 책을 두번씩이나 읽었을까.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로 치닫던 무렵,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가면서 말이다.

“정유년 겨울에 전쟁은 전개되지 않았다.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전쟁은 천천히 죽어가는 말기 암과 같았다. 적이 죽어가는 것인지 내가 죽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이 힘겹게 겨우겨우 흘러갔다. 저녁이면 먼 섬들 사이로 저무는 햇살에 갯고랑 물비늘이 반짝였고 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소멸하는 날들은 기진맥진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 장군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덧없는 전쟁을 끊임없이 회의했다. 칼을 들었지만 그에게는 베어야 할 적이 없었고 그 실체 없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수없이 죽어가는 아군과 적군들의 덧없는 죽음 앞에서 그는 오히려 무덤덤했다. 전쟁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는 인간적인 고뇌를 앓았다. 그 고뇌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였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중이던 1980년 전두환 신 군부를 찬양하는 기사를 자청해서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를 가장 우수한 신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사설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소름이 쪽쪽 끼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2000년 9월, ‘한겨레21’ 대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말하고 페미니즘을 “못된 사조”라고 깎아 내린다. 조선일보가 주는 동인문학상을 황석영씨는 거부했지만 김훈은 개의치 않고 받았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칼의 노래’를 “한국 문학에 쏟아진 벼락 같은 축복”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 나에게는 없다.” 김훈은 현실과 맞서 싸우는 대신 한발 물러나서 회의하고 관조한다. 그가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이 고뇌를 가득 안고 허무주의로 치닫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분명히 김훈의 소설에는 가슴을 치는 무엇인가가 있다. 문장도 유려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두번씩이나 읽을만큼 큰 의미를 둘 책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벤치마킹하자고 주장하는 ‘경제전쟁 시대 이순신을 만나다’도 읽었다. 이 책이 내놓는 경제전쟁 시대의 해법은 유비무환의 자세와 혁신, 리더십, 신뢰 등이다. 거창에서 출발해 진도와 여수를 거쳐 남해에 이르는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 답사가 주된 줄거리고 경제전쟁 시대의 해법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이 책은 아무런 구체적인 전략도 담고 있지 않다.

‘마거릿 대처’는 탄핵 의결 이후 권오규 정책수석의 추천으로 읽었다는 책이다. 영국의 첫 여성 수상이었던 마거릿 대처의 생애를 담은 평전이다. 대처 전 수상이 정권을 잡았던 1979년은 영국도 IMF 구제금융 체제에 놓여 있던 무렵이었다. 그는 국가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과감한 민영화와 대대적인 기업 지원에 나서는 등 철저하게 분배 보다 성장 위주의 정책에 주력했다. 주목할 부분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노조탄압 정책이다. 대처 전 수상은 1년여에 걸친 광산노동자 파업에 맞서 기마경찰을 동원 시위를 진압하는 등 강력한 법집행으로 맞섰다. 이른바 대처리즘 전성시대를 연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과연 이 책에서 무슨 교훈을 얻었을까.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은 이주흠 전 외교통상부 아태국 심의관이 쓴 책이다. 노 대통령은 역시 탄핵 직후 이 책을 읽고 여러차례 극찬을 한 바 있다. 이 책 덕분에 이주흠씨는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한 뒤 첫 조직 개편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돼 옮겨간다. 드골은 강력한 유럽과 강력한 프랑스를 주창하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거부하고 철저하게 독자노선을 걸었다. 내부적으로는 행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의회의 권한을 축소시켜 독재자란 평을 받기도 했다. 탄핵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노 대통령의 드골 배우기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동안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노무현 대통령이 샤를르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다분히 권위적인 리더십에 심취하는 것은 조금 우려스러운 일이다. 노 대통령은 드골의 리더십을 배울게 아니라 대미 자주 국방과 외교정책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역이다’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위원회에서 발간한 책이다. 강원도 원주의 의료기기 테크노밸리, 충남 예산의 농업 테크노파크, 충남 금산의 금산인삼축제 등 지역혁신 사례를 다뤘다. 책이라기보다는 지자체의 홍보 브로셔 수준이다.

논문 모음집인 ‘동아시아 경제변화와 국가의 역할 전환’은 노 대통령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껍고 어려운 책이다. 196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의 발전을 설명해온 발전국가론을 재조명하고 1990년대 특히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발전국가의 변화를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500페이지에 이르는 이 골치아픈 책을 노 대통령이 어떻게 읽을 수 있었을까. 그 어수선한 상황에 말이다.

탄핵에서 복귀하고 17대 총선을 승리로 이끈 노 대통령은 5월 29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를 초청한 자리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를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 노동당이 지속가능한 집권세력이 되기 위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한 이 책은 ‘노동의 미래’라기 보다는 ‘노동당의 미래’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좌파적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이념과 그 정책의 운용에 있다. 기든스는 과도한 세금과 무분별한 재정지출, 중앙집권적 행정을 피하라고 주문한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분배를 완성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의 주장은 노 대통령이 최근 내세운 실용주의와 부분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기든스의 ‘노동의 미래’보다는 1997년에 발간된 로마클럽의 ‘노동의 미래’를 추천했다. 로마클럽 ‘노동의 미래’의 핵심 주장은 “자본주의가 고용을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로 인해 완전 고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주도적인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든스의 책과 다르다.

유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제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추천했다. 유 교수는 선진국들이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세계화의 본질을 노 대통령이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찬근 인천대학교 교수는 아직 국내에서는 번역 출간되지 않은 윌 헌튼의 ‘The State We’re In(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추천했다. 영국의 금융개혁과 마가렛대처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어떻게 영국경제를 20 대 80 사회로 파탄을 냈는가를 그려낸 책이다. 마가렛 대처의 전기를 읽고 있는 노 대통령에 대한 따끔한 일침인 셈이다. 이 교수는 “당시 영국의 경제사회의 현상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사정과 너무도 놀라운 수준으로 닮은 꼴이란 점을 뼈아프게 인식시켜주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금융의 단기화로 인한 투자의 부진과 제조업의 파탄, 양질의 일자리의 파괴, 그리고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되는지 설명돼 있다.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은 최근 행정수도 이전의 논의와 관련, ‘정조 시대 화성신도시의 건설’을 추천했다. 유봉학 한신대학교 교수 등이 쓴 책이다. 이 소장에 따르면 정조의 화성 신도시는 모두가 이기는 윈윈게임이었다. 정조가 도중에 사망해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화성 신도시는 그 의미에 있어서나 선진 공법의 사용에 있어서나 그리고 경제 발전의 측면에 있어서도 성공을 거두었던 역사였다.

이 소장은 이밖에 덩 샤오핑의 딸이 쓴 ‘불멸의 지도자 덩샤오핑’과 ‘황국신민의 시대’도 함께 추천했다. 덩 샤오핑의 평전은 사회정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이고 ‘황국신민의 시대’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과 관련해 필요한 책이다. 친일파에 대한 단순한 비난을 넘어 일제의 조직적 국가동원체제와 이에 대응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대응, 그리고 친일의 논리와 그 헛점까지 보여주는 책이다.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뜻밖에도 ‘논어’를 추천했다. 김 총장이 1990년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수감중이던 무렵 읽었다는 책이다. 김 총장은 특히 학이편에 있는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라는 구절을 강조했다. “남들이 본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지 말고 때로 배우고 익히면서 군자답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조영탁 한밭대학교 교수는 ‘에코 이코노미’를 추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레스터 브라운이 쓴 이 책은 ‘지구를 살리는 새로운 생태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조 교수는 “새만금 사업이나 부안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환경이나 생태문제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 다소 앞선 부분도 있고 추상적인 문제제기에 그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경제와 환경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이혜영 한신대학교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고전, ‘군주론’을 추천했다. 권모술수주의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의 오해를 넘어 외세의 지배에 짓눌린 이탈리아와 인민을 도탄에서 구해내라는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귀기울이라는 뜻에서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의도도 있다.

정승일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파레콘’과 ‘미국의 종업원 소유 기업들’을 추천했다. 파레콘은 참여경제학을 일컫는 말로 공평성과 연대, 다양성, 자율관리, 생태적 균형 등의 기본적 가치들에 기초해 경제정의를구현하는 제도적 비전을 제시하는 용어다. ‘파레콘’은 자본주의적 혹은 대기업 위주의 세계화에 단호히 반대한다. 대신 새로운 국제적 규범과 제도를 수립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의 정의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른바 반자본주의적 세계화다. 정 정책위원은 “말로만 참여정부를 떠드는 노무현 정부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미국의 종업원 소유 기업들’도 종업원 지주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기 위한 필독서다.

이밖에 민경국 강원대학교 교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과 루트비히 미제스의 ‘자유주의’, 밀튼 프리드만의 ‘선택할 자유’를 추천했다. 모두 자유기업원에서 번역 출간한 책들이다. 민 교수는 “한국이 살길은 자유주의라고 믿는다”고 추천사유를 밝혔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다니엘 예르긴의 ‘시장 대 국가’와 괴츠 트렌클러의 ‘상식의 오류사전’을 추천했다. 전자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 또는 경계를 명확히 하라는 요청이고 후자는 상식의 오류를 인정하고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사용하라는 조언이다.

노 대통령이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홍윤기 동국대학교 교수는 “책을 추천할 게 아니라 퇴진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노 대통령의 퇴진 추진을 위해 조만간 교수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설문을 위해 모두 70명 이상의 가까운 교수와 지식인들을 접촉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추천할 책이 없다거나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 김성구 한신대학교 교수는 “대통령이 지금 책을 잘못 읽어서 정치를 이렇게 하는 건 아닐 것”이라며 “책 보다는 비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편집장은 “내키지 않는다”고만 밝혔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도 “딱히 추천할 책이 없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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