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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의 마법, 야근수당 50% 더 줘도 회사가 이익인 이유.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2, 2013

“아침 5시~5시 30분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 이렇게 한 달을 일하고 받는 돈은 117만2000원. 회사 쪽 주장에 따르면 여기에는 상여금 400%와 식대 8만원도 포함돼 있단다. 시급 3800원 수준으로 법정 최저임금보다 1000원이 적다.” 한국전력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권리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민규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저임금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하지 않는 한 통상임금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통상임금 관련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송에서 얼마나 끝내주는 논리를 주장하느냐, 이 소송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동참시키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저임금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통상임금은 휴일이나 야근수당, 퇴직금 등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연장근무를 하거나 휴일근무, 야간근무를 할 때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지급받아야 한다.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야근수당 등도 늘어나게 된다. 지난 3년 동안 미지급 분을 포함해 추가근무 수당을 다시 계산하면 기업 부담이 최대 38조원 늘어날 거라는 추산도 나와 있다.

짚고 넘어갈 대목은 한국전력 청소 노동자들처럼 아예 상여금을 받지 못하거나 상여금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임금을 오히려 깎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통상임금 소송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오 위원은 이렇게 반문한다. “정기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하는 사업장이 많을까, 아니면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마다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해서 법 위반을 피하는 사업장이 더 많을까.”

이창근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통상임금의 산정범위를 둘러싼 법리적 논쟁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저임금 체제가 있다”면서 “자본은 시간외노동에 대한 대가를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않기 위해, 기본급을 낮게 유지하고,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확대하여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을 늘려왔다”고 지적했다. “기본급 비중이 낮기 때문에, 연장근무와 휴일 특근 등 시간외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전국금속노동조합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나 한국GM 등 생산직 노동자들은 기본급이 150만원 수준밖에 안 된다. 정규직 15년차도 시급이 7000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전체 임금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29%와 35% 수준인데 연장근무와 휴일근무 등 시간외 근로수당 비중이 각각 21%와 19%나 된다. 기본급 비중은 제조업 평균이 40% 수준, 전체 노동자 평균은 54% 정도다.

하루 8시간, 1주 40시간, 월 240시간을 일하고 기본급과 근속수당 등 170만원을 통상임금으로, 그밖에 상여금과 식대 등 130만원을 정기적 임금으로 받는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월급 300만원을 240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노동가치는 1만2500원인데, 통상임금 170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7083원 밖에 안 된다. 초과 근로에 가산수당 50%를 추가로 받아도 1만624원으로 시간당 노동가치에 못 미친다.

민주노총 법률원 신인수 변호사는 “사용자는 법정 노동시간에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보다 초과근무를 시키는 것이 더 이득이고, 노동자는 법정 노동시간보다 적은 대가를 받고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초과근로로 인한 비용이 법정 노동의 비용보다 낮기 때문에 사용자는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해 신규채용을 하기보다는 기존 인원의 초과 노동을 선호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창근 실장은 “수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값 싼 노동 체제가 각종 수당으로 점철된 기형적 임금체계를 낳았다”면서 “적정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시간외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시간 노동체제를 고착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결국 통상임금 논쟁의 본질은 한국 경제를 떠맡쳐 온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실질임금이 늘어날 경우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들 야근이나 특근을 줄이고 시간제 등 비정규직 고용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93.4%가 상여금을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33.8% 밖에 안 된다는 통계도 있었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는 “강성노조의 전리품”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10년 전, 주 40시간 근로제를 도입할 때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을 보전 받으면서 토요일에 쉬게 됐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이 줄어들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비정규직의 경우는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포괄임금제 등 근로기준법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관행을 시정하는 것과 함께, 최저임금을 현실화해서 저임금을 해소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오 위원은 지난달 30일 민주노총 토론회에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받게 될 체불임금의 절반을 미조직 조직화 투쟁 기금으로 내놓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오 실장은 “턱없이 낮은 기본급 구조가 문제라면 기본급을 전체 임금의 90% 이상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상여금이 750%나 된다. 이를 월할 62.5%씩 기본급에 반영하면 정규직 신입사원 1년차 시급이 5566원에서 9045원으로 오른다.

오민규 위원은 “박근혜 정부가 통상임금 소송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고 임금체계의 핵심인 연공급을 직무급제나 성과급제로 전면 개편하려는 총론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은 “당장 상여금부터 기본급으로 전환하고 기본급 대폭 인상, 기본급 비중 90% 이상, 종국적으로 기본급 100%화, 완전 월급제로라는 총론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주 48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540만명에 이른다. 초과 노동시간은 주당 5495만 시간. 이를 48시간으로 나누면 115만명을 추가 고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실장은 “통상임금 산정 기준이 바뀔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71만~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경총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팀장은 “경총 등에서는 최저임금과 별도로 지급하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존보다 적은 임금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억지 주장”이라면서 “오히려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보고 최저임금을 산정하되, 이를 감안해 추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체불임금(미지급 추가수당)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금-노동조건을 바꾸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이야기다.

이남신 소장은 “현재의 ‘슈퍼갑-슈퍼을’의 대립 구도를 ‘슈퍼갑-을연대’ 구도로 변환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노사의 문제가 아니라 슈퍼을과 미니을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로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 소장은 “정규직 노조가 장시간 노동체제를 용인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통상임금 논쟁을 넘어 최저임금 현실화와 기본급 확대를 쟁점으로 내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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