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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미생’, 장그래가 말하지 않는 것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10, 2013

웹툰 ‘미생’의 첫 장면은 충격적이다. 그 충격은 이 웹툰의 줄거리 전반을 지배한다. 어려서 바둑 신동이라 불렸던 장그래.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아버지는 장그래에게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어머니는 이창호와 이세돌의 바둑 랭킹과 상금 액수를 스크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그래는 프로기사로 입단하는 데 실패한다. 바둑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장그래는 그렇게 세상에 떠밀려 나오게 된다. ‘미생’은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의미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 집 차이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함께 바둑을 배웠던 연구원의 다른 동기들은 입단에 성공했다. 도망치듯 군대에 다녀온 장그래에게 두 번째 취업한 회사는 생존의 마지막 수단이다. 회사에서도 밀려나면 이제 더는 갈 곳이 없다. 짐을 싸는 장그래에게 그들이 묻는다. “정말 그만두려고? 지금까지 해온 게 있는데?” 장그래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난다. “내 눈에 비치는 세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푸르고 높던 하늘과 초록의 나뭇잎과 생기 넘치는 거리가 잿빛으로 변한 것 뿐이다.”

‘미생’은 ‘회사덕후’들의 이야기다. 좋게 말하면 성실한 직장인들이고 좀 심하게 말하면 워커홀릭(일 중독자)들이고 좀 더 시니컬하게 말하면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 이외에 다른 삶의 전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출근하는 장그래는 중얼거린다. “나만 아직 꿈속인가.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세상에 나온 장그래는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 나간다. 사람들이 이 웹툰에 열광하는 건, 결국 우리는 누구나 장그래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웹툰”이라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 나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회사 생활을 할 때가 있었는데 하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프로패셔널의 세계, 냉혹한 적자생존의 사회는 저렇구나 하는 반응도 있다. ‘미생’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 경쟁을 미화한다. ‘미생’이 불러일으키는 반성과 동경이 뒤섞인 기묘한 감정은 이 정교하고 세밀한 웹툰이 현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훈현 9단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 없이 그래도 나에겐 전부인 바둑.” 누군가가 조 9단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조 9단의 대답은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장그래는 혼잣말을 한다. “내 일이니까, 나에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나에게 허락된 세상”이란 건 군대에서 돌아와 다시 직장을 얻은 장그래가 했던 말이다. “다시는 바둑처럼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밝혀야 할 불빛이 있다면 책임질 겁니다. 내게 허락된 불빛이 있다면요.” 장그래가 말하는 그 불빛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안다. 장그래가 김동식 대리에게 야단을 맞고 밤을 새워 보고서의 문장을 고치고 고치다 잠이 드는 그런 비슷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했을 테니까.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침에 남들처럼 출근해서 자리 잡고 일할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소중한 일인지, 많든 적든 달마다 꼬박꼬박 월급봉투를 받아 생계를 꾸리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래서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절박한 심정을 우리는 모두 안다. 그래서 장그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조마조마 애를 태우고 장그래의 작은 성공에 함께 열광한다.

이 평면적인 웹툰에서 가장 도드라지고 입체적인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횡령 혐의로 감방 신세를 지게 된 박종식 과장이다. 요르단과 1억2000만달러 계약을 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박 과장은 남들보다 앞서 승진한 뒤 아등바등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갑자기 회사 생활이 심드렁해진다. “모든 절차와 과정이 시시해 보이고 답답해 보였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저리 바쁜 척들인지. 우습지도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박 과장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성취중독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박 과장은 일찌감치 이 조직을 움직이는 동력을 간파한다. “재미없네. 시발. 돈은 니들이 다 처먹고 난 월급이나 받아 가면 땡이냐.” 결국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됐지만 ‘미생’이 은폐하고 있는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박 과장의 퇴출은 성실하게 일하는 자가 비도덕적인 자를 징벌하는 권선징악, 조직의 질서를 건드리지 말고 시키는 대로 일만 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의문은 장그래에게도 유효하다. 장그래가 오래 살아남아서 언젠가 “사탕이 너무 달다”고 탓하는 그런 임원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임원이 되면 나처럼 임원이 되길 꿈꾸던 다른 누군가가 도태될 텐데? 가뜩이나 장그래는 고졸에 계약직 사원이다. 장그래는 거대한 기계 부속처럼 열정의 내구연한이 다하면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미생’은 생존경쟁을 미화하면서도 정작 노동의 소외를 들여다 보는 문제의식이 없다.

‘미생’의 사람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외국 나갔다가 돌아올 때 비행기가 서울 한 바퀴를 빙 돌고 내리잖아. 아, 그때 그 감동은 정말 대단해.” 그런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생존의 과정은 혹독하다. 복사기 앞에서도 딴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복사하는 거 보면 신입들 태도 딱 나온다고. 먼 산 보는 놈이 있는가 하면 그 사이에도 복사하며 읽는 놈, 복사만 시켜 봐도 사람을 안다잖아. 저 친구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 아냐.”

“노동은 모든 인간 문명의 토대다.” 제레미 리프킨의 말이다. 그런데 앙드레 고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폴 라파르그는 심지어 “노동은 신성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노동자들이 경제학자들의 헛소리를 믿고 노동이라는 괴물에 몸과 마음을 바치면서 산업사회의 위기를 만드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대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성과사회에 내재된 시스템의 폭력이 심리적 경색을 야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테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집단 우울증도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긍정성의 과잉 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미생’과 ‘피로사회’를 동시에 관통하는 주제는 성과사회와 자기착취, 그리고 피로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다. 이러한 자기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일 중독 벗어나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돈벌이 경제의 패러다임이나 자원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는 엉터리 가설, 그리고 경쟁력만이 살 길이며 생산성 향상이 모두가 잘 사는 길이라는 식의 이데올로기가 일상적 노동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강화된다. 그러나 이런 늘어난 생산성의 80%는 파괴적 생산성이다. 임금과 지위, 복지수준이 향상되더라도 진정한 삶의 질과 행복은 망가지게 돼 있다.”

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생’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일 중독 상태다. 일 중독자는 자신의 가치를 일에서 찾기 때문에 삶의 다른 측면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거나 존중하지 않는다. 갈수록 더 높은 성과를 내야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점점 더 목표를 높게 설정해 나가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기분이 어색해지거나 적응이 안 되며 불안과 고독, 자기 상실감, 심지어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장그래나 오상식 팀장은 물론이고 박 과장 역시 전형적인 일 중독자의 징후를 보였다. 요르단 사업을 성사시킨 뒤 박 과장에게는 성취동기가 사라졌다. 강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흔히 이런 경우 달콤한 소비중독의 세계가 비참한 일 중독의 세계를 절묘하게 은폐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한다. 사람과 공동체, 자연은 병들고 자본관계는 강화된다. 극단적인 경우, 박 과장처럼 범죄로 치닫기도 한다.

강 교수는 “자신의 깊은 내면과 자아가 진정으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지 못할 때, 내면적 안정감과 자율성을 상실했을 때, 내면의 솔직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다 큰 세계와 자신이 분리될 때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그런 두려움이 외적인 것에의 종속성과 중독성을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강 교수가 소개한 홀거 하이데 독일 브레맨대 교수의 노동중독의 다섯 가지 유형을 ‘미생’의 등장인물들에 대입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첫째는 중독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솔직한 느낌을 타자에게 숨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숨긴다. 그리하여 삶의 전 영역에서 진실성을 잃는다. 장그래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장그래는 상사의 칭찬 한 마디에 하늘을 날 듯 기뻐하기도 하고 불현 듯 계약 종료의 두려움에 끝없는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일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하지만 강한 성취동기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희열을 찾는다. 입사 동기인 한석율이나 장기백도 이 유형에 해당한다.

둘째는 통제 만능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는 태도다. 자기통제와 자기강제가 세속적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고 이를 통해 타인의 통제나 사회적 자연적 환경에 대한 통제를 정당화한다. 앞 부분에 잠깐 나왔던 선 차장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선 차장은 아이를 둔 맞벌이 주부, 워킹 맘이다.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 늘 엄마의 뒷 모습을 그린다.

셋째는 과도한 피해의식을 갖고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다. 이들은 스스로 희생자, 나는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기연민이 강하며 동시에 자기책임성을 애써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우 쉽게 공격자로 돌변할 수 있다. 스스로 회사에 적응을 못한다고 생각해 사표를 내기 직전, 장그래를 만나 허세를 떠는 박 대리가 이 유형이다. 공격자로 돌변하지는 않았지만 박 대리의 피해망상증은 성과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에서 비롯한다.

넷째는, 자기중심주의와 독선주의를 강하게 드러내는 태도다. 자신의 태도나 행위가 항상 정당하며 모범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은 자기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고 자기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니들이 하는 건 사업놀이일 뿐”이라고 호통치는 섬유팀 팀장 스티브 한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과주의에 가장 깊이 결속된 유형이다.

다섯째는 완벽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 잔정한 자기내면과의 분리를 솔직히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조차 그대로 인정하며 정면돌파하기 보다는 병적인 모습으로 은폐하거나 회피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으로부터 비판이나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스스로 완벽함을 과시하고자 많은 에너지를 쓴다. 장그래의 입사동기 안영이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일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이나 삶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솔직하게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내면에서 느끼는 각종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적극 관통해 정면으로 넘어서고자 하기 보다는 은폐하거나 추방하고 억압·축출하는 방법으로 회피한다. 그 회피의 방편이 일 중독이라는 이야기다. 일 중독이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장그래가 강렬한 성취동기를 부여받는 것은 평생 바둑 말고는 해본 적이 없는 데다 미래가 없는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착취 당하고 싶어도 착취당할 기회마저 잃은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최우선 과제다. “난 당신들과 다르지 않습니까. 이 회사에 들어와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이 모든 기회와 상황이. 그런데 그렇게 한 칸 한 칸 성장하다 올라선 계단 끝에 절벽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

‘미생’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회사덕후’들의 이야기가 노동중독 사회의 본질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중독의 시스템에서 장그래가 할 수 있는 건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성과를 내는 것 밖에 없다. 한 칸 한 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 절벽 너머 다른 아무런 계획도 없으면서도 일단 가는 수밖에 없다. 자아의 상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회사가 나를 규정하고 그 회사의 일이 내 삶을 규정한다.

100년도 더 전에 라파르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프롤레타리아는 노동할 권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일해서 갖다 바친 잉여노동이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줄도 모른다. 자본은 왜 굳이 6개월 만에 무려 1년치의 노동을 한꺼번에 집어삼키려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차라리 노동을 1년 내내 골고루 평준화해 하루에 대여섯시간씩 노동자들에게 할당하지 않고 6개월 동안 하루 12시간씩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일까.”

라파르그의 ‘게으를 권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기계가 더 완벽해지면 질수록 그리고 이 기계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람의 산 노동을 더 많이 쫓아내면 낼수록 노동자들은 그만큼 더 많은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기는커녕 마치 기계와 경쟁이라도 하듯 그 피와 땀을 몇 배로 더 흐려야 한다. 아, 저 바보스럽기까지 한 파괴적 경쟁이여.” 기계가 영업과 마케팅으로 바뀌었을 뿐 2013년의 대한민국은 라파르그의 시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조안 시울라는 ‘일의 발견’에서 “할당량과 근무시간을 조절해가면서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시키는 게 경영학의 과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현대 경영학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하도록 만들기 위해 리더십과 기업문화를 강조한다. 성공한 기업이라는 환상과 자부심은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무와 열정을 이끌어 낸다. 이들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단순한 일자리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시인 박노해는 ‘하늘’이라는 시에서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장그래에게 원인터내셔널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 이제 막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 서로를 받쳐주는 /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 그런 세상이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지만 우리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 생존의 절박함은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 장그래의 투쟁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지만 성과주의와 노동중독의 사회에서 결국 우리 모두가 희생자라는 사실을 ‘미생’은 일깨워준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좋은 웹툰이지만 그만큼 공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장그래가 회사에서 위안을 얻는 건 업무 성과 그 자체 보다는 그런 성과가 월급과 일자리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게 될 때 예상되는 엄청난 고통을 겪지 않는 지금의 상황,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그리고 그런 동기 부여가 자기착취와 과잉노동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다. 장그래는 이 시스템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고 그건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다.

강수돌 교수는 “개인적 집단적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전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구성원 대부분이 일중독에 빠져 자본의 원리를 강하게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체제의 전복을 꾀하기 보다는 체제 안에서의 안락과 상승을 꿈꾼다. 원론적이지만 강 교수는 “삶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이뤄야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일중독으로부터의 해방, 노동으로부터의 참된 해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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