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끝난 대북송금 사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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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일 대북 송금 사건의 키맨으로 불렸던 김영완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김씨는 2000년 2월 남북 정상회담 직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돈을 받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아왔다. 검찰은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정몽헌 회장이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금 출처로 지목된 현대상선 미국법인 계좌추적 결과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10년을 끌어왔던 대북 송금 사건 수사가 일단락됐다.

2003년 6월의 일이다. 대북 송금과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때문에 법조 출입 기자들은 이틀이 멀다하고 기자실에서 뻗치기를 해야 했다. 소환돼 온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 두세 시에나 나오곤 했다. 한 마디라도 받아내려고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뜨거웠던 여름의 어느 날, 재판을 받으러 왔던 고 정몽헌을 우연히 맞닥뜨렸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죽음을 예감했다.

정몽헌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법원 쪽문 앞이라 마침 주변에 기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나는 집요하게 캐물었다. “박지원 전 장관은 자금 지원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요.” 정몽헌은 고개를 가로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재판에서 정몽헌은 “반성하고 있으니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 새벽 계동 현대 사옥 회장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유서를 남겼다.

대북 송금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흥미로운 사건 가운데 하나다.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1억달러가 건너간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다만 김대중 정부는 그 1억달러를 정책 지원금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그 돈을 비공식적인 경로로 현대그룹이 지불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현대그룹은 산업은행에서 4억5000만달러를 대출 받아 북한에 보냈는데, 그 가운데 1억달러가 정부가 보내기로 했던 정책 지원금이었다. 대출 경위나 과정이나 모두 수상쩍었다.

대북 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현대 비자금 사건이 터져 나왔다. 현대그룹에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받았다는 돈이 3000만달러와 200억원, 박지원이 받았다는 돈이 150억원이다. 그 돈을 이들에게 건넸다는 사람이 김영완이다. 권노갑은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실형을 살았고 박지원은 무죄 판결이 났다. 검찰은 3000만 달러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 200억원에 대해서는 김영완이 단순 전달자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하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김영완이 보관하고 있던 121억원의 출처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은 정몽헌에게 150억원을 받아 김영완을 통해 박지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영완은 “이 돈의 주인은 박지원이고 나는 보관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으나 박지원은 부인했다. 결국 지난 2월 검찰이 121억원의 주인을 찾는다는 공고까지 냈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 돈은 국고로 환수됐다.

그해 10월에는 승용차로 200억원을 실어 나를 수 있는지 현장 검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익치의 주장에 따르면 승용차로 다섯 차례 돈을 나눠서 실어날랐다. 권노갑의 변호인들은 승용차에 현금을 40억원씩 싣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트렁크가 주저 앉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검찰이 직접 은행에서 실제로 200억원을 빌려서 라면 상자에 넣고 달려봤더니 잘만 달리더란 결론이 나왔다.

200억원이면 1만원권 지폐 200만장, 100만원씩 묶으면 2만다발이다. 라면 상자 하나에 차곡차곡 잘 쌓으면 200다발이 들어간다. 헌 돈 1억원의 무게가 12kg이 넘으니까 한 상자의 무게는 25kg 정도. 200억원이면 모두 100상자, 2.5톤 트럭 한대를 가득 채울 분량이다. 다섯 차례에서 걸쳐 나눠서 날랐다면 한 번에 스무 상자씩 500kg, 이 정도면 충분히 승용차로 나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검찰이 디테일에서 이겼고 권노갑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북 송금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우선 이 사건의 최초 폭로가 미국 의회 보고서였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의도적으로 6·15 남북 공동선언의 가치를 훼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1억달러는 과거 러시아나 중국 등과 수교하면서 지원했던 돈에 비교하면 그리 큰 돈은 아니다. 정부가 굳이 현대그룹을 시켜서 몰래 송금을 해야 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현대그룹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줄 테니 1억달러를 더 받아서 북한에 보내라는 제안을 한 사람이 박지원이다. 이익치는 권노갑과 박지원에게 돈을 건넸다고 했는데 권노갑은 유죄가 인정되고 박지원은 인정 안 됐다. 둘 다 증언만 있을 뿐 물증은 없다. 이익치와 권노갑, 박지원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익치와 김영완이 짜고 배달사고를 일으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익치가 법정에서 정몽헌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던 것도 쉽게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익치는 “왜 정몽헌의 빈소에 가지 않았느냐”는 권노갑 변호인의 질문에 “개인 사정상 빈소에는 가지 못했지만 나중에 산소를 찾아 성묘를 했다”며 울먹였다. “평생 몸종으로 살았다”던 이익치는 주군을 배신하고 물귀신처럼 권노갑과 박지원까지 끌고 들어갔지만 정작 검찰은 공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익치를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김영완 수사가 10년이나 걸린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김영완은 대북송금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3년 3월 출국했다가 2011년 12월에서야 입국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영완은 기소중지 상태였는데 검찰과 사전 협의 없이 귀국하지 않았을 거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동안 검찰이 김씨의 거주지를 확인하고도 범죄인 인도 요청이나 강제 소환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스위스 은행에 입금했다는 3000만달러에 대해 증거 불충분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정몽헌은 죽기 직전 검찰에서 “김영완이 알려 준 권노갑의 스위스 계좌로 현대상선 자금 3000만달러를 입금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도피 9년 만에 귀국한 김영완의 진술만 듣고 스위스 계좌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무책임한 결론을 내렸다.

정몽헌은 죽었고 권노갑과 박지원, 그리고 김영완까지 모든 재판과 수사가 끝났다. 이로써 대북 송금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이 숱하게 남아있다. 김영완이 사건의 실체를 푸는 키맨이었지만 검찰은 결국 면죄부를 줬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사건이었지만 검찰은 사건의 본질이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검찰이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지에 집중하면 사라진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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