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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고 TV 봐라? 방통위와 미래부의 음모를 폭로합니다.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22, 2013

어릴 적 아버지가 옥상에 올라가셔서 TV 안테나를 손보시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내 안테나를 이리저리 맞추거나 TV 수상기를 탁탁 두들기면서 방송을 잡던 그런 기억도 있을 겁니다. 요즘은 그렇게 TV를 보는 집이 거의 없죠. 지상파 직접 수신비율은 공식적으로 7%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2~3% 수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유료방송에 가입해서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 받고 있다는 이야기죠.

지난해 말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이후 안테나만 달아도 TV를 아주 깨끗한 화질로 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들 어릴 적과 다릅니다. 웬만큼 큰 창문이 있는 아파트는 실내 안테나만으로도 선명하게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습니다. 난시청 지역도 많이 줄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이후 지상파 커버리지가 95.8%까지 올라갔습니다.

아파트와 빌라 등의 공동주택에서 공시청 안테나 설치가 의무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상파 방송만 보고 싶다면 케이블을 끊고 공시청 안테나를 연결해 달라고 관리 사무소에 요청하면 됩니다. 보통은 공시청 단자가 집집마다 내려와 있죠. 아파트에서 단체로 케이블에 가입하는 경우도 많은데 한 집이라도 반대하면 그 집은 지상파를 직접 수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은 공기나 바람처럼 공짜입니다. 누구나 TV를 사서 안테나만 달면 방송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월 2500원씩 TV 수신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 누구나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방통위나 미래부는 직접 수신비율을 높이는 데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유료방송 시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국민들도 돈 내고 TV 보는 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문제는 지상파 채널이 KBS1, 2와 MBC, SBS(지역민방), 그리고 EBS까지 5개 밖에 안 된다는 거죠. 케이블을 달면 수십개, 위성방송을 달면 수백개의 채널을 볼 수 있죠. YTN도 나오고 종합편성채널도 나오고 CJE&M 계열의 tvN이나 엠넷 등도 나옵니다. 영화 채널도 나오고 바둑이나 골프 채널도 나오고요. 지상파는 심심하고 케이블을 달아야 그나마 이것저것 볼 게 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많으시죠?

지상파 방송사들은 다채널 서비스(MMS)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 이후 주파수 효율이 높아져서 과거 1개 채널만 내보낼 수 있었던 주파수 대역을 쪼개서 최대 4개까지 채널을 내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인데요. 방통위와 미래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멀쩡히 남는 주파수를 놀리고 있는 셈인데요. 방통위와 미래부는 공짜 방송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반면 케이블이나 IPTV 등 유료방송들에는 특혜를 쏟아 붓고 있습니다. 케이블에는 클리어쾀이라고 저가 디지털 케이블 상품을 허용할 계획이고 종편 채널을 위해서는 8VSB 전송 방식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KT에는 DCS라고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의 위성방송 채널을 IPTV처럼 전송하는 결합상품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한 마디로 싼 값에 화질 좋게 볼 수 있게 해줄 테니까 군말 말고 계속 돈 내고 봐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MMS가 시작돼서 공짜 채널이 20개 이상으로 늘어나고 케이블을 끊고 직접 수신비율이 높아지는 겁니다. 돈 내고 보던 사람들이 공짜 방송으로 옮겨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클리어쾀이니 8VSB니 DCS니 등등을 요구하고 또 허용해 주려고 하는 겁니다. TV를 보려면 (TV 수신료 외에도) 돈을 내야 한다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됐을까요.

간단하게는 TV(수상기)를 팔 때 안테나를 끼워 팔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유료방송 가입이 기본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소득 계층에게 생색이라도 내듯 클리어쾀 가입을 권유하기 전에 지상파 직접 수신을 제안해야 합니다. 직접 수신 비율을 높이고 음영 지역을 줄여나가라고 지상파 방송사들을 압박하는 게 우선입니다. 정부 차원의 홍보도 필요하겠지만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면 MMS 도입도 더 미뤄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돈 되는 사람들은 유료방송을 알아서 보도록 하고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국민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적당히 케이블이나 IPTV 사업자들에게 재송신 수수료나 챙길 생각을 하지 말고 직접 수신 비율을 높이는 게 중장기적인 생존 과제라고 생각하고 수신 환경 개선을 고민해야 합니다.

돈 내고 TV 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TV 수신료를 내고 있으니까요. 지상파 직접 수신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볼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포기할 게 아니라 MMS를 도입해서 무료 지상파 채널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지상파를 죽이고 유료방송을 키우려는 방통위와 미래부의 음모에 맞서야 합니다. 몇 천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상파라는 공공재를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 와중에 콘텐츠 판매에 맛을 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케이블이나 IPTV 업체들에게 받는 재송신 수수료가 짭짤하기 때문이죠. 정작 직접 수신을 하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방송을 보고 그게 광고로 연결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텐데요. 지상파 방송 시청 점유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적으로 지상파도 프로그램 프로바이더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물론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공재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심히 의문이지만 콘텐츠와 플랫폼을 구분해서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 콘텐츠가 엉망이니까 플랫폼까지 무너뜨려도 되는 건 아닙니다. 플랫폼을 살려야 그나마 콘텐츠를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방통위와 미래부의 방송통신 정책의 근간에는 단순히 유료방송 시장 키우기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 죽이기라는 기득권 세력의 음모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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