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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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앵커)> ‘좋은 아침 김윤주입니다’ 토요일 첫 순서는 ‘숫자로 본 한 주간’입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잡니다.

이정환(미디어오늘 기자)> 안녕하세요?

김> 이번 한 주간을 상징하는 숫자는 뭡니까?

이> 숫자 111입니다.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이 최종 부도가 났죠. 용산에 지으려던 랜드마크 타워 트리플 원의 높이가 111층, 620미터였습니다. 왜 111층이 됐는지도 그 사연도 가슴이 아픈데요. 원래 100층으로 짓기로 했다가 코레일(철도청)이 한국 철도 111주년을 맞아 111층으로 높이자고 했다는 겁니다. (트리플 원이라는 게 1이 세 개라는 말이죠.) 그만큼 구체적인 사업성 분석 없이 적당히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겁니다. 이왕이면 높은 게 좋다고요.

김> 결국 첫 삽도 못 뜨고 실패했지만 다 지었으면 세계 2위가 됐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 네. 세계 1위는 두바이의 버즈칼리파, 128층에 828m 높이입니다. 마천루의 저주, 초고층 빌딩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skyscraper curse라고 하는데요. 독일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가 만든 개념입니다. 초고층 빌딩을 짓고 난 다음에 망하는 나라들이 많다는 건데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짓고 났더니 대공황이 오더라는 겁니다. 102층에 381미터. (1973년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됐죠.) 뉴욕에서는 이 건물을 짓기 전에도 월드스트리트빌딩과 크라이슬러빌딩 등 고층 빌딩 짓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짓기 시작한 건 1929년, 대공황은 1928년에 시작돼서 1933년까지 계속됐습니다. 이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는 이미 불황이 본격화할 때였다는 겁니다. 정작 입주자가 없어서 엠파이어스테이트가 아니라 엠프티 스테이트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텅텅 비었다는 의미죠.

김> 초고층 빌딩과 불황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이> 경기가 순환하니까요.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과잉 생산이 주기적으로 불황을 불러오는데, 경기 고점에서 돈이 많이 풀리고 부동산도 오르고 주가도 오르고 하니까 더 높은 건물을 짓게 됩니다. 그래서 짓기 시작해서 완공이 되면 경기 저점에 이르러 불황이 시작되는 겁니다. 건물은 텅 비게 되고요. 초고층 빌딩 자체가 위기의 원인은 아니지만 거품의 징후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과시적이면서도 모험적인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다는 자체가 거품이 꺼질 때가 됐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 사례가 좀 더 있나요.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의 버즈칼리파, 162층에 828미터인데요. 이게 원래 이름은 버즈두바이였죠. 2009년 10월 완공됐는데 개장도 하기 전에 금융위기가 닥쳐서 아부다비에 팔리게 되죠. 아부다비의 왕 이름을 따서 버즈칼리파로 이름이 바뀝니다. 버즈칼리파 이전에 가장 높은 건물은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였는데 1998년 이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대만의 타이페이 금융센터도 건물을 짓는 도중에 IT(정보기술)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 침체를 맞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1973년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완공했을 때도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를 뒤흔들어놓았습니다.

김>이 정도면 정말 저주라고 할 만 하네요. 우리나라도 고층 빌딩이 많이 들어섰죠? 짓고 있기도 하고요.

이> 63빌딩이 몇 위일까요. 9위입니다. 1위는 송도 동북아무역타워, 68층 305미터고요. 2위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두산 위브 제니스 아파트입니다. 무려 80층. 300미터나 되고요. 역시 해운대의 아이파크 마리나 타워가 72층, 292미터입니다.

김> 여의도의 IFC(국제금융센터)도 63빌딩보다 높죠?

이> 층수는 55층 밖에 안 되는데, 높이는 292미터입니다. 63빌딩은 249미터고요. 문제는 IFC의 경우 건물이 32층과 29층, 55층, 3개 동인데 먼저 지은 1동만 들어찼고 나머지 두 동은 텅텅 비어있다는 겁니다. 덕분에 여의도 전체 공실률이 10%를 훌쩍 웃돌게 됐고요. 임대료도 낮아졌습니다. 여기에도 올해 말 50층짜리 전경련회관까지 완공되면 텅 빈 사무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지금 짓고 있는 건물들도 높이가 상당한데요.

이> 100층이 넘는 건물이 수두룩합니다. 짓고 있거나 지을 계획인 것만 12개인데요. 세계적으로 100층이 넘는 건물이 10개도 채 안 되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 이렇게 많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실 제2 롯데월드는 555m 123층 규모로 저층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뚝섬에 110층 빌딩 건설 프로젝트 추진하고 있고요. 한국전력공사도 삼성동 본사 부지에 114층 빌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암DMC 랜드마크 타워는 133층 640m 목표로 설계를 하고 있고요. 아마 용산역세권개발이 중단되면서 상당 부분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우리나라에서도 마천루의 저주가 나타날까요.

이>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의 경우, 착공도 하기 전에 저주가 닥친 건데요.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면서 31조원짜리라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자본금이 1조원 밖에 안 됐습니다. 일단 금싸라기 땅을 갖고 있으니 빚을 내서라도 일단 짓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겁니다.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였던 건데요. 문제는 일을 너무 크게 벌렸다는 겁니다. 건설 회사들도 겁이 나니까 하나 둘씩 빠져나갔고요. 결국 이자 52억 원을 못 막아서 부도처리가 났습니다. 만약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없었다면 좀 더 빨리 건물을 짓고 더 빨리 위기가 닥쳤을지도 모릅니다.

김> 제2 롯데월드는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에 세계적인 랜드마크 타워를 건설하는 게 남은 인생의 꿈”이라고 했다고 하죠. 123층, 555미터짜리 초대형 프로젝트죠. 회장 개인의 욕심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은데, 벌써 공정률이 25%가량으로 123층 가운데 33층이 올라간 상태입니다. 기둥에 균열이 있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건축학회 조사에서는 메가 기둥에서 발생한 균열의 깊이가 12.87~53.53㎜로, 철근의 설계 피복두께(75㎜) 이내라서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성남 서울공항이 근처에 있어서 항공기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도 있었죠. 서공항의 동편 활주로의 직선 항로가 이 건물과 1.1km 거리입니다. 199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보잉 747기가 아파트에 부딪혀 탑승자 전원과 주민 39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김> 랜드마크를 만드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 많은 사무실과 아파트에 다 누가 들어가 살까 싶기도 하고요.

이> 초고층 빌딩과 초호화 빌딩은 공사비가 일반 건물에 비해 1.5~2배가량 더 듭니다. 7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은 공사비가 일반 건축물에 비해 30% 이상 더 든다. 100층 이상의 경우는 여기에 30%가 추가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당연히 임대료도 높고요. 경기가 좋을 때는 부의 상징이 되겠지만 경기가 꺼지면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바벨탑을 연상하게도 합니다. 중국과 인도, 중동에서 경쟁적으로 높이 짓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 완공 예정인 쿠웨이트의 부르즈 무바라크 알 카비르는 인류 건축 역사상 최초로 1000m가 넘는 1001m 높이가 됩니다. 중국은 2017년까지 초고층 빌딩 141개를 건설할 예정입니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캐피털은 “현재 세계 최대 마천루 건설국인 중국의 자본 배분이 잘못되어 있다. 경제 조정이 임박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김> 오늘은 숫자 111.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던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 랜드마크 타워로 건설될 예정이었던 트리플 원의 층수, 그리고 초고층 빌딩의 저주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숫자로 본 한 주간’,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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