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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 엎드린 지상파, “700MHz 절반만 잠깐 빌려주면….”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1, 2013

지상파 방송사들이 지상파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썼던 700MHz 주파수 대역이 통째로 통신사들에게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들이 최종 단일 안을 내놓았다. 통신사들의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맞서 ‘국민행복 700 플랜’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6일 한국방송기술인주최로 열린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에서 이 안을 처음 공개했다. 이 안은 5일 방송통신위원회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날로그 방송 시절 54~806MHz까지 넓은 주파수 대역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포함 68개의 채널을 썼는데 디지털 전환과 주파수 재배치 이후 아날로그 채널을 폐쇄하면서 470~698MHz의 대역에서 14~51번까지 38개 채널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52~69번 채널까지, 주파수 대역으로는 698~806MHz까지 108MHz 폭이 여유대역으로 남게 됐다. 이게 그 문제의 700MHz 황금 주파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2월 급증하는 모바일 트래픽에 대비하기 위해 170~220MHz 폭의 신규 주파수 대역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700MHz 대역에서 40MHz 폭을 통신용으로 우선 할당하기로 했다. 그게 이른바 모바일 광개토 플랜이었다. 108MHz 폭 가운데 40MHz 폭을 가져가면 남아있는 대역은 68MHz 폭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동안 108MHz을 다 가져와야 한다는 완강한 입장이었는데 이번 안에서는 크게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내놓은 밴드플랜 1안은 66MHz 폭 11개 채널을 UHD 실험방송 대역으로 확보하는 방안이고 밴드플랜 2안은 54MHz 폭 9개 채널만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상진 SBS 뉴미디어전략팀 차장은 “빌려주시면”이라는 표현을 썼다. “54MHz 폭만 빌려주시면 내년부터 UHD 방송을 준비해서 2020년부터 전국 방송을 시작하고 2025년이면 완전히 UHD 방송으로 전환, HD 주파수 132~150MHz를 반납하겠습니다.”

“54MHz만 빌려주면 12년 뒤에 최대 150MHz를 반납하겠다.” 이를 두고 지상파 방송사들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수세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차장은 “불필요한 논쟁 없이, 최소한으로 요구해서 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 차장은 “지난 한 달 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이 합숙을 하다시피 오랜 토론을 거쳐 단일하고 공통된 의견을 만들어냈다, 이게 그 결과다”라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내놓은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상파 방송사들의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이 차장은 “단순히 화면 크기가 네 배가 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UHD 전환과 함께 MFN(다중주파수망)을 SFN(단일주파수망)으로 바꾸면 서울과 수도권 전역을 커버하는 데 지금은 37개 채널이 필요하지만 5개 채널만 있어도 된다”면서 “커버리지를 100%로 높여 난시청 문제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UHDTV의 대중화를 두고 전망이 엇갈리지만 이 차장은 단호했다. “이미 HDTV보다 저렴한 UHDTV가 나오기 시작했고 2015~2016년이면 UHDTV가 지금의 HDTV 수준으로 가격이 낮아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시장조사 자료에 따르면 1920×1080 픽셀을 지원하는 삼성전자 50인치 HDTV는 1149달러인데 중국 기업이지만 TCL의 50인치 UHDTV는 3840×2160 픽셜을 지원하면서 999달러 밖에 안 한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65인치 UHDTV 패널 가격은 같은 크기의 HDTV 패널의 3.5배였는데 4분기에는 1.3배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전체 TV 시장에서 UHDTV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3%에서 2016년이면 34.9%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TFT-LCD 패널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91%나 폭락했다. 이런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UHDTV 시장을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올해 판매되는 130만대의 UHDTV의 70%를 중국산이 차지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가 UHDTV 시장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UHD로 가는 큰 흐름이 이미 형성됐다는 이야기다. 서둘러 변화를 따라잡지 않을 경우 중국에 이 거대한 시장을 그대로 내주게 된다는 조바심 섞인 우려도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단순히 화질 개선 뿐만 아니라 전송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UHD 방송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UHD 방송으로 가려면 실험방송을 내보낼 주파수 대역이 필요한데 그래서 최소 54MHz 폭이라도 빌려달라는 읍소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판단에는 난시청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지상파 플랫폼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TV 전환과 함께 압축방식을 현행 MPEG2에서 MPEG4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HEVC로 간다는 계획이다. 압축효율이 높아져서 훨씬 좋은 화질로 내보내면서도 다양한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 차장에 따르면 HD방송에서는 2HD 또는 1HD와 3SD의 다채널 서비스(MMS)가 가능하지만 HEVC 압축방식에서는 1UHD 또는 4HD로 채널을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이 차장은 “일부에서는 주파수를 줘도 UHD 방송을 못 할 거라고 하는데 주파수가 없으면 정말 못 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케이블 방송사들이 UHD 실험방송을 한다고 하는데 콘텐츠도 없는데 뭘 갖다 틀 건가, 벌써부터 해외에서 UHD 콘텐츠를 수급하러 다니느라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UHD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 차장은 “어차피 지상파 직접 수신비율은 5%도 채 안 되지 않느냐,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만들어도 케이블이나 IPTV 등 유료방송을 통해 보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건 가봐야 안다, 현재로서는 UHD 콘텐츠를 유료방송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지상파 방송사들의 일치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자신감의 이면에는 UHD 전환과 함께 직접 수신비율을 끌어올려 유료방송 플랫폼과 정면으로 승부한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

이 차장은 “통신사들에게 주파수는 더 있으면 좋은 욕망의 대상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700MHz는 지상파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기회”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차장은 “통신사들은 이미 주파수가 남아도는 상황인데다 주파수가 부족하면 2G 주파수를 반납해 다시 활용할 수도 있지만 지상파는 700MHz 대역 이외에는 가용 주파수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2025년까지 UHD 콘텐츠에 7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CJ 계열 케이블 채널들이 콘텐츠를 잘 만든다고 하지만 이 정도 투자를 흉내낼 수 있느냐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지상파 방송사는 신규 편성 비율이 80%에 이르는데 CJE&M은 19% 수준이다. 콘텐츠 수출은 지상파가 전체 케이블 채널보다 15배나 많은데 수입은 케이블 채널들이 35배나 많다는 사실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에 힘을 보태준다.

이 차장은 “당장 필요한 건 최소 66MHz 폭이지만 54MHz 폭만 빌려주면 나머지는 다른 데서 찾아서라도 UHD 전환을 준비할 수 있다”면서 “700MHz 주파수가 있어야 비로소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때 방송 주파수를 통신에 내줘서는 안 된다는 강경했던 입장에서 “절반만 잠깐 빌려주면 더 많이 돌려주겠다는 수세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그만큼 지상파 방송사들의 위기의식이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박진우 KBS 미디어정책부 부장은 “지금 700MHz 주파수가 경매에 나오는 게 통신사들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주파수를 서로 못 가져가게 베팅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치솟고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상진 차장은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주파수를 확보하고 있으면 앞으로 있을 다른 주파수 경매에서 경매 대금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차장은 “통신사들은 트래픽이 급증한다고 엄살을 떠는데 늘어나는 트래픽은 음성이 아니라 데이터고 데이터 트래픽의 상당 부분이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차장은 “방송사가 UHD 방송을 못하는데 통신사가 할 수 있겠느냐”면서 “특히 우리나라는 한국에서 만든 한국 언어로 된 콘텐츠가 유통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UHD 콘텐츠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직접 수신비율이 10%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은 밑바닥이고 보도 부문도 오히려 JTBC가 가장 낫다는 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주파수 추가 할당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게 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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