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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는 거들 뿐… CPND? 닥치고 플랫폼!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28, 2013

우여곡절 끝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게 됐다.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상했던 원안이 거의 그대로 수용됐다. 방송통신위원회 업무 가운데서는 유선방송사업자(SO)와 IPTV,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관련 업무가 통째로 미래부로 이관된다. 인·허가와 법령 제·개정에 방통위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방통위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단순히 통과의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당초 방통위가 구상했던 ICT(방송통신기술) 통합과 CPND 생태계 정책에도 구조적인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CPND란 콘텐츠(C)와 플랫폼(P), 네트워크(N), 디바이스(D)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융합하고 경쟁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가 쏟아져 나오고 플랫폼 경쟁이 심화되면서 콘텐츠 가치가 치솟고 장기적으로 네트워크의 가치도 부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동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CPND 생태계를 수직적으로 통합해 가장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CPND 생태계가 결국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될 거라는 이야기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SO를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경쟁이 심화되고 있지만 먹으면 크게 먹는다”는 말로 플랫폼 시장의 경쟁 구도를 정리한다. 플랫폼을 장악하면 다양한 디바이스에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한 디바이스에 한 가지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N스크린 환경이 자리를 잡으면서 교차 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애플이 운영체제 iOS를 기반으로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아이패드, 아이맥, 맥북 등에 동일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이 디바이스 중심으로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다면 구글은 온라인에서 구축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모바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에 동시에 들어가면서 두 회사의 스마트TV에도 들어간다. 구글의 광고 비즈니스는 당연히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도 작동한다. 삼성전자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구글의 벽을 넘지 못했다.

플랫폼 경쟁의 핵심은 수직적 통합이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운영체제 점유율은 안드로이드가 75.1%, iOS가 14.9%로 압도적인 구글의 승리지만 앱스토어의 수익성은 애플이 구글의 4배 규모다. 후발 주자인 아마존 앱스토어의 수익성이 구글의 3배가 넘을 정도다. 애플이 폐쇄적인 플랫폼 정책으로 콘텐츠와 디바이스의 수직적 통합을 이룬 반면, 구글은 그 결합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국내 상황은 훨씬 더 긴박하다. 애플과 구글이라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가운데 포화상태에 이른 유료방송 시장에서 처절한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완료됐지만 직접 수신 비율은 10% 남짓. SO들은 케이블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고 통신사들은 IPTV로, 삼성전자 등은 스마트TV로 같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를 앞세운 KT의 공세가 위협적이다.

미래부는 ICT 진흥이라는 명분으로 방통위가 틀어쥐고 있었던 규제를 무더기로 풀 가능성이 크다. CJ헬로비전에게는 점유율 규제 완화, CJE&M에게는 매출 규제 완화, KT에게는 위성방송과 결합 상품 허용, 지상파 재송신 분쟁도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실시간 재송신이 마지막 경쟁력이지만 그마저도 뉴스나 스포츠 이벤트 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종합편성채널의 선전도 주목할 만하다. 여전히 낮은 시청률이지만 종편 출범 1년 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O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홈쇼핑 수수료 시장이 IPTV 기반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방 사수가 줄어드는 속도 이상으로 드라마 다시 보기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수평적 통합과 수직적 통합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헤게모니 구도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래부가 풀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지상파 재송신 수수료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해까지 280원 정도를 받아왔는데 400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향후 모바일 TV가 확산될 경우 모바일에도 비슷한 수준의 수수료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협상력을 쥐고 있지만 플랫폼 주도권이 SO나 통신사들로 넘어가면 헤게모니 구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확보하고 있는 700MHz 대역 주파수의 향방도 관건이다. 디지털 전환 이후 유휴 대역으로 남아있는 황금 주파수 대역, 통신사들이 이 주파수 대역을 가져가면 단숨에 CPND 생태계의 판도를 뒤집게 된다. 통신사들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플랫폼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방송이 통신에 종속되고 최악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들은 수많은 PP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SO가 핵심인 것처럼 비춰졌지만 박근혜 정부의 미래부 구상에는 방송과 통신을 융합, CPND 생태계의 헤게모니 재편을 주도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O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SO까지 쥐고 있어야 통째로 판을 흔들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미래부 출범을 SO들이 선뜻 반기지 않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SO는 거들 뿐, 메인은 IPTV라는 이야기다.

미래부의 구상은 삼성전자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KT가 트래픽 과부하를 이유로 스마트TV 접속을 차단했을 때 “이런 식이라면 국내에서 스마트TV 사업을 접겠다”고 공공연하게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플랫폼 시장에 미련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애플과 구글의 공세에 맞서 국내에서라도 입지를 구축해야 해외 진출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SO와 통신사들의 헤게모니 경쟁이 삼성전자에게는 어부지리가 될 수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가 예측한 것처럼 최악의 상황은 미국처럼 미디어 플랫폼이 거대 자본에 종속돼 공영방송이 무너지고 뉴스가 사라지고 값싸고 선정적인 예능과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시대로 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밀어붙였던 미디어법이 비로소 완성되는 셈이다. 시장이 확대되고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겠지만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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