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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에게도 기초연금을? 국민들 정서가 수용 못한 측면도.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24, 2013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전환해 연금 급여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선거 공약이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2017년까지 소득 하위 노인 80~90%에게 월 18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과 달리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10개월 뒤 박 대통령은 입을 싹 닦고 있다.

오는 26일 발표될 기초연금 최종안은 만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에게 최대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거나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차감 지급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국민연금 전체가입자의 평균 소득월액 3년 평균의 5%를 지급한다. 9월 기준으로 소득 83만원 이하 노인에게 최대 9만6800원이 차등 지급되는데 이걸 20만원까지 늘리는 수준에서 타협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언론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크게 엇갈린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과도한 복지공약을 손보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인 반면 진보 성향 신문들은 무책임한 공약 포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경기불황과 세수부족이라는 현실에 벽에 막혀 차선책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며 출구전략을 권유하고 있다. 한겨레는 “결국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도 모르고 화려하게 공약만 남발한 무책임한 대통령이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구체적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재정 부담만 늘리는 선심성 복지 공약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대선 공약에만 발이 묶여있어서야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21일 사설에서 “대선 때 제시했던 공약 중 실현 가능성이 낮은 건 인수위 단계에서 포기하는 게 묘책”이라면서 “약속이란 이유로 끌고 가다간 나중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공약 포기를 주문한 바 있다.

통계청 인구 추계와 참여연대의 계산을 종합하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초연금 최종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소득 상위 30%는 기초연금 대상에서 아예 배제된다. 내년 기준으로 191만6000명 정도다. 소득 상위 30~50% 구간, 127만7000명은 지금 받는 것과 똑같이 받게 된다. 50~70% 구간 127만7000명은 5만원 정도가 늘어나게 되는데 당초 공약 보다는 5만원이 줄어든 셈이다. 소득 하위 30%만 공약대로 2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는데 191만6000명 정도다.

결국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기초연금 최종안은 전체 노인 638만6000명 가운데 하위 30%, 191만명에게만 약속을 지키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애초에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두 배 인상하기로 돼 있기 때문에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전환해서 차등지급하게 되면 현재 50세 이하 청장년 인구 가운데 40% 정도는 오히려 연금이 삭감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는 ‘선거 사기’에 해당한다”면서 “지킬 계획도 의지도 없이 대통령직을 쥐기 위한 ‘대국민 사기’ 행위”라고 비난했다. 오 위원장은 “재벌회장에게도 기초연금을 제공하고 그의 능력에 맞게 세금을 내라하는 게 복지국가의 기본 원리”라면서 “기초연금 공약을 파기하는 방안을 발표할 경우 거대한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위원장은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기초연금 최종안은 노인을 소득과 재산에 따라 나누고 차등지급하는 ‘선별주의’ 기초연금일 뿐”이라면서 “기초연금을 하위 70%에게만 지급하고 지급액도 급여율 5~10%로 차등한다면, 지금 40~50대 국민이 65세가 넘어 기초연금을 받게 될 경우 박근혜정부의 기초연금방안 때문에 오히려 기초연금액이 줄어들게 된다”고 비난했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전체 노인가구 가운데 중위소득 이하 상대적 빈곤층이 86.9%인데 공약대로 모든 노인들에게 20만원씩 지급하면 80.6%로 줄어들지만 차등지급을 하면 86.5%로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안은 국민연금 성실 가입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겨 국민연금의 근간을 크게 훼손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여러 가지 안이 있는데 그 가운데 최악의 안은 상위 30%를 제외하고 차등화하되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안”이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같은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준다는 공약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만 가능하면 수혜범위와 수혜액수를 늘리는 게 좋다”면서 “국민연금을 많이 낼수록 손해를 보는 방식은 정말 문제가 많다”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국민연금과 연계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국민연금 말고는 다른 소득이 없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홍 소장은 “상위 20~30%를 제외하는 것이 재정부담을 크게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위 30%는 최대 10만원까지 추가 지급을 해야 하지만 상위 30%의 경우는 20만원을 신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는 “소득 상위 30% 노인들 가운데 국민연금 미가입자들을 제외하고 하위 77% 정도의 노인들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가 내놓은 대안은 부자 노인들 가운데 국민연금 미가입자들을 차별하는 방안이다. 김 교수는 “의외로 국민들도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준다는 데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과 연계는 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을 많이 납부하면 할수록 기초연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면서 “지금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최종안은 당초 인수위 안보다 크게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민주당 공약도 하위 80%가 대상이었고 국민들도 모든 노인들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 “다만 수혜대상과 지급기준을 정하는 합리적인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최근 언론에서 거론되는 최종안을 강행할 경우 증세와 복지 축소 가운데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국민행동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기초연금은 당초 공약과 달리 저소득 빈곤 노인 일부에게만 지급되는 공공부조 형태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선 때 국민과 약속했던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정부안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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